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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저詩]김지하 '척분(滌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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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이면/혹/나 또한 잘못 갔으리/품안에 와 있으라/옛 휘파람 불어주리니, 모란 위 사경(四更)
첫이슬 받으라/수이/삼도천(三途川) 건너라.'

김지하 '척분(滌焚)

■ 치를 떨며 미워했던 시다. 저는. 생살을 태우며, 비명을 지를 입조차 태우며 죽어가지 못하면서, 참 편하게도 말을 한다 싶었다. 대학생들이 거의 날마다 '작전'처럼 분신자살을 하던 시절에, 하필 조선일보에, 재 뿌리듯 찬물 끼얹듯, "죽음의 굿판 걷어치워라" 골 질렀던 이유를, 저 척분으로 갈음했다. (척분(滌焚), 분신자살하는 넋들을 씻음) 스물이면 혹 나 또한 잘못 갔으리,라고 훈계하는 늙은 운동권의 무책임한 태연한 평화를 생각했다. 이제 와 생각해보면, 그 미움 또한 흐르는 것인 걸. 스물, 마흔, 예순 또한 늘 잘못 갔으리,라고 말해도 무방한, 한 시절의 상처에 소금뿌리는 처연한 제의(祭儀)인 걸, 본다. 이제 내가 스물이 아니라서, 잘못 가지 않을 수 있다는, 자부이기 보다는, 저도 그 아픔에 끼어들어 깊이 고통스러워하는, 숯덩이 아들을 껴안은 아비의 언어일 수 있다는 걸, 뒤늦게 본다. 제가 다 바람잡아놓고 수습 못할 광기에 이른, 제 몸 타는 냄새에 구역질을 하는, 이 시는 어쩌면 70년대의 토사물같은 게 아니었을까. 어린, 노한 눈을 감기며, 슬프게 서 있는, 누더기 아버지의 초상.



빈섬 이상국 편집부장ㆍ시인 isom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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