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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뷰앤비전]창조경제,'혁신의 연쇄반응' 있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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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7년 막 영국 총리에 취임한 토니 블레어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영국 경제의 재건을 위한 청사진 제시였다. 그중에서도 그가 심혈을 기울인 사업이 창조산업 육성이다. 블레어는 문화미디어스포츠부 안에 '창조산업 태스크포스(CITFㆍCreative Industries Task Force)'를 설치해서 영국을 창조경제의 허브로 만들기 위한 '쿨 브리테니아' 청사진을 그리게 했다.

1년 후 CITF는 보고서에서 영국의 창조산업은 140만명의 고용을 창출하고 있으며, 600억파운드(약 100조원)의 부가가치를 창출, 국내총생산(GDP)의 5%를 차지한다고 계산했다.
그리고 2007년 블레어의 뒤를 이은 고든 브라운 총리는 디자인에서 공연, 게임에 이르는, 창조산업에 대한 방대한 육성 계획을 발표했다. 여기에는 영국 전역의 초등학생에 대한 창의성 교육을 포함한 대담한 교육개혁안도 들어 있었다. 특히 청소년에게 주당 5시간 이상의 문화 교육을 시킨다는 구체적인 목표까지 포함되었다.

이런 창조산업에 대한 열기가 한창이던 2010년 여름, 필자가 방문교수 자격으로 영국 브라이턴 대학에 갔을 때의 일이다. 아름다운 휴양지인 브라이턴시 인근에 위치한, 기술 혁신으로 유명한 서식스 대학의 한 교수가 나를 찾아 왔다. 그는 영국 정부의 의뢰로 각국의 창조산업에 대한 연구를 수행하고 있었다.

성공 사례로 꼽히는 각국의 창조산업 중에서 대표적인 사례를 분석해 벤치마킹하려는 것이었다. 영화에서는 인도의 발리우드, 음악에서는 브라질이었는데 놀랍게도 한국에도 영국 정부가 관심을 가진 산업이 있었다. 바로 온라인게임 산업이었다. 필자가 게임 산업 전문가라는 이야기를 듣고 찾아온 그에게 넌지시 한국 온라인게임 산업의 성공 원인이 무엇인지 찾았냐고 물어보았다.
한참을 생각하던 끝에 그 교수는 '사실 아무리 조사하고, 한국 정부 관계자를 인터뷰해도 잘 모르겠다'고 답했다. 나는 미소를 짓고는 이렇게 이야기해 주었다.

"그럴 겁니다. 한국의 온라인게임 산업의 성공에는 많은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거든요. 다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게임 산업 혁신의 초기 단계에 한국 정부가 무관심했다는 게 중요한 성공요인이지요."

그는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그러나 사실 온라인게임이라는 창조산업은 정부가 전혀 관심을 가지지 않은 상태에서 자생적으로 탄생한 한국 최초의 산업이다.

나는 그 교수에게 온라인게임 산업 혁신의 특성을 이야기해 주었다. 간단히 말하면 그것은 '자생적인 혁신의 연쇄 반응'이다. 마치 창고 안에 폭탄이 가득 채워져 있어 한 개가 폭발하면 옆의 폭발물이 연달아 터지는 식의 연쇄 반응이다.

실제로 2000년대 중반까지 한국의 온라인게임 산업은 콘텐츠, 마이크로 페이먼트(소액결제), 게임 아이템 과금 등 세계가 놀랄 만한 혁신을 주도해 왔다. 그러나 지금 그 혁신의 연쇄 반응은 끊겨 침묵하고 있다. 그 점이 바로 우리가 안고 있는 가장 우려스러운 문제이다.

지금 정부가 주창하는 창조경제는 한국이 이미테이터(모방자)에서 이노베이터(혁신자)로 전환해야 한다는 것이다. 시대적 사명에서 볼 때 이는 맞는 이야기다. 이는 여당이건 야당이건, 진보건 보수 건에 관계없이 지금 한국이 몸부림쳐야 하는 시대적 소명이다.

영국 정부는 창조경제와 창조산업을 부르짖으며 무려 17년 이상을 매달려 왔지만 가시적인 성과는 없었다. 이는 영국 정부가 무능하다기보다는 창조산업 육성의 어려움을 보여 주는 것이다. 이미 존재하는 산업을 모방하는 '캐치업형 제조업'이 아닌, 실체를 만지기 어려운 무형의 지식산업을 만들어 내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증명해 주는 사례이다.

한국형 혁신의 특성인 '연쇄 반응'을 일으키기 위해서 어디서 시작해야 하는가? 그것이 우리의 과제이다.

위정현 중앙대 경영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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