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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벌레먹은 사과 솎아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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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 바구니 안에서 벌레 먹은 사과를 발견했다. 썩은 놈만 골라서 버려야 하나. 아니면, 사과 바구니를 통째로 버려야 하나. 당신이라면 어떤 결정을 내리겠는가. 실제 상황에서 종종 맞닥뜨리는 문제지만 쉽지 않은 결정이다.

물론 결정을 내리기 전에 반드시 고려해야 할 점들이 있다. 우선 사과의 벌레가 다른 사과에도 전염성이 있는지. 또 벌레가 사과나무에서 비롯된 것인지, 아니면 바구니에서 나온 것인지 등등. 그러나 핵심은 한 가지다. 사과 한 알만 썩어 있다면 문제 있는 놈만 골라내면 된다. 그러나 사과나무가 벌레 투성이거나 바구니 자체에 벌레가 그득하다면, 바구니째 버리는 게 낫다.
저축은행 부실에서 촉발된 금융감독기구 개편에 대한 논의를 벌레 먹은 사과 '솎아내기'에 비유해보는 것은 어떨까. 감독기구 개편이 백가쟁명(百家爭鳴)식 논의를 부르고 있지만, 2% 부족함을 느끼는 것은 사태의 본질에 대한 공감대가 쏙 빠져 있어서다. 저축은행 사태와 관련해 지금까지 펼쳐진 장면을 단순화해보면 다음과 같다. 저축은행이 부실화됐다. 몇몇 저축은행 대주주와 경영진이 결탁해서 갖가지 비리를 저질러왔던 사실이 밝혀졌다. 한도와 규정을 어긴 불법 대출이 있었던 건 물론이고, 유령회사를 만들어서 저축은행이 대주주에게 수백억원을 대출한 사례까지 적발됐다. 나아가 이런 비리를 잡아내라고 권한을 준 금융감독원의 일부 간부들까지 뇌물을 먹고 불법과 비리를 눈감아준 사실이 드러났다. 여기까지는 팩트가 일치한다. 문제는 다음부터다.

금융감독원은 감독원대로, 검찰은 검찰대로, 한국은행은 한국은행대로 자신의 입맛대로 이 문제를 보고 있다. 그것도 집단 이기주의를 덧칠한 채로. 검찰은 이 기회에 대검 중수부의 역할과 위상을 새롭게 세우고 싶다. 한국은행은 금융감독원에 넘겨주었던 금융회사 감독 권한을 되찾아오고 싶다. 반면 금융감독원은 현재의 감독 틀과 기조를 무너뜨리고 싶지 않다.

언론의 논조도 이해집단에 맞춰 춤을 춘다. 그러다 보니 때론 마녀사냥식으로 오버도 하고 사실을 과장하기도 한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현상을 보는 시각이 다르기 때문이다. 마침 금융감독기구 개편을 총괄할 태스크포스(TF)팀이 총리실 산하에 만들어졌다. TF팀이 이해관계자들로부터 자유롭도록 하자는 취지에서 기구를 아예 중립적인 총리실 산하에 두도록 했다. 그러나 중립적인 운용 방침 이상으로 중요한 것은 이 TF팀이 "어떤 일을 해야 하느냐"다.
총리실의 금융감독기구 개혁 TF팀이 제대로 성과를 내기 위해 일의 우선 순위를 배열하는 것이다. 모든 사안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바구니째 버려야 할 일인지부터 뜯어보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검찰이나 금융감독원은 물론, 검사를 받는 금융회사로부터도 '무엇이 문제이고' '실제 현장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들어봐야 한다. 그 이후 '사과만 버릴 것이냐' '바구니째 버릴 것이냐'를 정확히만 판단해줘도 TF는 성공한 것이다.

이달 초 출범한 개혁 TF는 금융감독의 '모든 현안'을 제로베이스에서 검토한 뒤, 내달 안으로 대안까지 내놓겠다는 야심찬(?) 일정을 갖고 있다. 대학교수 7명을 포함한 13명의 위원이 불과 한 달 남짓한 기간에 금융 감독의 실태와 문제점을 파헤친 뒤, 눈에 보이는 결과를 내놓겠다고 한다. 순진한 건지, 추진력이 있다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금융감독 기구 개혁이 무슨 조립식 아파트 짓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이참에 개혁 TF는 약간의 상상력도 발휘해줬으면 좋겠다. 벌레 먹은 사과가 실제론 더 맛있다는 사실. 그리고 벌레 먹은 사과를 원천적으로 없애기 위해선 아예 사과에 플라스틱으로 코팅 처리를 해버리면 된다는 사실. 그러나 플라스틱 처리를 하면 썩지도 않겠지만, 사과를 먹을 수도 없다는 사실. 그런데 정작 중요한 것은 사과를 먹는 사람이지, 사과 그 자체에 있지 않다는 사실 등도 감안해서 말이다.



이의철 부국장 겸 정경부장 charl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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