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야 문득 의문을 지녀본다. 외삼촌이 전쟁에 나가 뼈 한 줌과 전사통지서로 돌아온 이후로 자손이라곤 끊어진 적막한 집에, 그 카네이션은 대체 누가 준 것이었을까. 저 세 송이는 외갓집의 단출한 식구 숫자와 같았다. 외할아버지, 외할머니, 외숙모. 이 세 사람을 위해 사온 선물이었을까. 아니면 삼 년에 걸쳐서 누군가가 계속 보냈던 기특한 마음이었을까. 이걸 대답해줄 분은 이제 외숙모밖에 없으시다. 그는 그 사연을 기억하고 계실까.
시간이 지나고, 두 해쯤 더 꽃이 이어졌지만, 그 뒤로는 정말 소식이 없었다. 카네이션을 보내주지 않는다고 서운해할 수도 없는 일이다. 카네이션이 없는 해마다, 남 몰래 천장에서 꽃을 꺼내 가슴에 달고 동네를 다니지 않았을까. 먼지 낀 꽃은 1년에 한 번씩 그렇게 외할머니의 가슴으로 내려왔다가 다시 거기 올라가 피어 있던 게 아니던가. 꽃을 꽂으며, 그는 섭섭함을 키운 게 아니라, 그를 떠난 '인연'이 어디서 잘 살고나 있는지 걱정하며 그리워했으리라. 외할머니는 그러고도 남을 사람이다. 어버이날, 나의 플라스틱 카네이션을 기다리는 사람은, 얼마나 많을까. 문득 여기저기 미안해지면서 마음이 울컥해진다.
글=향상(香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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