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9년 3월 10일. 회장 취임 후 보름여 만에 POSCO홀딩스 포항 본사에서 열린 운영회의에 참석한 정준양 회장은 긴장된 표정을 한 직원들에게 이렇게 제안했다. 새 회장 체제를 앞두고 변화에 대한 두려움에 사로잡힌 임직원들은 물론, 정 회장 스스로를 위해 던진 말이었다.
‘기호지세(騎虎之勢)’라는 한자 성어가 정 회장의 현 상황을 대변한다. 호랑이 등에 올라타고 달리는 사람이 도중에 내릴 수 없는 것처럼, 지금은 도중에서 그만두거나 물러설 수 없다. 지난 3년간 정 회장은 포스코를 많은 부분에서 변화시켰고, 더 많이 변화시켜야 한다. 새 출발을 앞둔 그에게는 자축할 여유도 없다.
특히, 2012년은 정 회장의 롱런을 보장할 가장 중요한 한 해가 될 전망이다. 지난 2일 신년 프리젠테이션에서 “올해 임진년은 임진왜란 당시 시대상과 유사하다고 해도 될 정도로 대내외적으로 위기감이 팽배하다”고 전제했을 만큼 정 회장도 쉽게 상황을 예측하기 어려울 정도다. 2009년으로의 회귀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암담하다.
지난해 12월 13일 포스코의 정신적 지주인 박태준 명예회장이 별세한 뒤 정 회장은 그의 그늘을 받지 못하는 첫 포스코 회장이다. 올 4월에는 총선, 12월에는 대선 등 정치적 이벤트가 연이어 벌어진다. 정치적 이해관계와 맞물리며 경영구조가 견제를 받아왔던 포스코로서는 박 명예회장의 부재라는 부담까지 떠안게 됐다. 왠지 모를 불안감을 쇄신하기 위해서라도 정 회장은 과거보다 더욱 강력히 경영목표를 추진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실적으로 증명해야 포스코가 정치권으로부터 영구 독립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될 수 있기 때문이다.
고인은 생전 유언으로 “포스코가 국가산업의 동력으로 성장한 것을 대단히 만족한다”며 “더 크게 성장해 세계 최강의 포스코가 돼 달라”는 말을 남겼다. ‘세계 최강의 포스코’에는 2%p룰로 대표되는 경영 시스템 상의 최고는 물론, 임직원·국민이 주인인 포스코가 돼야 한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이 역할은 이제 정 회장이 맡게 됐다.
철강업계 관계자는 “정 회장 2기 체제가 확고히 진행되기 위해서는 예상되는 외부의 입김이 스며들지 못하도록 완벽한 경영체제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며 “정 회장으로서는 누구보다도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해야 할 시점이 됐다”고 전했다.
채명석 기자 oricm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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