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앞 삐라 발견, 예술적 소통 고민…함경아 작가, 6년만에 국내 개인전
'Are you lonely, too?', 2014~2015년. 2200시간/두명, 가로 202cm*세로 199cm. 사진: Keith Park, 이미지제공: 국제갤러리
[아시아경제 오진희 기자] 대형 캔버스에 현란한 색과 무늬들이 넘실거린다. 색에 파묻혀 잘 보이지는 않지만 유심히 들여다보면 'Are you lonely, too?(당신도 외롭나요?)'와 같은 극히 개인적인 문구를 찾을 수 있다. 실크실로 한 땀 한 땀 수놓은 자수 작품이라는 사실도 놀랍지만 한국의 작가 함경아(49)가 기획한 도안을 북녘의 자수공예가들이 받아 정성껏 새겨 보낸 그림이란 점에서 더욱 특별하다.
함경아 작가가 6년 만에 국내 개인전을 열었다. 이번 전시는 남북 여성들의 협업 작품이라 할 수 있다. 가로, 세로 길이가 2m에 가깝거나 이보다 더 큰 캔버스 자수 그림이 10여 점에 이른다.
작가는 '자수'라는 방식을 택한 이유로 "인터넷을 통해 많은 부분이 접근 가능해진 디지털 세상에서 가장 아날로그적이고 노동집약적인 것이 무엇인지 생각했다. 그게 바로 자수였다"며 "작품이 북한에서 오랜 시간에 걸쳐 돌아올 때 예상과 다르거나 불만족스러운 것도 없진 않았지만, 그 중엔 예술적인 수준이 높은 것들도 많아 감탄을 금치 못했다. 작업을 통해 내가 느낀 감동을 북한의 공예가들도 느꼈으면 좋겠다"고 했다. 함 작가는 디지털 작업으로 픽셀화된 이미지 도안을 만들어 중국을 통해 북으로 보냈다. 다시 작가에게 작품으로 돌아올 때까지는 보통 1년 반~2년이란 시간이 소요된다. 중간에 압류되거나 행방불명이 되는 사례도 더러 있다.
전시장 두 곳에서 선보인 자수연작에는 '체스판이 동틀 녘까지 그들을 지체시킨다. 두 색이 증오하는 냉혹한 영역에', '문자 서비스 시리즈', '돈은 결코 잠들지 않는다' 등 시나 영화제목, 유행가 가사, 작가 개인의 감정들과 연관된 문구들이 적혀 있으며, 이는 곧 작품의 제목이 됐다. 추상이 아닌 구상 형태를 취한 '샹들리에 시리즈 5점'도 있다. 제목은 '당신이 보는 것은 보이지 않는 것이다. 다섯 개의 도시를 위한 샹들리에'다.
함경아 작가. 작품은 '체스판이 동틀 녘까지 그들을 지체시킨다. 두 색이 증오하는 냉혹한 영역에'. 2012~2013년, 1800시간/두 명, 189*189cm. 사진: Keith Park, 이미지제공: 국제갤러리
원본보기 아이콘자수 작품은 작가의 예술적 기획이 보이지 않는 타자의 노동행위로 구체화돼 이렇게 물리적 단절을 넘나드는 소통의 매개체가 됐다. 이들의 땀과 노동은 작품 캡션에 기록된 '작업 시간'에서 확인할 수 있다. 작가는 "정치적인 것을 건들고 싶은 마음은 없다. 다만 예술가로서 할 수 있는 부분, 역사적으로, 미술적으로 다른 지역에서 이념과 거리를 넘어서는 예술적 행보를 지속적으로 남기고 싶다"고 했다.
함 작가는 그동안 회화, 설치, 비디오, 퍼포먼스 등 다채로운 방식으로 비본질적이고 경도된 맥락의 권력에 대한 주제를 작품에 담아왔다. 이런 사례들을 통해 작가는 한국의 사회적 구조와 현상이 개인적인 삶에 개입되는 일련의 사건들이 동시대 미술의 표현과 전개 속에서 어떻게 병치될 수 있는지를 타진한다. 특히 자수 회화 연작 자체는 그 속에 내포된 정치적 메시지를 은폐하면서도, 제작과정은 반세기 전 역사 속에 강대국들의 이데올로기가 파생시킨 현실의 지도를 드러내고 있다.
작가는 서울대학교에서 회화과 졸업 이후 뉴욕 SVA(School of Visual Arts)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주요 개인전으로는 '풍경이 있는 방'(갤러리 루프, 1999년), '어떤 게임'(쌈지 스페이스, 2008), '욕망과 마취'(아트선재센터, 2009) 등이 있다. 그룹전에는 비엔나의 빈 루드비히 현대미술재단 (2010), 제 9회 광저우 트리엔날레, 제 7회 리버풀 비엔날레(2012), 과천 국립현대미술관(2013), 독일 쿤스트뮤지움 본, 쿤스트할레 뒤셀도르프 (2014) 등 전시에 참여했다.
서울 삼청동 국제갤러리. 오는 7월 5일까지. 02-735-8449.
오진희 기자 valer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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