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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지금 버핏인가]5. 부자 감세로 소비·투자 늘어난다고요? "그건 허구"라고 말하는 버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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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빅시리즈 #5. 시장을 보는 눈
1976년 美 자본이득세율 39.9% 인데도
투자 주저하는 사람 없었고 일자리도 늘어
지금은 어떤가? 세율 줄어도 투자 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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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임철영 기자, 주상돈 기자, 김민영 기자, 김보경 기자] 버핏은 미국식 금융자본주의의 '아이콘'이다. 버핏 연구자들은 그를 금융자본주의 시스템을 가장 잘 이해하고 있는 자본가 중 한 명이라고 평가한다. 자본주의는 자본 즉 돈을 기초로 움직이는 경제시스템이고, 이 시스템을 구성하는 주체 중 하나가 자본가다. 자본가는 돈을 유통시켜 발생하는 이자를 취하거나, 노동자를 고용해 기업을 운영함으로써 이윤을 창출한다. 즉 가지고 있는 돈을 기초로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 내는 존재다. 버핏에게 자본이란 마치 직업을 갖고 일하는 사람처럼 자기 주인을 위해서 돈을 벌어다 주는 것이었다. 버핏은 그렇게 돈을 활용할 줄 알았고 돈의 노예가 아니라 주인이었다. 그는 눈뭉치가 눈덩이가 되는 것처럼 자본이 더 나은 가치를 만들도록 투자자산을 적재적소에 배치할 줄 알았다. 이런 그의 태도는 국가경제 전체에서도 부가 효율적으로 분배되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이어진다. 부자감세에 반대하는 이른바 '버핏세'가 바로 그것이다. 자본주의와 시장에 대한 버핏의 생각을 들여다보자.


◆시장은 효율적인가?= 버핏의 투자철학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자본시장에 대한 생각을 먼저 들여다봐야 한다. 버핏은 기본적으로 시장가격은 왜곡될 가능성이 있으며 특히 시장의 분위기와 단기투자자들에 의해서 왜곡의 정도가 심해질 수 있다고 봤다.

그는 가치와 가격의 격차를 활용해 투자대상을 물색했다. 이는 "탁월한 실적과 안정적인 재무 상태를 유지하는 기업의 주가가 내재적인 가치보다 훨씬 낮은 가격으로 팔리고 있다면 이 주식을 다시 사는 것 말고는 대안이 없다"고 언급한 대목에 잘 나타난다. 시장의 분위기에 휩쓸리지 않고 장기투자를 고집한 그의 투자실적은 1965년부터 2013년까지 연평균 19.7%라는 버크셔 해서웨이의 수익률(주당순자산가치 상승률)에 잘 묻어난다. 누적 수익률은 69만3518%에 달한다. 같은 기간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지수의 상승률은 연평균 9.8%에 그쳤다.
버핏은 이 같은 놀라운 투자실적 때문에 논란의 중심에 서야 했다. 1980년대 유진 파마가 주창하고 폴 새뮤얼슨 등 다수의 경제학자들이 지지한 '효율적 시장가설'은 연평균 20%에 육박하는 수익률을 거둔 버핏의 성과를 '다트를 던지는 것'에 비유하고 우연의 결과물이라고 일축했다. 효율적 시장가설에 따르면 시장의 펀드매니저들은 주식가격을 결정할 수 있을 정도로 현명하고 공개된 모든 정보를 통해 회사의 가치는 이미 주가에 반영돼 있다. 따라서 이 학설의 추종자들은 버핏의 투자실적은 매우 예외적인 사례라고 비꽜다.

이에 대해 버핏은 펀드매니저 등 트레이더들이 만들어낸 시장가격을 애덤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에 연동시키는 것은 무리라고 주장했다. 시장가격은 언제든지 왜곡돼 나타날 수 있고 역사적으로 나타난 과열(버블)은 이를 뒷받침하는 근거라는 것이다. 왜곡된 시장으로 가격이 떨어진 기업을 찾아 투자하는 방법은 효율적 시장가설에 동조하는 학자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우연한 과정이 아니라는 점도 강조했다.

1987년 10월19일 블랙먼데이가 증권시장을 강타하자 버핏은 효율적 시장가설 지지자들을 우회적으로 비난했다. 그는 "아무도 자기 잘못이라고 말한 사람이 없다. 아무리 많은 학생이 잘못된 교육을 받아도 말이다. 더욱이 효율적 시장이론은 계속 주요 경영대학원에서 투자교육 과정의 핵심부문으로 남아있다"고 비난했다.

버핏은 여전히 인덱스펀드 등의 이론적 모태가 됐던 효율적 시장가설과는 다른 투자방식을 유지하고 있다. 시장가격보다는 재무제표의 숫자를 면밀하게 분석해 성장 잠재력이 큰 기업을 골라내고, 무분별한 분산투자는 시장평균 수익률만 노리는 전략이라고 생각해 소수의 좋은 기업에 집중 투자하는 방식을 고수한다.

◆"주주가치 훼손 없는 자산 재배치"= 버핏은 효율적으로 자본을 운용해 더 나은 가치를 만들어내고자 했다. 내재가치보다 낮은 가격에 거래되고 있던 기업을 발굴해 장기간 투자에 나선 첫 번째 목적은 자산을 불리기 위해서였지만 한편으로는 기업이 보유자금을 적재적소에 사용할 수 있도록 도왔다. 섬유산업 몰락으로 어려움을 겪은 버크셔 해서웨이를 비롯해 납품비리 의혹으로 부침을 겪었던 아메리칸 익스프레스, 국채 부정입찰로 위기에 처한 살로몬 브러더스 등을 정상 기업으로 만든 과정은 단순한 주식투자자의 행보와는 거리가 멀다.

버핏은 1974년 캐서린 그레이엄이 경영하고 있었던 '워싱턴포스트(WP)'에 1000만달러를 투자하고, 1985년 자기자본수익률(ROE)을 두 배까지 끌어올렸다. 그가 WP에 투자한 돈은 11년 만에 2억5000만달러로 불었다. 버핏은 경영 일선에 나서지는 않았지만 회사의 현금을 축내는 인수합병(M&A)을 반대하고 재무상 수치를 개선하기 위해 당시에는 생소했던 자사주 매입을 제안하는 등 회사와 관련한 중요한 판단의 중심에 있었다.

살로몬 브러더스의 국채 부정입찰 사건에서도 버핏은 남다른 행보를 보였다. 1991년 살로몬은 버핏의 적극적인 노력으로 민형사상 위기를 일단 넘겼다. 이후 버핏은 살로몬의 기업문화를 변모시키기 위해 정직, 근면, 좋은 인간관계, 개방 등의 원칙을 임직원들에게 강조했다. 국채 부정입찰 사건이 터지기까지 월가의 분위기를 지배했던 '쉽게 돈 버는 방식'에 대한 근본적인 처방으로 회사를 위해 정직하게 돈을 버는 직원에 대한 보상을 확대했다.

버핏의 이 같은 행보는 "어떠한 경우에도 주주가치를 훼손해서는 안 된다"는 원칙에 따른 것이다. 그는 회사의 경영에 종속된 자산과 주주에게 종속된 자본을 명확히 구분해 성과를 측정했다. 그는 일단 투자를 시작하면 기업의 주가보다는 장기적 사업성과에 주목했다. 무엇보다 그는 최고경영자(CEO)를 포함한 경영진이 받는 스톡옵션 등 인센티브가 더 나은 가치를 창출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과도한 수준의 인센티브에 대해서는 주주들의 이익을 침해한다고 생각했다.

버핏의 투자철학은 결과적으로 해당 기업엔 새로운 가치창출의 기회를 안겼고, 자신에게는 높은 수익률로 보답했다. 그는 국채 부정입찰 사태에도 불구하고 살로몬에서는 초기 투자금 7억달러 대비 250%에 가까운 수익을 챙겼고, 아메리칸 익스프레스에서는 107%, 코카콜라에서는 127%가 넘는 수익률을 기록 중이다.

◆부의 효율적 분배…부자감세 반대= 버핏은 미국의 시장시스템에 대해 높게 평가하면서도 올바르고 건전한 방향으로 발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건전한 시장은 기회의 평등을 보장하고 부를 효율적으로 분배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버핏이 조지 부시 전 미국 대통령과 공화당이 주도한 부자감세안을 강력하게 비난한 이유도 건전한 시장시스템을 훼손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는 피라미드의 꼭대기에 있는 극소수의 부자들이 특권을 지키기 위해 정치력을 동원하는 행태에 대해 신문 칼럼이나 방송 인터뷰에서 자신의 의견을 드러내기도 했다. 미국의 부자들이 지속적으로 감세 혜택을 받고 있으며, 부자들의 자산은 가파르게 늘어나는 반면 세율은 지속적으로 감소하는 비정상적인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버핏은 자신이 내고 있는 세금을 분석한 결과 함께 일하는 직원들보다 낮은 세율을 적용받고 있다며 무엇보다 자본이득세율을 올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최상위 부자들일수록 근로를 통한 소득보다 투자를 통한 소득비중이 높기 때문에, 자본이득세율을 높이는 방법이 부의 효율적인 분배를 촉진하고 조세형평성을 강화하는 방안이라고 생각했다. 그의 소득 중 대부분이 투자소득임을 감안하면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키기에 충분했다.

그는 더 나아가 "세율을 낮춰 부자들의 소비와 투자를 늘려야 경기가 회복된다는 주장은 허구에 불과하다"며 "저소득층을 비롯해 중산층에 대한 소득세율을 낮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버핏은 구체적인 수치를 들어 "1976년에는 자본이득세율이 39.9%였지만 투자를 주저하는 사람은 없었고 자본이득세율이 더 높았던 1980년 이후 2000년까지 일자리는 약 4000만개가 늘어난 반면 세율이 낮아진 2000년대 이후에는 되레 일자리가 줄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의 부자증세론은 '버핏세'로 불리며 오마바 정부의 주요 경제정책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새해 국정연설에서 "소수만 성공하는 경제를 받아들일 것이냐, 노력하는 모든 사람들의 소득 증대와 기대 확대를 창출할 경제에 충실할 것이냐"는 물음을 던지고 "불평등을 초래하는 세금 구멍을 막겠다"고 밝혔다.

<용어해설>
☞효율적 시장가설
시장가격이 공개된 모든 정보를 반영한 결과라는 경제학설이다. 이 학설을 지지하는 학자와 전문가들은 시장평균을 초과하는 수익은 불가능하고, 초과수익률이 나온다고 해도 이는 비정상적인 결과라고 주장한다. 이에 따라 지수를 추종한 매매가 현명한 투자방식이며, 분산투자를 통해 평균적인 시장수익을 기대할 수 있을 뿐이라고 조언한다. 이 학설은 지수를 추종하는 펀드의 이론적 기초가 됐다. 대표적인 학자는 유진 파마 시카고대 금융학 교수다. 그는 2013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했다.

☞주당순자산가치
'청산가치'로도 불리는 주당순자산가치(BPS)는 기업의 순자산을 발행주식수로 나눈 수치다. 기업이 활동을 중단하고 그 자산을 모든 주주들에게 나눠줄 경우 1주당 얼마씩 돌아가는가를 나타낸다. BPS가 높은 기업은 수익성 및 재무건전성이 높아 투자가치가 높다. 투자기업인 버크셔 해서웨이의 경우 투자로 얻는 수익이 곧 순자산 증가로 이어지므로 BPS 상승률을 본문에서는 간략히 수익률로 표현했다.

☞버핏세
조지 부시 전 미국대통령과 공화당이 추진한 부자 감세에 반발해 워런 버핏이 주도한 부자 증세안으로 조지 소로스, 빌 게이츠, 마크 저커버그 등도 잇달아 지지했다. 부자들의 주요 수익원인 투자수익에 대한 세율(자본이득세율)을 높이고, 중산층 이하 계층의 소득세는 점진적으로 낮춰야 한다는 게 골자다. 버핏의 주장은 2011년 '월스트리트를 점령하라(Occupy the Wall Street)'라는 구호를 앞세운 대규모 시위로 더욱 힘을 얻게 됐고, 오바마 정부의 핵심 정책방향 중 하나로 발전했다.




임철영 기자 cylim@asiae.co.kr
주상돈 기자 don@asiae.co.kr
김민영 기자 argus@asiae.co.kr
김보경 기자 bkly477@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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