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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수평 개인주의의 부상과 관계의 분절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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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30, 40대를 만나는 횟수가 많아지면서 새삼 실감하는 변화는 수평화와 개인주의화다. 수년간 '갑질'을 사회적 적폐로 지탄해 온 영향도 있을 터이다. 예전에는 느닷없는 직장 상사의 '오늘 한 잔 할까?'라는 말 한 마디에 만사 제쳐 놓고 2차, 3차 고주망태가 될 때 까지 부어라 마셔라 하던 회식 문화가 있었다. 회사 일에, 밤마저 꼬박 샜으니 몸이 온전할 리 없다. 술 냄새 풀풀 풍기면서 아침에 회사에 출근 해 눈도장 찍고 사우나로 향했다. 이메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없던 시절이었던지라 오프라인 미팅이나 전화통화가 중요했다.


그러나 요즘은 어림 반 푼어치도 없는 소리란다. 상사의 제안은 '콜'이 아니라 '다음번에'로 일언지하에 거절당하고 특별한 사유가 있을 때만 열리는 회식은 1차에서 마무리된다고 한다. 어려서부터 디지털에 익숙한 세대들이라 그런지 면대 면보다 온라인 회의와 소통을 선호한다.

상하관계가 느슨해진 만큼 동료 간 수평관계도 '우리' 위주에서 '개인'으로 옮겨가고 있다. 종일 같이 일하던 동료보다는 절친, 동호회, 자기 계발, 이마저도 힘들면 집에서 조용히 쉰단다. 혼밥혼술. 예전에는 인간관계에 문제 있는 걸로 투영되었지만 지금은 거리낌 없다. 조직에 대한 충성도가 엷어지면서 취직 빙하기라 어렵사리 얻은 직장 목을 매며 다닐 듯한데, 미련 없이 때려 친다고 한다. 오래 한 직장만 고수하더라도 지금의 상사가 누리는 권한과 혜택을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인 것도 하나의 이유이다. 이런 변화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더 나은 삶의 지수'의 워라밸(Work-life balanceㆍ일과 삶의 균형) 만족도와 같은 지표 값이 바닥을 찍고 있기에 28위인 우리의 행복 순위를 조금이나마 끌어 올려 주지 않을까?


우려가 없는 것은 아니다. 사회관계를 분절시켜 개인의 사회적 고립이 야기될 수도 있다. 사회학자 로버트 퍼트남은 저서 '나 홀로 볼링(Bowling Alone)'에서 '1970년대 미국에서 모임이 줄어드는 현상이 사회자본의 감소로 이어질 수 있음을 경고했다. 일본에서는 1991년 버블 붕괴 이후 바깥 외출을 삼가면서 사회생활을 거부하는 히키코모리(引き籠もり) 형 인간이 늘어나면서 심각한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었다.


구전 전통(oral tradition)의 단절도 걱정이다. 오프라인 만남과 대화는 이메일이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로는 표현하거나 남기기 어려운, 상사나 선배의 축적된 노하우를 전수할 수 있는 중요한 수단이다. 적정 거리 유지(at arm's length)하면 싫은 소리 안 들어 편하기야 하겠지만 틀린 말 없다는 옛말을 못 듣게 되고 내공 전수 빠진 업무 지시만 이루어지게 된다. 이는 곧 세대 간 단절로 이어질 수 있다.

한편 개인 간 벌어지는 간극을 규율하는 사회 규범도 점차 나아지고는 있으나 만족스럽지는 못하다. 밀도가 좁아진 엘리베이터 속 잡담, 집안을 밖같이 여겨 만들어지는 층간소음, 횡단보도 보행자보다 우선인 운전자, 방심하면 선을 빼앗기는 은행 ATM 줄, 뒷사람 문 건네주지 않기. 자칫 사소하게 보일 수도 있겠지만 서양서 터부시되는 행동들이 스스럼없이 이뤄지는 것은 나와 다른 상대방과 내 행동이 미치는 영향이나 배려가 없이, 우리는 하나지만 타인은 안중에 없는 구습에서 기인하는 바 크다.


수평개인주의의 진전에 따른 변화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약자의 범위를 경제뿐만 아니라 사회, 심리 영역으로 넓혀 배려되어야 할 것이고 단절된 세대 간, 좌와 우, 남과 여를 넘나들며 매개해 줄 수 있는 모더레이터(moderaterㆍ조정자)가 필요할 것이다. 규범은, 단 시간 내에 자리 잡기는 어렵겠지만 교육에 의한 끊임없는 학습과 외부 세계에서의 풍부한 경험이 중요할 것이다.


이내찬 한성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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