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도 정신머리 없는 수많은 인간들이 늘 필요할 때 필요한 물건을 찾지 못해 분개하는 상황들 가운데 냄비받침만한 것도 없으리라. 막 끓은 냄비를 놔야 되는 찰나에 찾아보면 평소엔 멀쩡하게 있던 것이 딱 고 순간엔 없다. 에라 모르겠다 하고 나무테이블에 놨다가 검은 나이테를 만들어내고 유리에 놨다가 탁자에 지진 가는 사태를 만난다. 이런 경험들이 트라우마로 축적되면서, 아마도 냄비받침이 필요 없는 세상이 곧 출현하지 않을까 싶다.
하여, 이 냄비받침은 자기가 살 여지를 만들어놨다. 냄비받침은 이미 기능으로만 버티는 물건이 아니다. 냄비받침의 디자인은 가히 예술을 뺨친다. 받침 속에 들어가는 온갖 다양한 예술적 표현들은, 저것이 냄비받침이라서 사는 것이 아니라, 아이폰 케이스 모으듯, 접시를 벽에 걸어놓고 감상하듯, 자체의 강렬한 매력을 발광하게 되었다.
어떤 사람들은 이미 눈치챘겠지만, 내 인생은 세상을 군침 돌게 하는 '요리'에서도 벗어났고, 그것을 끓여 올리는 '냄비'에서도 하차한 지라, 이제 냄비받침에 비근하는 라이프 개념을 스스로 받아들이고 있는 중이다. 그래서 말인데, 저 냄비받침에 유난히 마음이 가는 것이다. 냄비받침이 냄비보다 똑똑하려 해선 안 된다. 하지만 냄비받침이 제 구실을 못하면 부엌일이 돌아가겠는가. 늙은 집사처럼 묵묵히 살아가지만, 너 또한 천하가 낸 요긴한 존재이며 그놈의 기술이 나오기까지는 당분간 실직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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