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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금융감독원, 차라리 먹통이 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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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이트'의 원조는 미국의 워터게이트 사건이다. 약 40년 전인 1972년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은 재선을 하려는 욕심에 당시 야당인 민주당 전국위원회 본부가 자리한 워터게이트 빌딩에 도청장치를 설치하려다 들통이 나 결국 대통령 자리에서 물러났다.

이후 정부나 정치권력, 권력 기관과 연관된 대형 비리 사건은 통칭해 '게이트'라 불리게 됐다. 국내에서는 이용호 게이트, 정현준 게이트, 진승현 게이트 등이 대표적이다.
부산저축은행 계열사로 영업정지된 중앙부산저축은행의 서울 논현동 사옥 이름이 '워터게이트 빌딩'인 것은 공교롭다. 워터게이트는 말 그대로 수문(水門)인데, 물이 필요한 때 적절하게 흘러가도록 조절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돈도 물처럼 자연스레 흐르는 것이 제일 좋겠지만 부산저축은행의 돈은 상수가 아닌 하수로 흘러 닿는 곳마다 악취다.

영업정지된 저축은행들의 비리 사건도 그 폭과 깊이로 볼 때 게이트로 커지는 것은 시간문제다. 로비나 금품 및 향응 수수 의혹을 받는 인사들이 계속 불어나 검찰 수사 대상이 확대될 수밖에 없다. 과거의 게이트나 리스트가 단독 또는 소수의 조력자와 벌인 행각인 데 비해 부산저축은행은 버젓한 제도권 금융기관의 오너 및 경영진이 합작한 사건이라 로비와 관리대상이 어디까지일지 가늠하기 어렵다. 현 정권, 영남출신 인물에서부터 시작된 수사대상은 전 정권, 호남출신 인사로 확산되고 있다.

일각에서 영업정지를 불러온 부실의 원인규명과 책임소재를 찾는 본질에서 벗어나 게이트로 변질되고 있다는 시각도 있지만, 그보다 더 본질적인 문제는 금융감독원, 정확하게는 금융감독원의 시스템을 어떻게 할 것인가이다.
과거의 게이트에서도 금융감독원 임직원이 연루되거나 연루 의혹을 받아왔다. 열린금고(현 저축은행) 등을 통해 수천억원을 불법대출받고 정권실세 등 정관계에 광범위한 로비를 벌인 사건인 진승현 게이트에서는 금융감독원 부원장보가 금품수수 혐의를 받았다.

동방금고에서 수백억원을 횡령하면서 역시 정관계, 금융감독원 등에 로비를 한 정현준 게이트에서는 당시 금융감독원 국장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주가조작에서 시작된 이용호 게이트는 국가정보원, 검찰, 금융감독원, 정치인 등이 연루 의혹을 받았다. 이번에 부산, 삼화, 보해저축은행과 관련해서는 전ㆍ현직 연루자가 열 손가락을 넘는다. 사람의 문제라거나 금융감독원 임직원들의 윤리의식 부재로 볼 수준이 아니다. 광범위한 유착관계가 형성된 것은 분명 시스템의 문제다.

권한이 있는 곳에는 청탁과 로비가 있기 마련이다. 이게 통하지 않으려면 권력기관 종사자들이 자의적인 판단을 하지 못하도록 엄격하게 정해진 원칙에 따라 엄정하게 일을 처리해야 한다. 이렇게 하려면 기관과 기관 종사자의 독립성이 보장되어야 한다. 정무적ㆍ정치적 판단이 개입되지 않는 시스템이 필요한 것이다. '다른 큰일에 영향을 주니 나중에 하자' '국민경제에 파장이 크니 연착륙시켜야 한다'는 식으로 여지를 두면 그 틈을 비집고 들어가는 것이 업자들의 생리다. 한자리 더 해보려는 욕심이 있는 사람, 재임 중에는 책임질 일은 만들지 않겠다는 보신주의자, 임명권자의 심기를 살피는 눈치보기파, 국가 대사(大事)를 먼저 생각하는 충성파, 이런 사람들이 금융감독기관의 장(長)을 맡아서는 안 된다. 여지를 많이 두기 때문이다. 앞뒤가 꽉 막힌 원칙주의자, 세상 물정 모르고 사는 책상물림이 오히려 낫다. 금융감독 체계를 뜯어고치겠다며 국무총리실 산하에 금융감독혁신 태스크포스(TF)팀이 구성됐다. 딱 한 가지만 하면 된다. '고지식한' 민간인을 금융감독원장에 앉히는 것이다.




김헌수 기자 khs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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