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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와 벌, “아버지 대신 용서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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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대전) 정일웅 기자] 어머니와 여동생이 살해됐다. 하지만 가족을 잃은 슬픔도 잠시. 참담한 현실 속에서 남은 가족의 어깨를 짓누른 건 다름 아닌 아버지. 어머니의 남편이자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버팀목이 돼 주었던 당신이 법정에 섰다. 그것도 당신의 아내와 딸을 살해한 장본인으로.

‘아버지를 대신해 용서를 구한다’는 내용의 편지 두 통이 재판부에 연달아 배달됐다. 발신처는 피해자의 아들이자 오빠다. 또 그는 가해자의 아들이기도 하다.
단란했던 가정에 먹구름이 드리운 것은 지난 2014년 12월. A씨(61)는 당시 대전 소재 자신의 집에서 아내(47)와 딸(17)에게 수면제를 먹인 후 목을 졸라 살해했다.

2009년 다니던 회사에서 퇴직한 후 주식투자로 생활비를 마련해오던 A씨는 거듭된 투자실패로 경제적 어려움을 겪게 되면서 가족을 살해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을 계획을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극단적 선택으로 남편과 아버지의 길을 포기한 그가 종국에 서게 된 곳은 법원 심판대였다.
이 사건으로 A씨는 지난해 6월 대전지법(1심)으로부터 징역 25년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이에 불복, 심신장애 및 양형부당으로 대전고법에 항소장을 제출한 그는 항소심에서 원심의 형량에 10년을 더한 징역 35년을 선고받았다.

10일 대전고법 제1형사부(유상재 재판장)는 “피고인의 행위는 어느 면에서든 용납될 수 없는 반인륜적, 반사회적 범행”이라고 정의하며 “피고인의 양형부당 주장에는 이유 없고 검사의 양형부당 주장은 이유가 있다”고 판시했다.

또 A씨의 아들 B씨가 선고에 앞서 재판부에 보내온 두 통의 편지 내용을 언급했다. B씨는 사고가 있던 당시에 군인으로 복무하다가 지난해 7월 만기제대 했다.

재판부가 대신 전한 그의 편지에는 “제대 후 집에 돌아가니 아무도 없었다. 참담한 기분이 들었다. 아버지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고 용서할 수도 없다. (중략) 경제적으로 상황이 어렵다라도 집을 팔아 빚을 갚고 월세방이라도 얻어 새로 시작했어야 했다. 나는 아버지와 같은 삶을 살지 않겠다” 등 원망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다만 “앞으로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꿋꿋이 살아가려 한다.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동생 몫까지 다 짊어지고 눈앞에 닥친 어려움을 이겨나가겠다”는 그는 “감히 재판부에 아버지를 용서해달라고 말할 수는 없다”며 “하지만 아버지를 대신해 용서를 빌고 싶다. 재판부에 아버지를 대신해 용서를 빈다”고 했다.

또 두 번째 편지에선 “어머니와 여동생의 묘소에 다녀왔다. 열심히 노력해 부모님과 여동생이 못 다한 삶을 열심히 살아가겠다. (중략) 재판부에 다시 한 번 아버지를 대신해 용서를 구한다”고 재차 심경을 밝혔다.

이와 관련해 재판부는 “피고인의 아들은 두 번에 걸쳐 참담한 심정을 서신으로 진솔하게 표현했다”며 “일순간 어머니와 동생을 잃고 가족을 살해한 아버지를 두게 된데 따른 충격과 평생 고아 아닌 고아로 살아가야 하는 심경을 읽을 수 있었다”고 했다.

하지만 “피고인에게 유리한 정상들을 충분히 참작하더라도 원심이 피고인에게 선고한 형(징역 25년)은 너무 가벼워 부당하다”고 판결배경을 설명했다.



대전=정일웅 기자 jiw3061@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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