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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터삶터] 죽음에 관한 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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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주 에세이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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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끊다’는 말이 있다. ‘애’는 창자의 옛말이니 창자가 끊어진다는 뜻이다. ‘애끓다’와 자주 혼동되는데, 창자가 부글부글 끓는 것과 뚝 끊어지는 것은 비교가 되지 않으므로 극도의 슬픔을 표현할 때는 ‘애끊는’이 쓰인다. 이를테면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받아들여야 하는 상황처럼, 문자 그대로 ‘가슴이 찢어지는’때. 새삼 이 단어를 떠올린 건 최근에 ‘빙의’라는 단어가 반복적으로 들리기 때문이다. 나라를 쑥대밭으로 만든 두 사람의 인연이 빙의로부터 시작됐다는 말이 나오니, 일단은 귀부터 의심했지만, 그들 사이에 존재하는 죽음에 대해 돌연 골똘해지는 것이다.

몹시 슬퍼 창자가 끊어질 듯한 죽음을 나는 겪어보지 못했다. '아직' 겪어보지 못했다는 사실을 두려워하며 다만 짐작할 뿐이다. 그 상실감은 다시 만날 수 있다는 믿음 없이는 극복하기 힘들 거라고. 내가 죽어 재회할 수 있다는 희망만이 지금 나를 살게 할 거라고.
고 박완서 선생은 한 수필에서 아들을 잃었을 때의 단장(斷腸)을 이렇게 고백했다. ‘참척을 겪고 나자, 극락이든 지옥이든 사후에도 영혼이 가는 고장이 있어서 다시 만날 수 있다는 걸 믿지 않으면 미칠 것 같았다.’그러면서 평소엔 거들떠도 안 본 책들, 임사체험을 한 사람들의 증언이나 영계와 접신했다는 영매 이야기 등을 골라 읽으며 식구들에게 그런 책을 더 구해 오라고 진통제 찾듯 호소했다고 썼다. 그 ‘효과’를 선생은 이렇게 기억했다. ‘소금물로 갈증을 축인 듯 위안은 짧고 고통만 진해졌다.’

죽음 너머를 알려는 욕망이 지독해지면 어떤 이들은 종교로부터 귀띔을 얻으려 하고 어떤 이들은 보다 실증적인 설득을 간구하기도 하지만, 학식도 종교도 없는 내가 골몰할 수 있는 것은 정답이 아니라 태도다. 죽음에 관한 태도. 그 누구도 죽음 이후를 어쩌지 못하지만 죽음을 끌어안는 방식은 남겨진 이들의 몫이니까. 상실의 폐허에서도 기어이 삶의 격(格)을 축조하는 사람들이 있다. 사랑하는 이를 오롯이 보내면서도 그의 자취를 부정하거나 외면하지 않기를 선택한 이들. ‘가슴에 묻는다’는 말이 그래서 아프다. 나는 어떤 초월적 교리보다 그런 이들로부터 인간이 구원에 다가갈 수 있음을 느낀다. 특히 요즘처럼 인간을 향한 혐오와 불신이 버릇이 될 때는.

죽은 부모의 영이 누군가의 몸으로 들어올 수 있다거나 누군가를 통해 부모의 혼백과 연결될 수 있다고 믿는 것 또한 죽음에 관한 하나의 태도일 수 있다. 그 자체만 보면 말이다. 개인의 사후관을 두고 시비를 논하기는 어려운 것이다. 다만 그 개인에게 ‘가슴에 묻는’슬기가 전무할 때, 그래서 한평생 망자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않기를 선택했을 때, 게다가 그가 자연인이 아니라 한 공동체의 지도자일 때 어떤 참극이 벌어질 수 있는지를 목격하며 생각한다. 저이는 과연 죽음을 뭐라고 생각하는 걸까. 제 생에 죽음 따위 영원히 오지 않을 듯 한평생 탐욕을 놓아본 적 없는 사람이, ‘죽을’죄를 지었다고 말할 때도 똑같이 생각한다. 저이는 과연 죽음을 뭐라고 생각하는 걸까.
아직 내 곁에 있는 사람들, 그러나 내가 먼저 떠나보낼지 모를 그들에 대해 나는 조금이라도 슬기를 발휘할 수 있을까. 가족의 죽음을 그려낸 박완서 선생의 몇몇 작품을 펼쳐 비극을 건넌 인간이 쌓아올린 격조를 확인한다. ‘애끊는’죽음 앞에서도 훼손되지 않는 격조가 그래도 있구나, 안심하면서.

이윤주 에세이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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