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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동여담]아내의 '남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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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당한 일이었다. 아침에 출근하려고 씻고 옷 입고 구두를 꺼내 신으려고 하는 참이었다. 아무리 찾아도 그 신발이 없었다. 새로 사서 고이 모셔놓고, 벌써 여러 날 신고 나가고 싶은 욕망을 억누르며 아껴온 터였는데….

혹시나 싶어 베란다까지 샅샅이 뒤졌지만 보이지 않는다. 하는 수 없이 잠자고 있는 아내를 깨운다.
"아니, 어제까지 분명히 신발장에 있던 구두가 어디 간 거지?"

"아, 그 신발 당신이 안 신길래 큰놈보고 신으라고 했는데. 어제 신고 나갔는데, 친구 집에서 자고 오늘 들어온다 했고."

그러니까 내가 아끼던 그 신발은 지금 큰놈 친구 집 신발장에서 뒹굴고 있다는 것인가.
근자에 이와 유사한 일이 부쩍 잦아지고 있다. 신발은 물론 카디건, 스웨터, 심지어는 속옷이나 지갑에 벨트까지 슬쩍슬쩍 사라져 버리는 일말이다.

아들 둘이 10대 후반에 접어들면서 우리 집 남자 셋의 덩치가 고만고만해졌는데, 이즈음부터 집안의 쓸 만한 내 물건은 더 이상 내 것이 아니게 된 것이다.

돌이켜보면 단초는 내가 제공했다. 사춘기를 넘긴 아이들의 급속한 신체적 성장이 신기하고 대견했기에 애지중지하던 내 물건들을 이것저것 두 놈에게 입혀보고 붙여보며 내심 흡족해했던 것인데, 문제는 이런 나의 도락을 곁에서 유심히 지켜보며 뭔가를 골똘히 궁리하는 시선이 있었다는 것이다. 나의 순간적 즐거움을 아내는 살림살이의 긴요한 수단으로 발전시킨 모양인데, 그 결과 오늘 아침과 같은 난감한 사태에 이른 것이다.

산뜻한 새 출발을 포기한 채 낡은 구두를 꺼내 신고 출근하면서, 나는 이 땅의 모든 가장이 직면하고 있는 서글픈 현실을 절감해야 했다.

내가 얹혀사는 아내의 가정에는 '남의 새끼 하나와 내 새끼 둘'이 공존하고 있으며, 나는 지금 '내 엄마가 아닌 아이들의 엄마'의 영역에 속해 있다는 것을.

사정이 이럴진대 "모성은 위대하다"고 찬양만 할 것인가?  

글=치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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