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리콘 사업 적자에 IPO 무기한 연기
SJL파트너스 보유 지분 20%에 콜옵션 행사
KCC "NYSE 상장시점 계속 저울질"
KCC 그룹 지주사인 KCC가 하나은행 등으로부터 4000억원의 자금을 조달했다. SJL파트너스가 보유한 KCC의 미국 실리콘 사업 자회사 ‘모멘티브' 지분 20%를 인수하기 위한 자금 조달로 관측된다. KCC는 SJL로부터 투자받을 때 5년 내 모멘티브 상장을 약속했는데, 기한 내 상장이 어려워지면서 SJL이 보유한 지분을 인수해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30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KCC는 최근 하나은행 등을 주관사로 만든 특수목적법인(SPC)으로부터 4000억원의 대출을 받았다. 이를 위해 하나은행이 SPC에 3000억원어치의 유동화대출(ABL)을 실행하고, SPC가 추가로 1000억원의 유동화어음을 발행해 KCC향(向) 대출 재원을 마련했다. 전체 대출의 만기는 3년으로 알려졌다.
KCC는 모멘티브 인수 때 참여한 재무적투자자(FI) 보유 지분을 인수하기 위해 대규모 자금을 조달한 것으로 보인다. KCC는 2019년 모멘티브를 인수하면서 사모펀드 SJL파트너스와 컨소시엄을 꾸렸다. KCC는 당시 SJL을 투자자로 유치하면서 인수 후 5년이 지난 시점인 올해 5월까지 모멘티브를 미국 증시에 상장하기로 약속했다. 상장을 통해 SJL이 지분 엑시트(시장 매각)를 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겠다는 약속이다.
상장이 불발되면 SJL이 KCC에 모멘티브 지분을 공동으로 매각할 것을 요구할 수 있는 ‘드래그얼롱 (Drag Along)’ 조건이 붙었다. 상장에 실패했는데 KCC가 지분 매각을 원하지 않으면 SJL이 보유한 지분에 대해 콜옵션(되사올 수 있는 권리)을 행사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SJL이 보유한 모멘티브 지분 20%의 가치에 5년간 5% 복리를 적용한 약 4000억원 규모의 자금이 필요하다.
KCC는 모멘티브의 뉴욕증권거래소(NYSE) 상장을 위해 지난해 8월 씨티글로벌마켓증권과 모건스탠리, 골드만삭스 등을 주관사로 선정하고 상장 절차에 돌입했다. 상장으로 조달한 자금으로 모멘티브 인수 때 빌린 인수금융 18억달러(약 2조원)를 상환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실리콘 사업이 적자를 기록하면서 기한 내 상장이 어려워졌다.
IB업계 관계자는 "당초 모멘티브의 상장 기업가치가 5조~7조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됐으나 최근 실적 부진으로 기업가치 하락이 불가피해졌다"면서 "이 때문에 최근 상장을 철회하고 FI 지분을 매수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고 전했다.
KCC 관계자는 "모멘티브 상장 기한이 도래하기 전에 FI 측과 선제적으로 협의해 지분을 매수하기로 했다"면서 "그렇다고 상장을 철회하지 않고 장기적으로 상장 시기를 저울질할 것"이라고 전했다.
KCC는 모멘티브 상장에 실패하더라도 현금과 삼성물산 지분 등의 보유 자산으로 충분히 대응할 수 있다고 자신해 왔다. 현금성자산과 단기금융상품이 2조원에 달하고, 삼성물산 지분 9.8%의 가치도 2조원을 넘어 외부 자금 조달 없이 자력으로 콜옵션 행사를 할 수 있다는 입장이었다.
그런데도 대규모 자금을 조달한 것은 보유 현금성 자산 못지않게 KCC의 단기 상환 부담이 크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KCC는 모멘티브 인수와 실리콘 및 건설·건자재 사업 부진 등으로 지난해 말 기준 연결 기준 차입금이 5조3000억원에 육박했다. 이 중 1년 이내에 상환해야 하는 단기차입금과 장기유동성부채가 2조1600억원에 이른다.
IB업계 관계자는 "단기 차입금 부담이 큰 상황에서 실리콘, 건설, 건자재 사업 모두 수익성 악화에 시달리면서 현금흐름이 나빠졌다"면서 "삼성물산 지분은 당장 팔지 않고 보유하면서 모멘티브 상장 불발에 대응하기 위해 추가로 자금을 조달한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임정수 기자 agremen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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