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하반기 경제정책방향'을 통해 정책 청사진을 공개한 박 장관을 5일 오후 과천 집무실에서 만났다. '친서민'을 내세운 홍준표 의원이 한나라당 신임 당대표로 선출된 다음날이다. 박 장관은 한나라당이 '차떼기 정당'으로 몰락했던 2005년, 당 혁신위원장이던 홍 대표와 함께 뉴(New) 한나라당의 정강정책을 설계했다.
다음은 박 장관과의 문답.
- 홍준표 한나라당 신임 대표가 선출됐다. 친서민을 강조해온데다 당 서민특위 위원장을 겸하기로 했다. 정치권의 친서민 정책, 복지 수요가 폭증하지 않을까.
- 새 지도부가 반값등록금, 무상급식에 대해 정부와 다른 생각을 갖고 있는 듯한데.
"생각이 다 같을 수는 없지만, 출발점에서는 큰 차이가 없다고 본다. 목표는 같은데 경로만 차이가 있는 것이다. 토론을 통해 최대한 일치시켜 나가겠다. 반값등록금 정책은 복지의 일반 원칙과 재정의 지속가능성에 부합해야 한다."
- 새 지도부는 '소득세 감세는 철회할 수 있다'는 쪽으로 의견을 모으는 것 같다.
"용어를 정확히 쓰자. '철회'는 청약했다 거둬들이는 것이지만, 이 경우엔 하기로 한걸 뒤집는 것이니 철회가 아닌 '번복'이다. 당론은 아직 정해지지 않은 것으로 안다."
- 장관도 최근 '소득세 감세 문제는 양보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힌 걸로 아는데.
"오해다. 감세는 원칙대로 해야 한다는 게 확고한 입장이지만, 논리적으로 소득세 감세보다는 법인세 감세 약속을 지키는 게 더 중요하다는 의미였다. 요사이 일본 기업들의 국내 투자가 많아졌다. 현행법을 보고 투자 계획을 세웠는데 법을 바꾸면 신의성실의 원칙 위반이다.
법인엔 주주만 있는 게 아니다. 수많은 근로자와 협력업체들이 있다. 법인세를 낮춰 이들에게 혜택이 돌아가면 결국 소비자에게도 이득이다. 수출을 많이 해 흑자가 나면 환율도 내려가고 물가도 자연히 떨어지지 않나. 법인이 잘 되면 세수도 늘고, 외화도 들어오고 일자리도 늘어난다. 가급적 기업 활동을 돕는 여건을 만들어야 한다."
- 정부의 부동산 대책이 헷갈린다. 가계부채 관리방안과 재건축 초과이익 환수율을 낮추는 부양책을 함께 내놨다. 앞 뒤가 안 맞는 것 같다.
"부동산 정책의 딜레마다. 인위적으로 경기를 부양하면 당장은 좋아도 두고두고 대가를 치러야 한다. 인위적인 부양은 하지 않는다. 수 년 동안 부동산 가격이 과도하게 올라 거품이 있는 상태다. 이게 정상화되는 과정이라고 본다. 수도권과 지방의 터무니없는 괴리도 줄어드는 추세다. 정상화 과정에서 나타나는 아픔이 있다. 이걸 국민들에게 솔직히 설명해야 한다. 정부에 '좀 더 과감하고 획기적인 정책이 필요한 게 아니냐'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거시경제 정책은 과감하게 하면 대가를 치르게 된다. 이번엔 앞으로의 정책 방향에 대한 신호를 준 정도로 이해해달라."
- 유류세 인하, 원유에 붙는 할당관세 인하를 두고 지식경제부와 이견이 큰 듯하다.
"유류세 인하가 어렵다는 데는 이견이 없다. 할당관세 인하는 지경부의 입장도 일리가 있지만, 사재기 등 주유소들의 대응도 있을 것이다. 여러 변수를 봐야 한다. 유가나 환율이 어떤 흐름을 보이는지도 지켜봐야 한다. 관세를 내려 얻을 효과는 리터당 20원 미만인데 세수는 매월 1100억원이 준다. 감질나게 내리면 내리고도 욕 먹는다."
- 성장률 전망치를 낮춰 '747 공약'을 버렸다는 평가가 나왔다. 그런데도 장관은 '747 공약은 여전히 유효하다'고 주장한다. 고집 아닌가.
"다음 정권에서도 '747 공약(7% 성장, 4만달러 소득, 7대 강국 도약)'은 계속 추진했으면 좋겠다. 5년 임기 내에 하려던 단기 목표가 아니다. 10년의 시계를 보고 잡은 목표다. 포기할 수 없다. '왜 넌 큰 꿈을 꾸느냐'고 나무랄 수는 없는 것 아닌가? 남이 볼 때 불가능한 목표도 성취해 낸 게 우리 국민들이다.
문제는 '7% 성장'인데 서비스 산업의 생산성을 높이고, 쓸데없는 규제를 걷어내고, 감정에 쏠리는 담론구조를 합리적으로 바꾸면 2%p 정도는 끌어올릴 수 있다. '잠재성장률이 4.5%이니 그 만큼만 성장하자'고 말한다면 리더라고 할 수 없지 않나. 세계 7위 안에 들자는 목표를 손가락질해선 안된다."
- 외식비가 물가 상승을 부추기는 것 같다.
"외식비는 시장친화적으로 관리해야 한다. 5000원이던 칼국수를 왜 6000원 받냐고 따질 수 있나. 대신 가격 정보가 신속히 유통돼야 한다. 가격을 많이 올린 가게 정보를 수집해 순위를 매기는 데엔 시간이 많이 걸리니 밀가루 값이 올랐는데도 메뉴판 가격을 안 올린 집을 조사해 공개하면 된다. 자진신고를 받고 소비자 단체들이 나가 점검한 다음에 정보를 공개하면 된다.
우리 국민들은 상호작용을 많이 하니까 공동체 의식을 발휘해 과도한 외식비 인상을 억누를 수 있다. 그럼 '인사동發 칼국수 값 동결기조 확산' 같은 기사도 볼 수 있을거다. 미국의 '컨슈머 리포트(세계적인 소비자 잡지)' 같은 걸 만들어 소비자 스스로 외식비 인상을 억제하는 거다."
- 거듭 "교병필패(驕兵必敗·교만한 병사는 반드시 패한다)"를 경고해 눈길을 끈다. 곧 단행할 인사 원칙을 강조한 건가.
"누구나 우쭐할 때와 의기소침할 때가 있다. 사고나 나거나 실수를 하는 건 대개 우쭐할 때다. 재정부 직원들은 똑똑하고 열심히 일한다. 정책 수단도 가지고 있다. 엘리트들에겐 교만하지 말라는 충고가 더 필요할 것이라 생각했다. 외국 속담을 빌면 '그 사람의 신발에 발을 넣어 걸어봐야 한다'고 조언하고 싶다. 누굴 특정해 하는 말은 아니다."
- 휴가 계획은.
"다른 일정을 소화하면서 겸사겸사 솔선해 갈 것이다. 직원들은 나보다 하루라도 더 쉬라고 할 생각이다.(박 장관은 이달 20일부터 3박 4일 동안 제주 신라호텔에서 열리는 '대한상의 제주포럼'에 참석할 예정이다)"
박연미 기자 chan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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