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천장 깬 양자경 "여성들, 전성기 지났다는 말 믿지 말라"

제95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
환갑 양쯔충 亞 최초 여우주연상
3.8kg 오스카 트로피 한 손 번쩍
소감 통해 아시아·여성 희망 이야기
"역사상 가장 큰 업적" 외신 찬사

"여성 여러분, 전성기가 지났다는 말을 절대 믿지 마세요."

"오늘 밤 이 상은 나 같은 모든 소녀, 소년들에게 희망과 가능성의 신호등이 될 겁니다."

배우 양쯔충(61·양자경)은 3.8kg 오스카 여우주연상 트로피를 한 손으로 번쩍 들어 올리며 이같이 외쳤다. 아시아와 여성에게 견고하던 미국 할리우드의 유리천장이 와장창 부서지는 순간이었다.

[사진출처=REUTERS·연합뉴스]

양쯔충은 13일(한국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 돌비극장에서 열린 제95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타르'의 케이트 블란쳇, '더 파벨만스'의 미셸 윌리엄스, '블론드'의 아나 데 아르마스, '투 레슬리'의 앤드리아 라이즈버러를 제치고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말레이시아 출신 양쯔충은 95년 아카데미 역사상 아시아계 배우 최초로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연기상은 윤여정(여우조연상) 이후 두 번째이며, 백인 여성이 아닌 배우가 여우주연상을 받은 건 2001년 할리 베리 이후 21년 만이다.

현지 언론은 이를 올해 가장 큰 사건이라고 다루며 "양쯔충이 이번 오스카의 주인공", "아카데미 95년 역사의 가장 큰 업적"이라고 조명했다.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이하 '에에올')는 아시아계 미국인 가족이 다중 우주를 넘나들게 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영화로,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여우주연상, 작품상, 감독상 등 7관왕에 올랐다.

양쯔충은 미국 이민자 1세대로, 세탁소를 운영하는 에벌린을 연기했다. 에벌린은 현실 세계에서 동성애자 딸(스테퍼니 수 분)과 갈등을 빚고, 다중우주에서는 파괴자 빌런과 맞서 싸운다. 환갑의 량쯔충은 화려한 액션을 절도 있게 소화한다.

그는 미국 골든글로브상과 미국배우조합상(SGA) 등 40여개 시상식에서 여우주연상을 휩쓸었으며 오스카까지 품으며 완벽한 성과를 거뒀다.

그의 수상이 더 특별하게 다가오는 까닭은 소감에 있다. 양쯔충은 "나를 지켜보는 소녀, 소년들에게 희망과 가능성의 불꽃이 되길 바란다. 큰 꿈을 꾸고 그 꿈이 실현된다는 걸 보여주길 바란다"고 독려했다.

[사진출처=REUTERS·연합뉴스]

"여성 여러분. 여러분은 황금기가 지났다는 말을 절대 믿지 마세요. 이 상을 제 엄마에게 바칩니다. 모든 전 세계 어머니들께 바칩니다. 왜냐하면 그분들이 바로 '영웅'이기 때문입니다. 제 어머니는 84세입니다. 이 트로피를 말레이시아 집으로 가져가겠습니다. 이것은 역사를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전 세계를 울린 소감이었다. 그간 오스카상은 아시아와 여성에게는 유독 무거웠다. 이번 양쯔충의 수상은 여러 의미를 지닌다. 유의미한 소감 덕분에 상의 가치는 더욱 빛났다.

1962년 말레이시아에서 태어난 양쯔충은 영국 런던 왕립학교에서 공부했다. 영화 '예스마담'(1986)에 출연하며 얼굴을 알렸고 1987년 사업가와 결혼 후 은퇴했다. 1990년 이혼 후 연기에 복귀해 '폴리스 스토리3'(1992) '프로젝트S'(1993) 등에 출연했다.

할리우드로 건너가 '007 네버다이'(1998) '와호장룡'(2000) '게이샤의 추억'(2006) 등에 출연했으나 수상과는 거리가 멀었다. 이후 작품 활동이 뜸하던 량쯔충은 '에에올'로 24년 만에 할리우드 첫 주연을 맡았으며, 생애 첫 오스카 트로피를 들어 올리며 새 역사를 썼다. 그의 소감처럼 자신의 전성기를 또다시 갈아치우며 한계를 지웠다.

이이슬 기자 ssmoly6@asia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