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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예의 춤'서 유래한 카포에이라에 빠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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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여종씨, 홍대서 4년째 브라질 전통무술 도장운영

카포에이라 1세대 조여종씨

카포에이라 1세대 조여종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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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박준용 기자] "채찍은 눈물이 날만큼 내몸을 가른다 / 더이상 채찍을 원하지 않아 / 나는 바다로 갈거야"

우리에겐 생소한 브라질 전통무술 카포에이라의 배경음악으로 쓰이는 연주곡 '바다여 바다여(A mare a mare)'의 가사다. 서울 홍대 인근에서 카포에이라 도장을 4년째 운영하고 있는 조여종(38ㆍ사진)씨는 지난 10일 "잠시 후에 시작될 수련에서 연주하는 곡"이라며 곡을 설명했다. 오후께부터 내리던 보슬비와 퍽 어울렸다.
그는 능숙하게 포르투갈 노랫말을 우리말로 바꿔 설명했다. 올해로 카포에이라를 시작한 지 15년째인 그는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카포에이라 무도인다. '카포에이라 1세대' 답게 한국인 최초로 인스뜨로똘(수련 12년 이상 경력자에게 주어지는 계급)을 땄다.

조씨는 원래 한국 전통 무도가였다. 중학교 때부터 8년간 전통무술 택견을 배웠다. 서울 창동에서 도장을 열고 택견을 전수하기도 했다. 그런 그가 카포에이라를 접한 건 우연한 계기였다. 2000년 10월 세계 25개국 무술단체들이 모인 충주무술축제에서 카포에이라 대표단의 현란한 스텝과 묘기에 매료된 것. 이때 택견대표단로 참가했던 조씨는 이후 브라질을 오가며 15년간 카포에이라 수련에 매달렸다. 이 과정에서 배우자도 만났다. 조씨는 2002년 브라질 교포인 이루아나보연(33)씨에게 카포에이라 의류와 악기를 부탁했다. 둘은 이 때 만나 10년 연애뒤 결혼했다. 이씨는 남편 '카포에이라 인생'에 든든한 조력자가 돼줬다.

그가 설명하는 카포에이라의 매력은 흥겨운 리듬에 감춰진 '자유에 대한 갈망'이다. 억압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피착취인의 몸짓이 무예가 됐다. 15~16세기 포르투갈의 식민지였던 브라질에서는 사탕수수 재배를 위해 아프리카에서 끌려온 노예들이 농장주로부터 몸을 보호하거나 도망치는 수단으로 이를 연마했다. 수련 중 악기를 연주하고, 춤처럼 움직이는 것도 착취자에게 '놀이'로 위장하기 위해서다.
이런 특성 탓에 카포에이라는 발기술이 발달했다. 조씨는 "손이 묶여있는 노예가 자유로운 게 발이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도망가거나 상대를 걸어 넘어뜨려 공격한다. 기본기 '징가(ginga)'도 발을 이리저리 놀리는 동작이다. 이 발짓은 남미축구 특유의 드리블을 이루는 기반이 되기도 한다. 그는 "상대를 리듬감 있게 따돌리고 이를 즐기는 모습은 징가와 축구 드리블이 닮은 점이다"고 설명한다. 박지성과 한솥밥을 먹었던 축구스타 나니(맨체스터 유나이티드)도 어린 시절 카포에이라의 영향을 받았다. 브라질 선수 중에서는 '역대 최고의 드리블러'로 꼽히는 가린샤의 발놀림이 징가스텝과 유사하다.

조씨는 이런 카포에이라의 매력을 알리고 전수하기 위해 공연활동을 한다. 하지만 노력에 비해 카포에이라를 배우겠다고 나서는 이는 적다. 그는 "사람들이 공연을 볼 때는 좋아하는데 직접 할 수 있을 거라 생각은 안하는 것 같다"면서 "수련생들이 여름에 늘지만 겨울에 줄어 도장 운영이 쉽지는 않다"고 털어놨다.

이 때문에 주변에서 "현실과 타협하라"는 권유를 자주 한다고. 하지만 조씨는 "카포에이라는 다른 무예와 차별화되는 본질적 정신이 있다"면서 "죽을 때까지 카포에이라를 하고 살고 싶다"며 엷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인터뷰가 끝날 무렵 보슬비는 장대비로 바뀌었다. 오기로 했던 수련생들은 약속시간이 1시간이 넘도록 나타나지 않았다. 조씨는 아내와 함께 늦은 밤까지 빈 도장을 지켰다.



박준용 기자 juneyong@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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