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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동여담]'최초'라는 수식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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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조슬기나 기자] '최초의 00'라는 말만큼 화려한 수식어는 많지 않다. 인류 최초로 아폴로 11호가 달에 착륙하고, 버락 오바마가 미국 최초의 흑인대통령이 되고, 김연아가 피겨 역사상 최초로 올 포디움을 달성했다. 지난 4월 판문점에서 열린 남북 정상회담에서는 북한 지도자가 최초로 남쪽 땅을 밟았다. 좋은 일이든, 좋지 않은 일이든 최초란 곧 새로운 역사를 썼다는 의미다. 당연히 그 중요성과 주목도가 남다를 수밖에 없다.

패션 문외한도 몇 번은 들어봤을법한 미국의 유명 패션지 보그(Vogue)가 '최초의 역사'를 쓴다. 조만간 공개되는 9월호 표지 사진의 촬영 작가로 흑인을 기용한 것이다. 주인공은 타일러 미첼. 지방시 광고캠페인 등으로 업계에서 주목받은 23세의 젊은 사진 작가다.
흑인 작가가 표지 사진을 촬영하는 것은 보그 126년 역사를 통틀어 이번이 처음이라고 한다. 이미 유력 패션지 표지에 흑인 모델이 등장하기 시작한 게 수십년 전임을 감안할 때 유행의 첨단과 파격을 걷는다는 패션계 중심에서도 여전히 인종을 둘러싼 유리천장이 높기만 하다는 생각이 새삼스럽게 든다. 해당 소식이 보도되자 '그러면 126년이나 흑인 표지 촬영 작가는 없었단 말이냐'는 경악과 비판의 목소리가 현지에서 잇따르는 까닭도 이 때문일 것이다.

타일러 미첼이 보그의 표지를 맡게 된 과정도 다소 씁쓸하다. 패션지의 표지 결정권한은 전적으로 편집장에게 달려 있다. 모델은 물론 의상, 사진작가, 최종 사진 결정까지 모든 것을 그가 정한다.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에서 메릴 스트립이 연기한 냉혹한 편집장의 실존인물인 안나 윈투어가 바로 보그의 편집장이다.

이번 결정은 윈투어가 내린 것이 아니다. 윈투어는 9월 표지 모델로 세계적 팝스타 비욘세를 섭외하면서 이례적으로 그녀에게 사진 작가를 택하도록 전권을 넘겼다. 결국 '최초의 보그 표지 촬영 흑인 작가 탄생' 뉴스는 그간 공식석상에서 수차례 흑인 인권에 목소리를 높여왔던 비욘세의 힘으로 이뤄진 셈이다. 허프포스트는 "윈투어라면 타일러 미첼을 기용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전했다.
최초란 때때로 편견을 넘었다는 의미를 갖는다. 하지만 이 같은 소식이 화제가 되는 것도 결국 편견이 여전히 존재한다는 뜻이다. '최초의 00'이라는 수식어에 축하보다 씁쓸함이 남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편견을 넘어서는 더 많은 뉴스들을 기대하면서, 언젠가 이런 소식이 뉴스가 되지 않길 바라본다.






조슬기나 기자 seul@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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