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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동여담]카르페 디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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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수년 전 회사 생활을 시작한 후 처음 가입한 금융상품은 '암보헙'이었다. 남들이 모두 적금 들 때도 꿈쩍 않던 마음을 움직인 것은 동생보다 어린 한 프로야구 선수의 죽음이었다. 20대 초반의 촉망받던 유망주가 위암으로 사망했다는 소식에 때마침 회사를 방문한 보험 아줌마에게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암보험부터 들었다. 몇 달 후엔 더 좋은 상품이라는 텔레마케터의 말에 암보험을 하나 더 들었다.

후배 J는 최근 사놓고 뜯어보지 않은 물건들을 지인들에게 나눠줬다고 한다. 교통사고로 비명에 간 걸그룹 멤버를 보니 지금 이 순간을 소중한 이들과 더 나누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해졌단다. '카르페 디엠(Carpe Diemㆍ지금 살고 있는 이 순간에 충실하란 뜻의 라틴어)'을 외치던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의 키팅 선생님의 말을 나름대로 실천한 셈이다.
친구 Y의 아이들은 지난 4월 세월호 사고 이후 '카르페 디엠'으로 변한 엄마 덕에 꿈같은 몇 달을 보냈다. 다른 아이들에게 뒤지지 않겠다는 일념에 밤 11시까지 초등학교 1, 2학년 아이들을 닦달하던 Y의 아내가 4월 중순 이후 아이들을 채근하는 대신 가족이 함께 즐거운 시간을 갖는 데 열정을 쏟았기 때문이다. 아쉽게도 시간이 지나면서 '카르페 디엠' 모드가 서서히 약해졌다지만….

하긴 책상 위에 올라가 '카르페 디엠'을 열정적으로 외쳐 전 세계 학생들을 열광케 했던 로빈 윌리엄스조차 현재에 충실하는 대신 저세상으로 가는 길을 택한 걸 보면 지금을 충실하게 사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하물며 20대에도 어린 친구의 비극에 보험이라는 갑옷을 두 겹으로 둘렀던 소심한 인사에게 '카르페 디엠'은 라틴어만큼이나 먼 나라 얘기일 수밖에 없다.

학창 시절 국어교과서에 나온 김상용의 시 '남으로 창을 내겠소'는 '왜 사냐건 웃지요'라고 말하며 끝이 난다. 인생을 달관한 듯한 이 구절은 유감스럽게도 30년 가까이 지난 아직도 가슴에 와닿지 않는다. 당시와 달라진 점은 인터넷 덕에 '왜 사냐건 웃지요'의 원조는 당나라 시인 이백의 산중문답(山中問答)이란 걸 알았다는 정도다.
"무슨 뜻으로 푸른 산 속에 사느냐?"고 나에게 묻기에(問余何事棲碧山) 웃으면서 대답하지 않으니 마음이 한가롭다(笑而不答心自閑).산중문답에서 이렇게 노래한 이백도 56세에 현종의 열여섯째 아들인 영왕의 군대에 참여했다가 이 군대가 반란군으로 지목되면서 유배됐었다니 조금은 위로가 되는 듯하다. 전필수 팍스TV 차장 philsu@
전필수 팍스TV 차장 phils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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