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유수경 기자]더 이상 물러설 곳도 없는 막다른 골목. 늘 뒷골목에서 남들이 버린 음식을 주워 먹던 조그마한 쥐 한 마리가 있다. 새로운 세상을 만나 그 곳에 살기를 꿈꾸지만 이 곳을 지키고 있는 고양이에 의해 좌절된다. 궁지에 내몰리고 꿈마저 잃은 쥐는 목숨을 걸고 고양이에게 덤빈다. 용기는 가상하다. 그러나 모든 것이 뜻대로 되지는 않는다. 그래서 보고만 있어도 가엾고 애처롭다. 가슴 아프게도 목숨줄은 왜 이렇게 긴 것일까.
‘슬픈 목숨’이라는 뜻을 지닌 영화 ‘창수’(愴壽)가 21일 오후 언론시사회를 통해 베일을 벗었다. 내일이 없는 징역살이 대행업자 창수(임창정 분)는 우화 속에 등장하는 힘없는 쥐 같다. 밑바닥 인생이지만 스스로는 자신이 못났다고 생각지 않고, 자신감에 차 있다. 하지만 강자에게 늘 당하고 돈도 없고 빽도 없는 인생. 심지어 감옥에 대신 들어가는 대가로 돈을 버는 궁색한 인물이다.
‘창수’에서는 무엇보다 캐릭터에 완벽하게 몰입한 임창정의 연기가 돋보인다. 한쪽으로 빗어 넘긴 머리, 살짝 안짱으로 걷는 걸음걸이, 입에 착착 달라붙는 욕설은 시나리오 속 창수의 모습 그대로였다. 웃음기를 쏙 뺀 임창정을 보고 있노라니 그가 정말 코믹 연기의 달인이 맞나 하는 의문이 들 정도였다. 특히 지성파 2인자 도석(안내상 분)에게 고문을 당하는 장면에서는 현실감 넘치는 연기로 스태프들마저 감탄케 했다는 후문.
창수의 후배 상태 역을 맡은 정성화와의 호흡도 좋다. 정성화는 시사 후 진행된 기자간담회에서 스스로 이번 작품 속 연기가 만족스러웠다고 털어놨다. 실제로 그는 임창정의 연기를 탄탄히 받쳐주며 큰 몫을 해냈다. 임창정이 웃음기를 뺀 만큼 코믹 연기는 그의 담당이었다. 정성화는 느와르 장르가 무겁다는 인식을 깨고 극장 안에 웃음소리가 터져 나오게 만들었다.
입에 담배를 물고 욕설을 내뱉는 손은서의 새로운 연기 변신도 눈길을 끌었다. 피도 눈물도 없는 악역에 도전한 안내상은 탄탄한 연기력이 무색하지 않은 자연스러운 연기로 관객들의 몰입을 도왔다.
영화를 연출한 이덕희 감독은 ‘파이란’ ‘두사부일체’에서 조감독으로 참여한 경험이 있다. ‘창수’가 감독 데뷔작이지만 연출력은 기대 이상이었다는 평이다. 지루하지 않고 힘 있게 극을 끌어가는 재주가 돋보였다.
유수경 기자 uu8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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