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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동여담] 선유도…섬이 섬 다울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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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7년 전 군산항 여객터미널. 목덜미에 와 닿는 바닷바람이 후덥지근합니다. 여름의 한복판에 들어섰습니다. 어깨에 내리꽂히는 햇살도 따갑습니다. 대학생이 되고 두 번째 맞는 방학입니다. 경상도 머스마(사내아이의 방언) 넷이 군산항 광장을 서성입니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1년을 더 거슬러 올라 남해 밤바다, 서울에서 여행 온 여대생 넷을 만났습니다. 머스마들은 그녀들의 나긋나긋한 서울말과 행동에 흠뻑 빠져버렸습니다. 백사장에서 수건돌리기(믿거나 말거나 그 당시 가장 재미난 놀이였다)를 하며 여름추억을 만들었습니다. 다음날 물놀이를 하자는 약속과 함께 헤어졌습니다. 그리고 머스마들은 짐을 싸 남해를 떠났습니다. 줄행랑을 친것입니다. 이유는 딱 집어 말할 순 없지만 그냥 서울 여자들이 무서웠습니다.

1년이 흐른 후, 군산항에서 그 여대생들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몰래 도망간 사건(?)을 만회하기 위해 여행을 제안했습니다. 남해에서 잠깐 본 사내들의 제안을 그녀들은 흔쾌히 받았습니다. 역시 무서운 여자들입니다. 고군산군도의 선유도(仙遊島)로 갑니다. 쾌속선이 드물던 시절, 군산항에서 뱃길로 3시간여 이상을 달렸습니다. 선유도의 첫 인상은 청정함이였습니다. 우뚝 솟은 봉우리와 유리알처럼 맑은 바다와 백사장이 어찌나 곱던지. 젊은날 선유도의 소중한 기억입니다. 동시에 아내의 기억이기도 합니다.
 선유도는 어떤 섬일까요. <仙遊島>, 이름을 그대로 풀어보면 '신선이 노니는 섬' 쯤 되겠죠. 유인도 16개, 무인도 47개로 이뤄져있는 고군산군도를 대표하는 '섬 속의 섬'입니다.

 <포구기행>을 쓴 곽재구 시인의 <선유도>란 시입니다. '섬과 섬 사이 새가 날아갔다/보라색의 햇살로 묶은 편지 한 통을 물고/섬이 섬에게 편지를 썼나 보다.’ 시인은 "백사장을 본 순간 세상에서 가장 맑고 넓은 원고지를 생각하고 손가락으로 한 편의 시를 썼다"고 했습니다. 굳이 시인이 아니더라도 선유도의 풍광을 보는 순간 시심이 꿈틀 될 만합니다.

 최근 선유도 가는 다리가 일부 개통 했습니다. 새만금방조제가 있는 신시도에서 무녀도 구간입니다. 무녀도~장자도 구간은 내년 말에 개통된다고 합니다. 선유도와 장자도는 이미 다리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1km도 안 되는 길이의 다리만 놓이면 고군산군도 주요 섬은 모두 육지가 되는 것입니다. 새만금방조제에서 자동차로 5분이면 도달하는 육지말입니다. '섬 속의 섬'은 이제 틀린 말입니다. 3시간여의 뱃길도 옛 추억일 뿐입니다. 상전벽해(桑田碧海)와 같은 변화입니다.
 주변지역은 벌써부터 관광특수에 들떠 있는 분위기입니다. 반면 늘어난 관광객들로 인해 불편을 호소하는 이도 생겼습니다. 섬은 섬다워야 합니다. 섬이 육지와 연결되면 더는 섬이 아닙니다. 고유한 문화와 자연은 본래 습성과 풍경을 잃고 마는 것이죠. 곧 육지가 될 섬을 생각하니 쉽게 갈 수 있다는 기쁨보다 허전하고 아쉬움만 몰려옵니다.

 선유봉, 대장봉, 망주봉…. 우뚝 솟은 선유도의 봉우리들이 눈앞에 선합니다. 더 늦기 전, 섬이 섬다울 때 찾아 봐야겠습니다. 27년 전 그 친구들과 함께.

 조용준 사진부장ㆍ여행전문기자 jun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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