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오진희 기자]요즘 미술현장에서 한국과 중국의 미술교류전을 자주 접할 수 있다. 양국의 지자체 및 대학 간 교류, 협업과 함께 국내 갤러리에서도 중국미술연구, 전시가 이뤄질 정도다. 1992년 한-중 수교 이후 중국정부가 문화산업을 국가적으로 발전시키고 인프라를 늘리면서 미술시장의 규모가 급성장한 까닭에 국내 미술계는 중국을 배제하고 영업(?) 하기가 녹록찮게 된 점도 있다.
◆'성장통 겪는 아시아인의 삶 반영'= 오는 5월11일까지 열리는 서울시립미술관의 한중현대미술전인 '액체문명'전에선 '입시지옥'이 중국에서도 심각한 지경임을 드러낸다. 중국의 중앙미술학원 교수이기도 한 왕칭송 작가의 '팔로우 유'(Follow you)란 작품이다. 작가는 250개의 책걸상을 준비해 자신의 스튜디오에 도서관의 실제모습을 그대로 차용해 세팅을 해뒀다. 거대한 도서관에서 수능시험공부에 찌든 학생들이 책들을 쌓아올려 놓은 채 엎드려 앉아 있다. 벽면엔 '매일 발전?, 공부 열심히? 교육은 중요한가?' 등의 의구심과 불안을 상징하는 문장들이 새겨져 있다. 왕 작가는 "이틀간 수능 봐야 하는 아들에게 교통사고로 죽은 엄마의 부고 소식조차 전하지 않았다는 뉴스가 크게 보도된 적이 있다"며 "아시아가 서구화되고 경제발전을 이뤘고 개인의 개성을 더 발현할 수 있다지만 과연 우리에겐 진정한 개성이 있는 지 묻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이원호, 'Story I'(스토리 원), 흥정을 통해 부랑자들로부터 구입한 적선 받은 돈과 적선 도구, 빨간 펠트, 프린트, 빨간 스티커, 가변 설치, 2013년.
원본보기 아이콘반대편 전시장 한 켠엔 6열8행으로 이어진 붉은색 원 안에 어디선가 본 듯한 물건들이 놓여 있다. 지하철역 걸인들의 동냥그릇이다. 상자박스, 바가지, 플라스틱 바구니, 캡모자 안에는 몇 장의 천 원짜리 지폐와 그다지 많지 않은 동전들이 담겨 있다. 어느 작은 박스 안엔 맞춤법 틀린 글씨도 새겨 있다. "여러분, 부탁함. 재 용기 주새요. 감사. 사랑. 행복." 이원호 작가의 '층 스토리(Story)I'이라는 설치작품이다.
작가는 이 작품을 위해 부랑자들과 흥정해 그들의 적선도구와 그 속에 담긴 돈까지 구입했다. 작가는 "대가 없는 적선을 통해 그들과 나를 구분 짓고 동정하기 보단 '흥정'이란 협상에 걸인들을 끌어들여 나와 동등한 위치에서 인간 대 인간으로 마주하고자 했다"고 말했다. '자본주의' 내에서 사회가 그동안 의도적으로 배제해 왔던 존재들을 수평적인 관계로 복권시키는 작업이다.
이번 전시의 주제가 '액체문명'이라는 것에 12인의 작가들의 문제의식이 응축돼 있는 듯하다. 작가들은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의 '유동하는(Liquid) 사회로서의 현대'라는 개념을 통해 한국과 중국의 현실, 즉 근대화-그것은 또한 서구화이기도 했으니-의 길을 걸은 양국이 2중적 의미에서의 유동화를 겪고 있음을 얘기하고자 한다. '액체'처럼 출렁이며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빠르게 변화하는 사회, 그 속에 휘청이며 표류하는 삶을 작가들은 사진, 영상, 설치 작업 등 다양한 방식과 시각으로 표현하고 있다.
오진희 기자 valer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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