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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한 詩]이파리의 저녁 식사/황병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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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원스럽게 쏟아지는 빗소리를 들으며 잠에서 깨어났어요

어머니 빗소리가 좋아요

머리맡에서 검정 쌀을 씻으며 당신은 소리 없이 웃었고

그런데 참 어머니는 재작년에 돌아가셨잖아요


나는 두 번 잠에서 깨어났어요

창가의 제라늄이 붉은 땀을 뚝뚝 흘리는 여름 오후

안녕 파티에 올 거니 눈이 크구나 짧고 분명하게 종이 인형처럼 말하는 여자 친구 하나 갖고 싶은 계절이에요


언제부턴가 누렇게 변한 좌변기,에 앉아 열심히 삼십 세를 생각하지만 개운하지 않아요


지독한 냄새를 풍기는 저 제라늄 이파리 어쩌면 시간의 것이에요

사람들과 방금 했던 약속조차 까맣게 잊는 날들

베란다에 서서 우두커니 놀이터를 내려다보고 있노라면

하나 둘 놀던 아이들이 지워지고

꿈속의 시계 피에로 들쥐들이

어느새 미끄럼틀을 차지하는 사이……


거울 앞에 서서 어느 외로운 외야수를 생각해요

느리게 느리게 허밍을 하며…… 오후 네 시.


바람은 꼭 텅 빈 짐승처럼 울고


살짝 배가 고파요.


[오후 한 詩]이파리의 저녁 식사/황병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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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병승. 1970년 생, 2019년 몰. 사는 데 실패한 사람. 그러나 언제나 미증유였던 사람. 詩를 쓴 사람. 채상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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