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상 ECB의 양적완화는 '소 잃고 외양간 고친 격'으로 볼 수 있다. 우선 시점이 문제다. 마리오 드라기 ECB 총재가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 국채 매입을 뼈대로 한 양적완화 의지를 밝힌 것은 2012년 7월 ECB 통화정책회의에서였다. 당시 그는 "유로존 수호를 위해 무엇이든 다 하겠다"고 말했고 두달 후인 9월 통화정책회의에서 유로존 국채 무제한 매입을 표방한 '전면적 통화거래(OMT)' 정책을 발표했다. 하지만 독일이 어깃장을 놨다. 독일은 자국 헌법재판소를 통해 OMT가 EU 조약에 위배된다며 유럽사법재판소(ECJ)에 제소했고 최근 ECJ는 OMT가 EU 조약에 위배되지 않는다는 중간 평결을 내렸다.
과감성, 즉 양적완화 규모에 있어서도 논란이 제기되고 있다. ECB는 매달 600억유로 규모의 자산을 매입하겠다고 밝혔다.
컨설팅업체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의 앤드류 센턴스 선임 이코노미스트는 600억유로는 유로존 국내총생산(GDP)의 7% 수준이라며 영국중앙은행(BOE)이 매달 GDP의 20%가 넘는 자산을 매입했던 것과 비교된다고 지적했다. BOE는 미국 중앙은행(Fed)과 마찬가지로 2009년 양적완화에 돌입했고 매달 250억파운드의 자산을 매입했다. BOE의 과감한 양적완화 덕분에 영국 경제는 지금 유로존보다 훨씬 나은 상황이다.
유로존 국채 매입에 따른 위험을 각 국 중앙은행(NCB·National Central Banks)이 부담토록 한 것도 논란거리다. 이번 양적완화는 자산 매입을 ECB가 아닌 NCB가 주도하는 구조다. 이는 손실 위험 공유를 거부한 독일의 입장을 반영한 것이다. 그리스 국채 매입에 대한 손실 위험을 그리스 중앙은행이 떠안는 방식이다. 이 때문에 그리스처럼 위기를 겪고 있는 국가에 미치는 효과가 제한적일 것이라는 비판을 피해가기 어렵다.
박병희 기자 nu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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