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Dim영역

메르켈의 압승이 한국정치에 시사하는 점

스크랩 글자크기

글자크기 설정

닫기
인쇄 RSS
[아시아경제 나주석 기자]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이끄는 기독민주당(기민당)·기독사회당(기사당) 연합이 지난 22일 독일 총선에서 압승을 거뒀다. 메르켈 총리가 3선에 성공함으로써, 그는 유럽 최장수 여성 총리에 이름을 올릴 수 있게 됐다.

이번 독일 총선에서 기민·기사 연합은 지난 총선에 비해 득표율이 7.7%포인트 올랐다. 311석을 차지함에 따라 단독 과반의석을 차지하는 데는 실패했지만, 독일 통일의 열기로 달궈졌던 1990년 12월 총선 승리 이후 최대 전과다. 세계 경제 위기 이후 각국의 정권이 뒤바뀌는 혼란 속에서, 메르켈 정부만큼은 연속성을 유지하게 됨에 따라 이번 독일 선거는 여러 측면에서 주목을 받고 있다.
이번 독일 선거를 통해 한국 정치에 시사하는 바를 간단히 정리해보겠다.

1) 신뢰받는 정치인은 이긴다 특히 이번 선거의 1등 공신은 메르켈이었다. 지방선거 등에서 기민·기사 연합이 고전을 겪었지만 정작 이번과 같은 총선에서 대승을 거둘 수 있었던 데에는 메르켈 총리 개인에 대한 독일인의 인기가 크게 작용했다.

메르켈이 소속한 정당인 기민당은 이번 선거에서 무티(Mutti)를 전면에 내걸었다. 엄마를 뜻하는 무티는 메르켈의 별명이다. 기민당로서는 국민들의 압도적인 메르켈 총리에 대한 지지도를 정당지지율로 바꾸는 것이 선거 전략이었던 셈이다.
독일의 한 학자는 무티로 불리는 메리켈 총리와 관련해 이런 말을 했다. "엄마는 항상 당신 곁에 있지. 당신은 엄마에게 의지할 수 있구. 가끔은 엄마가 방 치우리고 잔소리를 하기도 하지만, 엄마는 항상 당신 곁에 있지." 독일 국민들은 메르켈을 엄마처럼 믿을 수 있는 존재이자, 국민들에게 필요한 말을 따끔하게 할 줄 아는 정치인이로 여겼다는 것이다.

메르켈 총리에 대한 흔한 비판 중에 하나는 카리스마가 없다는 것이다. 메르켈은 토론회 등에서도 날카로운 논리로 상대방을 제압하는 스타일도 아니다. 그럼에도 메르켈 총리의 엄마처럼 푸근한 이미지는 긴 경제 위기로 고통을 받고 있는 국민들을 위로해주는 리더십으로 작용했다. 메르켈이라면 믿을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정치자산인 셈이다. 여기에는 세계 경제위기와 유럽의 부채위기 속에서도 독일만큼은 부채위기의 직격탄을 피해간 것에 대한 신뢰도 크게 작용했다. 앞으로도 위기 국면이 계속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인 상황에서 메르켈 만큼 신뢰할 정치인은 찾아 볼 수 없다는 것이 이번 총선에서 드러난 독일인의 마음인 셈이다.

메르켈은 동독 태생으로 개신교 목사의 딸로 태어났다. 물리학도였던 그는 독일 통일 이후에 정치에 데뷔했다. 그는 풀란드계 집안 출신에, 기민당의 주류인 카톨릭이 아닌 개신교, 동독 출신, 그리고 여성이라는 핸디캡을 안고서 독일 사상 최초의 여성총리이자 동독 출신 총리라는 입지전적인 기록을 세웠다는 점은, 그의 뛰어난 정치역량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증거이기도 하다.

위기 국면일수록 신뢰할 수 정치인에게 국민들의 기대가 모인다는 점은 이번 독일 총선에서 분명하게 확인되는 대목이다. 선거에서 승리를 원한다면 한국 정치인들 역시 신뢰 자산을 쌓아놔야 할 필요성이 커진 셈이다.

2) 이념보다는 실용주의 메르켈이 소속된 기민당은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보수 우파 정당이다. 하지만 메르켈이 이끄는 기민당은 우파 정당이기 보다는 실용주의 정당의 길을 걸었다.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태 때 메르켈 총리가 원전 폐기를 앞당기겠다고 선언했다는 점이다. 좌파는 원전반대, 우파는 원전옹호라는 기존의 정치지형을 깬 파격적인 접근이었다. 그는 재생에너지 정책에 있어서도 전향적인 태도를 보였다. 메르켈의 재생에너지 정책으로 인해 독일 기업들은 경쟁국가에 비해 비싼 에너지 요금을 지불하고 있다.

메르켈 정부의 복지 정책에 있어서도 좌파의 정책들을 수용하는 태도를 보였다. 메르켈이 채택한 정책 중에는 임대료 상승폭 제한, 최저 임금 보장은 물론 연금 인상과 아동 수당 인상 등이 있다. 기존의 기민당의 전통적인 정책에 있어서는 파격적인 변화였다.

이같은 메르켈의 정책은 대립각을 없애버리는 정치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환경정책 등에서 주도권을 행사함에 따라 녹색당의 지지층을 흡수하는 한편으로, 복지 정책 강화로 진보 성향의 표를 빼앗은 것이다. 독일 정치학자들은 '비대칭적 동원해제'(asymmetric demobilisation)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같은 정책은 유권자들이 선거에서 쟁점을 발견하지 못하게 함으로써, 신뢰할 수 있는 메르켈 총리에게 맡겨보자는 믿음으로 이어질 수 있게 했다.

해외 언론들은 이번 독일 총선의 승리를 실용주의의 승리로 봤다. 이념보다는 실리추구가 국민들에게 다가온다는 것이다.



나주석 기자 gonggam@asiae.co.kr
AD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함께 본 뉴스

새로보기

이슈 PICK

  • "방문증 대신 주차위반 스티커 붙였다"…입주민이 경비원 폭행 전치 4주 축구판에 들어온 아이돌 문화…손흥민·이강인 팬들 자리 찜 논란 식물원 아닙니다…축하 화분으로 가득 찬 국회

    #국내이슈

  • 머스크 끌어안던 악동 유튜버, 유럽서 '금배지' 달았다 휴가갔다 실종된 '간헐적 단식' 창시자, 결국 숨진채 발견 100세 된 '디데이' 참전용사, 96살 신부와 결혼…"전쟁 종식을 위하여"

    #해외이슈

  • [포토] 조국혁신당 창당 100일 기념식 [포토] '더위엔 역시 나무 그늘이지' [포토] 6월인데 도로는 벌써 '이글이글'

    #포토PICK

  • 경차 모닝도 GT라인 추가…연식변경 출시 기아, 美서 텔루라이드 46만대 리콜…"시트모터 화재 우려" 베일 벗은 지프 전기차…왜고니어S 첫 공개

    #CAR라이프

  • [뉴스속 그곳]세계문화유산 등재 노리는 日 '사도광산' [뉴스속 인물]"정치는 우리 역할 아니다" 美·中 사이에 낀 ASML 신임 수장 [뉴스속 용어]고국 온 백제의 미소, ‘금동관음보살 입상’

    #뉴스속OO

간격처리를 위한 class

많이 본 뉴스 !가장 많이 읽힌 뉴스를 제공합니다. 집계 기준에 따라 최대 3일 전 기사까지 제공될 수 있습니다.

top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