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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저詩]최남선 '혼자 앉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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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히 오는 비가 낙수져서 소리하니
오마지 않은 이가 일도 없이 기다려져
열릴 듯 닫힌 문으로 눈이 자주 가더라

■ 뭐니뭐니 해도 이 시조의 백미는 마지막 구절이다. 열릴 듯 닫힌 문으로 눈이 자주 가더라. '열릴 듯 닫힌 문'이란 말에 숨을 헉,하고 멈출 만큼 짜릿했다. 사람 기다려본 사람은 저런 문을 몇 번은 쳐다 봤으리라. 문은 닫혀있는데 금방이라도 삐걱 하며 열릴 것 같다. 계속 바라봐도 매양 가만히 닫혀 있는데, 그래도 또 생각을 키우면, 문득 슬며시 열릴 것 같다. 그게 '열릴 듯 닫힌 문'이다. 마음과 시선이 자꾸 따로 놀며, 눈알만 멍멍해지는 문이다. 빗소리란 게 꼭 발자국 소리같을 때가 있다. 귀가 듣고 싶은 소리가, 제 멋대로 돋아난다. 문 밖에서 그 소리가 들렸다 말았다 한다. '문으로 눈이 자주 가더라'는 그런 마음이 밀어낸 눈길이며 고개짓이다. 어? 혹시? 그런 물음표들이 슬그머니, 급박하게 생겨나면서, 몇 번이나 속은 고개짓에 다시 속는다. 열릴 듯 닫힌 문으로 눈이 자주 가더라. 화담 서경덕의 '지는 잎 부는 바람에 행여 긘가 하노라'의 기분을 다 내면서도, 그 시품(詩品)을 만배는 업그레이드한 이 한 구절 만으로, 최남선은 국어를 일류로 닦아낸 놀라운 사람이다.




빈섬 이상국 편집부장ㆍ시인 isom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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