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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호의 라이브 리뷰] 음악과 건축의 동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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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향 대한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 공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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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향의 '음악과 건축의 동행' 공연이 지난 18일 저녁 정동 대한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에서 열렸다. 평소 예술의전당이나 롯데콘서트홀에서 정기 연주회 프로그램으로 애호가들과 만나던 서울시향이 도심 속 종교 공간에서 직장인을 상대로 강의식 공연을 열었다.

 보통 오케스트라를 위한 악기는 콘서트홀이라고 한다. 소리가 반사되어 울리는 잔향 시간이 2초 전후일 때, 클래식 감상에 최적이라는 합의가 오랜 건축학적 연구 결과로 자리 잡았다. 이날 해설을 맡은 건축가 황두진은 성공회 서울성당에 약 600명 가량이 착석할 경우, 2초 정도의 잔향 시간을 기록한다고 전했다. 성당도 악단에 좋은 악기가 될 수 있을지, 음악과 건축의 상관성을 부연하는 해설 내용과 함께 실제 어쿠스틱 상태가 관심을 모았다.
 실제로 성공회 서울성장은 매년 4~5월과 9~10월 정오 음악회를 연다. 로마네스크 양식의 성당 내부에는 미사에 쓰이는 오르간이 구비되어 있다. 피아니스트 김대진이 2001년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전곡 세트를 연주한 곳도 같은 공간이다. 백건우는 1996년 천주교 명동성당에서 메시앙의 '아기예수를 바라보는 스무 개의 시선'을 연주했다. 이처럼 그동안 종교 공간은 주로 아티스트의 영감을 자아내는 곳으로 인식되어 왔다.

 그러나 세부음의 분산이 중요한 기악과 달리 소리의 집중과 블렌딩이 중요한 합창에는 성당 공간이 음향적으로 유용하다. 영국을 대표하는 고음악 단체 '더 식스틴'은 합창 공연을 배정하면서 아예 영국 내 주요 성당을 커버하는 순회 시리즈인 '필그리미지' 프로젝트를 수행 중이다. 아시아를 대표하는 고음악 단체인 일본의 '바흐 콜레기움 재팬'도 고베여대 예배당에서 정기 연주회를 연다. 서울시향도 서울시내의 구청 강당과 교회를 방문하는 '찾아가는 음악회'를 이어왔지만 단체의 지속 가능을 위해 협력 파트너를 종교 시절로 넓혔다.

 공연의 시작은 존 윌리엄스 작곡의 영화 '스타워즈' 가운데 다스베이더의 테마를 오르간 앞에서 트롬본 주자 세 명이 연주했다. 세트 리스트가 종교곡으로 일관하리라는 예상을 깨는 선곡이었지만 연주 수준이 흡족하진 않았다. 시민을 환영하는 의미와 여름을 찬미하는 뜻을 담았다는 해설과 함께 헨델의 '대관식 찬가'와 수상 음악 중 일부가 연주됐다. 오르간과 팀파니가 거리를 두고 공명을 만드는 대관식 찬가 중 '제사장 사독'의 연주에서 공연의 실질적 내용인 공간과 건축의 어울림을 비로소 체험할 수 있었다. 음장감을 관객이 서라운드로 즐기도록 최대한 여음을 가져가려는 정성이 공간을 악기로 다루는 자세 그대로였다.
 칼 젠킨스의 파라디오,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피치카토 폴카, 모차르트 레퀴엠 중 '라크리모사'를 다루는 스트링 섹션은 보다 순도 높은 연주로 관객과 만났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국내 오케스트라 운영 여건에서 일반 시민 대상의 연주를 정기 공연 수준으로 유지하는 건 쉽지 않다. 정기 연주회와 대민 행사 연주에 거의 동등한 수준의 수당을 단원에 지급하는 영국 주요 오케스트라의 사례도 서울시향은 행사의 내실을 위해 참고할 만하다.

 도종환 시에 이건용이 곡을 붙인 '혼자 사랑'은 보컬리스트 알리가 부르고 첼로 주자 박은주가 오블리가토를 담당했다. 바흐 무반주 첼로 모음곡에서 모티브를 얻은 반주 음형이 귀를 붙잡았지만, 성공회가 한국에 이식되는 과정과 가곡의 탄생을 유비한 해설은 공감하기 어려었다. 서울시향 바이올린 단원 한지연이 독주자로 나선 피아졸라의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사계 중 '여름'이 관객 호응도 뜨겁고 연주 성취도 정점에 달했다. 현과 활이 미끄러지면서 내는 마찰음(글리산도)을 연주자도 만끽하고 관객도 즐길 수 있는 면에서 성공회 서울성당은 실내악 공연장으로 합격점을 줄만 하다.

 100여년전 건축가 아더 딕슨이 서울 성당의 설계에 착수했지만 1차대전에 따른 자금난으로 결국 성당은 70여년간 주요부만 완성된 채, 미완으로 70여년의 세월을 보냈다. 1926년 1차 완공 당시 마크 트롤로프 주교는 "훗날 한국교회가 나머지를 완성할 것"이라고 미래 세대의 저력을 긍정했다. 2017년 서울성당 공연을 지켜본 관객이 후대를 위해 해줄 일은 무엇인가.

 성공회 서울성당과 주변은 4.19 시위의 거점 중 하나였고 1987년 6월항쟁의 진원지였다. 종교가 시민과 함께하고 음악이 우리의 실제 역사와 만나기 위해 서울시향의 이번 시도는 시립 악단으로서 당연한 임무를 다하는 것이다. 공연 기획의도의 마무리가 "이 공연을 우리와 같은 이 시대의 직장인들에게 바친다"이다. 직장인이 규정된 시간에 퇴근하고 콘서트홀로 가서 예술가에 대한 존중을 표하는 전통을 확립할 때, 서울성당 안의 소리들이 세상 밖의 울림으로 공명할 것이다.

한정호 객원기자

한정호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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