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저녁 서울대학교 학교본부 4층 총장실에 앉아 책을 보는 홍범신군. 그는 과제 제출을 위해 열심히 책을 보고 있다.>
<20일 오후 7시 촛불문화제의 첫 공연 '학생총의넋이로다'의 한 장면. 무당분의 학생이 셔틀귀신이 씌인 총장을 혼낸다는 내용이다.>
공부를 마친 홍군이 찾아간 곳은 건물 밖 마당놀이판이었다.
"난 쌍방은 몰라. 일방만 알아. 얼마 전에 LA에 다녀왔을 때도 (비행기표를) 편도로 끊었어", "그럼 어떻게 돌아왔어?", "셔틀버스 타고 왔지", 알다가도 모를 대사에 홍군은 박장대소했다. 이 공연은 학내 마당극 동아리인 마당패탈이 준비한 '학생총의넋이로다' 라는 마당극이다. 17~18일간 진행됐던 록 페스티벌 '본부스탁'을 저지하기 위해 학교 측이 본부 진입로에 셔틀버스로 공연차량 진입을 막았던 것을 풍자하는 내용이란다. 총장한테 씌인 '셔틀 귀신'을 무당이 굿을 통해 쫓아낸다는 내용을 익살스런 대사로 표현했다.
<'학생총의넋이로다' 공연에 웃음을 터뜨리는 학생들>
홍군에 따르면, 5월 30일부터 지난 20일까지 매일 제공된 점심은 졸업생 선배들이 보내주는 지원금으로 마련된 것이고 17~18일에 열렸던 록 페스티벌 본부스탁도 선배들의 지원금 500만원으로 치러진 행사다. 록 페스티벌이 열리는 데는 선배인 가수 장기하씨의 공이 컸다. 그는 시위 현장에서 구호를 외치는 데 동참하는 대신 유명 밴드를 섭외해 후배들의 '놀이판'을 만들어줬다.
<지난 18일 본부스탁에 참가한 학생들이 밴드'술탄 오브 더 디스코'의 공연을 즐기고 있다.>
시위가 졸업생과 재학생 사이의 연결고리 노릇을 한 셈이다. 홍군은 기자와 인사를 나눈 뒤 본부 건물로 다시 들어갔다. 자취방으로 가기 전에 복도에 앉아서 책을 좀 더 읽어야겠다고 했다. 홍군은 "복도를 차지하고 앉아서 공부하는 것도 따지고보면 시위"라면서 "'이렇게 고생스럽게 공부하지 않도록 빨리 해결책을 내놓아달라'는 항의로 받아들여지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1987년 6ㆍ10항쟁 등 민주화 투쟁에 참여했던 서울대 졸업생(사범대학 86학번) 황모(45ㆍ남ㆍ회사원)씨는 "영국에서 1960년대 반전시위를 주도한 세대의 자녀들이 지나치게 극렬했던 시위문화에 대한 반감으로 만들어낸 게 에든버러 우드스탁이란 축제"라면서 "유럽 청년들이 그랬던 것처럼 우리 대학생들 사이에서도 새로운 시위문화가 만들어지고 있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박은희 기자 lomore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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