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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대우의 경제레터] 100마리째 원숭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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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이 묻은 고구마를 받아 쥔 원숭이의 모습. 이를 상상해 본적이 있습니까? 처음 본 먹잇감에 대한 이들의 반응이 자못 궁금합니다. 다른 동물보다 지능지수가 높은데다 인간과 가장 많이 닮았기 때문일까요?

1950년께. 일본 교토대학 영장류연구소 연구원들이 규슈의 미야자키현 인근에서 서식하고 있는 원숭이들을 대상으로 고구마를 던져주며 이들이 어떻게 이를 먹는가를 실험한 적이 있습니다.
당시 이 지역은 무인도였습니다. 20여 마리의 원숭이들이 서식하고 있었습니다. 원숭이들은 처음 고구마에 묻은 흙을 손으로 털어서 먹었습니다. 얼마 후에는 18개월된 어린 암놈이 강물에 고구마를 씻어 먹기 시작했습니다. 어린 원숭이와 어미 원숭이들은 이 행동을 차차 따라 했습니다. 4년이 지나자 20마리 중 15마리가 고구마를 물에 씻어 먹었습니다.

그러나 어느 해 가뭄이 심해 강물이 말라 버렸습니다. 원숭이들은 바닷물에 고구마를 씻어 먹어야 했습니다. 바닷물에 씻은 고구마는 염분으로 인해 더욱 맛이 있었습니다.

그 후 원숭이들은 계속 바닷물에 씻어 먹었습니다. 고구마를 씻어 먹은 지 10년이 지났는데도 12세 이상된 원숭이들은 고구마를 씻지 않고 먹었습니다.
그런데 정말 재미있는 모습이 발견됐습니다. 무인도에서 멀리 떨어진 산속에 사는 원숭이들도 고구마를 물에 씻어 먹는다는 사실이 확인됐습니다.

두 무리의 원숭이들은 바다를 사이에 두고 멀리 떨어져 있었지만 똑같이 고구마를 씻어 먹고 있었던 것입니다. 무인도에서 이와 멀리 떨어진 산속까지 고구마 씻어 먹는 행위가 전파된 것이죠.

미래학자 라이얼 왓슨은 이 현상을 이론으로 만들었습니다. ‘100마리째의 원숭이 현상’이 바로 그것입니다. 고구마를 씻어 먹는 원숭이의 수가 임계치(臨界値)를 넘어서면 이 행동이 그 무리들뿐 아니라 멀리 떨어진 다른 장소의 무리들에게까지 전파된다는 이론을 만든 것입니다. 그는 그 임계치를 100마리로 규정했습니다. 임계치를 넘어서면 거리와 공간을 초월해 다른 집단으로 전파된다는 것이죠.

한때 아시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에 선정되기도 했던 윤종용 삼성전자 상임고문은 초일류기업으로 가는 지혜를 이들 원숭이들의 행동에서 찾고 있습니다.(역사와 미래-초일류로 가는 생각’에서) 고구마를 받아 쥔 ‘원숭이 현상’을 보면 인간사회, 특히 기업의 성공적 혁신의 지혜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 실험에서 수컷과 나이 먹은 원숭이는 쉽게 변하지 않았습니다. 반면 젊은 원숭이와 암컷들은 변화를 선도한 것으로 돼 있습니다. 기업이나 조직에서 변화와 혁신을 거부하는 ‘수컷, 나이 먹은 원숭이 같은 세력’이 있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임계치 이상의 수(數)를 변화시키거나 혁신시키면 그것이 전파되어 나머지도 쉽게 변화시킬 수 있다고 합니다. 유행이라는 것도 바로 이같은 법칙을 따르는 현상 아닐까요?

요즘 세계에서 가장 많은 사람의 입에 오르내리는 기업은 역시 애플과 도요타입니다. 찬란한 성공, 처참한 실패의 경험을 이 두 회사가 쓰고 있기 때문입니다.

애플과 도요타. 이 두 회사가 뿌린 성공과 실패의 경험. 이를 본 세계의 많은 사람들은 영원한 성공도 없고, 영원한 실패도 없다는 사실을 직접 눈으로 확인했습니다. 애플은 정보기술(IT)산업에서의 처참한 실패로 위기의 늪에서 허우적거렸습니다. 반면 도요타는 신화를 만들며 브레이크 없는 질주를 계속해 왔습니다.

그러나 두 회사의 운명은 바뀌게 됐습니다. 애플은 아이폰에서 아이패드로 새로운 신화를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신문, 책, 목록 등 선택만 하면 편집된 상태로 보여주는 야심작 태블릿 PC로 정보기술 산업의 패러다임을 바꾸기 시작한 것입니다.

반면 지금 도요타의 입장은 어떻습니까? ‘세계 1등이라도 졸면 죽는다’는 냉엄한 기업세계의 속성을 확인시켜 주고 있습니다. 더 이상 감당하기 벅찬 대규모 리콜사태로 창사 이래 최대의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오늘 아침 한 신문은 이를 두고 ‘리콜당한 모노즈쿠리(혼신의 힘을 쏟아 최고 물건을 만든다), 흔들리는 일본의 자존심이라는 평가를 내리기도 했습니다.

애플의 스티브 잡스 회장. 그는 보통 사람은 한 번도 경험하기 힘든 벼락성공과 연이은 처참한 실패를 겪은 분입니다. 그러나 그의 하루하루 생활은 열정과 창의력으로 이어졌습니다. 세상을 바꾸겠다는 집념 때문이죠. 남이 하는 대로만 따라하면 미래가 보장되지 않는다, 초 단위로 진화하는 세계시장에서 승자가 되는 길은 바로 이것이구나 하는 생각을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됩니다.

도요타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1위에 등극한 이후 승자의 꿀맛을 즐기며 비전을 제시하기보다 비용절감에만 매달렸습니다. 경영진은 섭정체제로 스스로 위기를 자초했습니다. 기존 패러다임에 안주했던 것이죠. 스스로 만들었던 신화에 틈새를 만든 셈입니다.

스티브 잡스는 그의 손, 애플의 손으로 세상을 바꾸겠다는 집념으로 열정, 창의력을 쏟아 부었습니다. 이런 노력으로 내부의 혁신, 기술개발 속도의 임계치를 넘겼습니다.

그래서 그는 리더십이 타고 나는 게 아니라 개발된다는 것을 보여줬습니다. 때문에 애플 위력의 임계치는 거리와 공간을 초월해 세계시장을 리드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비용절감, 경영진의 섭정체제로 애써 가꿔놓은 임계치를 스스로 줄인 도요타와는 너무나 대조적이라 할 수 있지요.

2010년 달력 한 장이 넘어갔습니다. 새로운 한 달이 시작됐습니다. 2월 역시 눈 깜빡할 사이에 지나가 버릴 것입니다. 한 소설가의 고언을 되새기며 자신이 맡은 업무의 임계치를 높이는 한 주 시작하면 어떨까요?

“정상에 올랐다고 자만하지 말라. 정상에 오른 자들을 시기하지도 말라. 자만하는 사이 꿈은 깨진다. 그들이 목숨을 걸고 산비탈을 오를 때 그대는 혹시 평지에서 팔베개를 하고 달디 단 잠에 빠져 있지는 않았는가. 때로는 나태를 부끄러워하지 않는 것도 죄악이라는 사실을 명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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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대우 아시아경제신문 회장 presiden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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