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 하더라도 편집기자는 하나의 '뒷배경'이 있다. 아랍의 투사들이 목숨을 초개같이 버리며 자살테러를 벌이는 까닭을, '정신'이나 '신념'을 비웃는 사람에게는 설명하기 어렵다. 인간은 욕망과 이익에 죽고 사는 것처럼 보이지만, 가치와 명분에 죽고산다는 것을 옛사람들도 이미 파악했다. 공자의 설법이나 석가의 설법이나 주자학의 메아리나 예수의 외침도 그런 것이다. 편집기자는 가치를 먹고 산다. 정말. 날마다, 뉴스 가치를 먹고 살며, 독자의 가치를 먹고 산다. 편집기자가 천국에 갈 수 밖에 없는 7가지 이유가 있다.
둘째, 편집기자는 책임만 있는 직업이다. 모든 공은 남에게 돌리고 모든 책임은 자신이 지려고 한다. 마감시간이 늦어도 독촉을 못한 죄, 사건 발생을 예측하지 못한 죄, 더 빠르고 기민하기 움직이지 못한 죄를 스스로 진다. 오탈자가 나도 모두 내 탓이요, 기사의 문장이 매끄럽지 않고 팩트가 졸렬해도 모두 내가 불민한 탓이다.
세째, 편집기자는 이름을 감춘다. 빛나는 이름은 타인에게 주고 자신은 그를 빛내주기 위한 노동만을 위해 각고면려한다. 천하에 공명심이 없는 존재는 없겠지만 직업상 공명심이 불가능하게 되어 있는 것이 편집기자다. 좋은 기사를 더욱 좋게 만져주고 나쁜 기사를 슬그머니 위장 포장해 좋은 기사로 만들어주기도 하지만, 그것이 편집의 숨은 손이 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이는 그리 많지 않다.
다섯째, 편집기자는 밤을 새는 일을 밥먹듯이 한다. 아침에 일어나 뉴스를 만나고 싶은 사람을 위해 졸음을 쫓으며 신문을 만든다. 그보다도 더 좋은 신문을 만들지 못한 것을 통탄하고 내일은 더 나은 언론을 꿈꾸며 통음하느라 밤을 샌다.
여섯째, 편집기자는 남들이 걱정하지 않는 큰 것을 걱정하는데 익숙한 사람이다. 인류를 걱정하고 조국을 걱정하고 아시아를 걱정한다. 또 100년 뒤를 걱정하며 1000년 뒤까지도 가끔 걱정한다. 포유류의 장래에 대해서도 고심하며 심지어 생명 일반의 최후에 대해서도 괴로워하는 때가 있다. 그렇게 큰 것만이 아니라 작은 것, 풀꽃 한 송이, 아침 출근길의 체증, 한 대졸자의 미취업의 고민, 혹은 마약중독자, 자살을 생각하는 사람 등 세상에 일어나는 모든 세세하고 자잘한 문제들까지 고민을 함께 하는 존재다. 이러는 사이 자기 걱정은 언제 하는지 알 수 없는 사람이다.
일곱째, 편집기자는 소통을 스스로의 소명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이해 불능의 사회와 엔트로피와 잡음의 세상에서 그래도 스스로 이야기를 쉽게 하고 재미있게 흥미있게 하여, 모든 이에게 말을 붙이는 사람이다. 고독한 사람을 세상으로 끌어내고 상처받은 사람을 다독이며 힘센 사람의 독주나 횡포를 견제하면서 골고루 평등하게 이야기들을 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들려고 한다.
편집기자가 지닌 이런 특징들은 대개 신성하고 거룩한 존재가 하던 일의 대행이라고도 할 수 있다. 프랑시스 잠은 선한 당나귀와 함께 천국에 가기 위한 기도를 하며 시를 썼다. 그가 요즘 세상에 살았다면 이 선한 편집기자와 천국에 가야한다고 하지 않았을까.
▶'낱말의 습격' 처음부터 다시보기
이상국 편집에디터 isomis@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