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전성호 기자]이제 레버쿠젠에게 한국은 '차붐'이 아닌 '손세이셔널'이다.
1983년 독일 분데스리가, 레버쿠젠은 '갈색 폭격기'라 불리는 한국인 공격수에게 등번호 11번을 맡겼다. 그는 기대에 걸맞은 영웅적 존재로 자리매김했고, 활약은 전설로 남았다. 정확히 30년 뒤 레버쿠젠은 그 전설을 재현할 존재에 손을 내밀었다.
손흥민 역시 이날 파주NFC(국가대표트레이닝센터)에서 열린 회복훈련 뒤 "나도 들은 얘기는 있지만 아직 언론에 내세울 것은 없다. 확정된 것이 아니라 섣불리 말하기 곤란하다"라며 이적설을 일부 시인했다. 곧이어 함부르크 구단주는 "후회하겠지만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라며 손흥민의 이적을 기정사실화했다.
▲레버쿠젠 이적, 손흥민에겐 이상적인 선택
손흥민에 열광하는 진짜 이유는 현재의 기량이 아니다. 그보다 훨씬 큰 잠재력이다. 껍질을 깰 원동력은 경험. 함부르크에선 제한적이었다. 중위권팀의 한계가 있었다. 반면 레버쿠젠은 강팀이다. 일단 유럽 대항전이란 큰 무대부터 준비됐다. 레버쿠젠은 2012-13시즌 분데스리가 3위에 올라 UEFA 챔피언스리그 진출권을 따냈다. 손흥민에겐 꿈꿔왔던 유럽 무대에서 날개를 펼칠 기회가 주어지는 셈이다.
레버쿠젠은 전술적으로 함부르크와 유사하면서도, 더 완성도 높은 축구를 구사한다. 기본적으로 4-3-2-1(혹은 4-1-2-2-1) 포메이션이 가까우면서도, 양 측면 공격수는 처진 공격수에 가까운 움직임을 가져간다. 따라서 손흥민으로선 갑작스러운 변화에 적응하는 부담을 줄이면서도, 공격수로서 한 단계 더 올라설 수 있는 환경이다.
슈테판 키슬링이란 훌륭한 스트라이커도 손흥민에겐 플러스 요인이다. 쉬얼레와 그랬듯 손흥민과도 좋은 호흡을 보여줄 것으로 기대된다. 나아가 상대 수비가 그에게 쏠리는 만큼 손흥민의 파괴력도 배가될 것으로 보인다.
레버쿠젠 유니폼이 특별한 이유는 또 있다. 바로 '전설' 차범근. 현역시절 1983년부터 1989년까지 6년 간 레버쿠젠에서 활약했다. 레버쿠젠 통산 기록은 185경기 52골. 1985-1986시즌 17골로 득점 순위 4위에 올랐고, 1988년에는 팀에 UEFA컵(유로파리그의 전신) 우승 트로피를 선사하기도 했다. 최근 차범근은 레버쿠젠의 UEFA컵 우승 25주년 기념행사에 초대를 받기도 했다. 20년 전 차붐을 빼닮은 손흥민은 레버쿠젠 팬들에게 분명 환영의 대상이다.
지난 2월 차범근 SBS 해설위원을 만난 자리였다. 그는 "손흥민을 볼 때마다 선수 시절 나를 보는 느낌"이라고 털어놨다. 이어 "손흥민은 직선 뿐 아니라 좌우로도 유연하게 꺾어 들어간다"라며 "한두 가지 동작만이 아닌, 다양한 기술과 움직임을 갖춘 선수"라고 평했다. 손흥민에 대한 얘기였지만 '선수 차범근'을 얘기하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과연 저 선수가 어디까지 성장할 수 있을까'란 우문에는 농담 섞은 현답을 내놓았다. "아니, 볼 때마다 나를 보는 느낌이라니까. 주변에서도 차범근을 뛰어 넘을 선수라고 하고. 나 정도면 큰 선수 아닌가?" 그의 말대로 손흥민은 이제 '차붐 전설'의 뒤를 밟아가려 하고 있다.
전성호 기자 spree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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