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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밀하게 두둑하게…국정원이 청와대에 돈 넘긴 다양한 방법(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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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밀하게 두둑하게…국정원이 청와대에 돈 넘긴 다양한 방법(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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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김형민 기자] 한적한 오후. 인적이 드문 국정원 건물 앞으로 검은색 차량 한대가 들어왔다. 국정원 관계자가 종이가방을 들고 차에 탔고 차 뒷좌석에는 청와대 비서실장이 앉아 있었다. 차량은 건물 앞 정원을 두 바퀴 정도를 돌았다. 그 사이 차 안에서는 종이가방이 청와대 관계자에게 전해졌다. 종이가방 안에는 5만원권이 두둑하게 들어 있었다. 바깥에 보는 눈들이 많다싶으면 차는 두세 바퀴를 더 돌고 관계자들을 내려줬다.

최근 서울중앙지법에서 한창 진행되고 있는 '국정원 특활비' 재판에서 나온 증언들 중에 나온 일부내용이다.
국정원이 청와대에 정기적으로 돈을 건넨 혐의로 이병기, 남재준 등 전직국정원장들과 이재만, 안봉근 등 전직 청와대 비서관들이 재판을 받고 있다. 최근에는 박근혜 전 대통령이 이 내용으로 재판을 시작했다. 박 전 대통령은 2013년 5월~2016년 9월 총 36억5000만원의 특활비를 뇌물로 받은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국정원 특활비에 관한 재판은 열릴 때마다 국정원에 청와대에 돈을 건넨 다양한 방식들이 증언돼 눈길을 끈다. 이헌수 전 국정원 기획조정실장, 신동철 전 청와대 정무비서관 등 돈이 건네지는 과정에 참여한 인물들이 이에 대해 자세히 밝혔다.

종이가방과 봉투를 돈을 넣을 수단으로 가장 많이 사용했다. 뇌물과 로비의 상징물로 알려진 007가방은 눈에 잘 띄고 돈을 받은 후 이동할 때도 주변사람들로부터 의심을 받기 쉬워 피했다. 반면 종이가방과 봉투는 흔한 일상용품이어서 조용히 돈을 전달하기에 용이했다.
이재만 전 청와대 비서관은 "박근혜 전 대통령이 국정원에서 봉투가 오면 받으라고 했다. 처음에 받았을 때 봉투 내용물이 돈인지 몰랐다. 대통령에게 보고하고 내 방에 돌아와 봉투를 열어보고 그때서야 돈인줄 알았다"고 말하기도 했다.

띠로 묶인 신권인 '관봉'으로 전달된 경우도 있었다. 김진모 전 청와대 민정비서관은 국가정보원의 돈을 받아 민간인 사찰 의혹 폭로를 무마하는 데 쓰는데 관봉으로 전달했다. 신승균 전 국정원 국익전략실장은 2012년 김 전 비서관이 자신에게 전화해 "관봉으로 국정원 돈인지 알 수 있느냐"고 물었다고 증언했다.

사과박스에 돈을 숨겨 전달했다는 진술도 있었다. 잡지 사이에 돈 봉투를 끼워서 건네는 방식도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박근혜 정부 시절 추명호 전 국정원 국익정보장은 매달 서울의 한 호텔 커피숍에서 신동철 전 청와대 정무비서관을 만나 잡지 한 권을 줬다. 잡지에는 조윤선 전 정무수석의 500만원, 신 전 비서관의 300만원이 든 봉투 2개가 끼워져 있었던 것으로 검찰이 조사했다.

재판에서 나온 진술들에 따르면 국정원 특활비는 국정원의 예산에서 나왔지만 사용처를 증빙해야 하는 요건이 완화돼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특활비를 청와대에 전달하든, 다른 용도로 사용하든 사전에 그 용도를 구체적으로 기재하지 않아도 됐다. 사용 이후에 증빙자료를 제출할 때도 그 내용이 구체적이지 않아도 됐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돈이 나갈 때는 국정원장의 지침이 있었고 이를 받아서 청와대에 전달하는 기획조정실에서는 이에 대해 "잘못된 일"이라며 반기를 들 수 없었다. 국정원 관계자는 "국정원이 상명하복 구조의 시스템이기 때문에 원장님이 지시한 부분에 대해서 따라야 한다는 생각 밖에 없었다"고 진술했다.

국정원 특활비 전달은 박 전 대통령 때 잠시 중단된 일도 있었다. 검찰에 따르면 2016년 8월 초순경 미르·K스포츠재단 설립과 관련돼 언론에서 의혹을 제기하는 기사가 쏟아져 나오자 청와대 내부와 국정원에서는 특활비가 전달된다는 내용까지 언론을 통해 보도되면 정치적인 공세가 심해질 것이라는 염려의 목소리가 나왔다. 이를 보고 받은 박 전 대통령이 "중단해야겠네요"라고 비서관들에게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재판은 이렇듯 국정원 특활비의 전달 과정과 내용들에 상세한 진술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건네진 국정원 특활비에 대해 뇌물로 볼 수 있느냐가 쟁점이 되고 있다. 검찰측은 "대가성으로 청와대에 전달된 뇌물"이라는 입장이고 국정원장 및 청와대 비서관은 "대통령이 시켜서 한 일"이라며 책임을 회피하고 "관행이며 예산 범위에서 국가기밀사업에 사용된 돈으로 뇌물이 아니다"라는 주장을 펴고 있다.

국정원 특활비의 전모는 재판이 진행될수록 더 많이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박 전 대통령이 관련 재판을 시작한 가운데 다음달 이명박 전 대통령도 이 내용에 대해 재판을 받는다. 이 전 대통령 시절에는 국정원 특활비가 달러로 환전돼 이 전 대통령의 부인인 김윤옥 여사에게 전달됐다는 진술이 검찰 조사에서 나왔다. 특활비 1억원이 달러로 바뀌어 전달됐고 김 여사가 이를 명품 구입 등에 썼다는 내용이다.




김형민 기자 khm193@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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