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얘기를 처음 접한 것은 1990년대 중반 어떤 행사에서였다. 조직의 구성원이 현재에 안주하면 그 조직은 뒤처지고 급기야 도태되고 만다는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연단에 선 누군가가 이 실험을 예로 들었다.
이후 나는 가끔 '냄비 속 개구리'는 사실일 리 없다며 열을 올리다 심드렁한 반응에 말문을 닫곤 했다. 한참 뒤 내게 우군이 생겼다. 폴 크루그먼 예일대 교수다.
그는 2009년 7월13일자 뉴욕타임스(NYT)에 '개구리 삶기(Boiling the Frog)'라는 제목의 칼럼을 썼다. 크루그먼은 개구리 이야기를 들어, 미국이 경제위기와 지구온난화에 조기 대응하지 않는다면 파국에 봉착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크루그먼은 "개구리는 실제로는 뛰쳐나올 것이지만"이라고 덧붙였다.
얼마 전 마침내 권위 있는 결론을 이메일로 접했다. 권오길 강원대 명예교수(생물학)가 지인들에게 보낸 편지다. 권 교수는 냄비 속 개구리는 "19세기에 시행한 실험으로 잘못 전해진 거짓부렁"이라고 잘라 말했다.
개구리 실험에 대한 상세한 설명은 인터넷 백과사전 위키피디아에서 표제어 'boiling frog'로 찾으면 나온다.
실제거나 꾸며 낸 얘기이거나 비유는 비유일 뿐,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타박할 독자가 계시리라. 무심코 던진 돌에 개구리가 맞거나 말거나, 개구리가 점차 뜨거워지는 물에서 죽거나 말거나….
위키피디아를 보니, 나 말고도 이 얘기에 흥분한 사람이 있었다. 제임스 팰로우스는 몇 년 전 미국 월간지 '디 애틀랜틱'에서 "멍청한 헛소리"라며 개구리 얘기를 그만하자고 주장했다. 아, 팰로우스도 직업이 기자다.
백우진 국제부 선임기자 cobalt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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