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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한 詩] 짜장면/강은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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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멘트 바닥에 무릎을 기역 자로 꿇고, 가장자리에 검붉은 피칠을 한, 널브러져 있는 짜장면 그릇들(검붉은 짜장면이 남아 있기도 하고 먹다가 만 듯 휘저어져 있어 짜장면이 부은 것 같기도 한)을 은빛 통에 담는 남자의 구부정한 모습, 그는 이 시대의 성자가 분명하다, 무릎을 어떤 수도사들보다 진지하게 꿇고 있다, 게다가 곤색 잠바를 수도복처럼 수그리고 있고, 그 위로 수도의 눈물처럼 방울방울 빗방울이 굴러 내리고 있다. 그는 기도하고 있다

 기도의 소리 울리는 이곳 시멘트의 성소. 이제 그는 그리스도처럼 두 팔을 벌리고 은빛 '철가방'을 등에 지고 골고다 언덕으로 나갈 것이다. 오토바이를 타고 아름다운 금발, 등 뒤로 펄럭이며, 항상 뒷모습만 보여 줄 것이다. 비 내리는 갈릴리 호숫가에서 뇌성처럼 경적 소리도 요란한 이 시대를 먹여 살릴 것이다. 아, 하늘을 나는 짜장면 한 그릇, 부활할 것이다. 부활할 것이다. 짜장면 한 그릇.

[오후 한 詩] 짜장면/강은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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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든 간다. 언제든 간다. 철가방은 간다. 전화벨이 울리면 간다. 반지하 자취방에도 가고 철야 중인 인쇄소에도 가고 당구장을 들러 경찰서에도 간다. 점심때도 가고 저녁을 먹다가도 가고 새벽 두 시에도 두 눈을 부릅뜨고 간다. 빠라빠라빠라밤. 간다. 가서 연다. 철가방을 연다. 철가방을 열 때마다 짜장면과 짬뽕과 우동과 군만두와 단무지가 바라던 자에게 바라던 만큼씩 꼬박꼬박 배달된다. 울면 안 준다 따위의 협박은 없다. 그대 가는 길이 비록 꽃길은 아니어도, 지나가는 곳마다 배고픔이 사라지고 기쁨으로 충만하나니, 철가방이여, 아니, 우리 "시대의 성자"여! 오라, 어서 오라. 채상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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