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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동여담]폭염, 계엄령, 외로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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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박철응 기자] '햇볕에 머리가 터질 듯이 부풀어 올랐다. 열기가 나를 짓누르며 내 걸음을 방해했다. 얼굴 위로 무더운 바람이 닿을 때마다, 나는 이를 악물고, 주머니 속의 주먹을 그러쥐며, 태양과 태양이 뿜어내는 불투명한 취기를 이겨 내려고 바짝 긴장했다.'

알베르 카뮈의 소설 '이방인'의 주인공 뫼르소가 살인을 저지른 날이었다. '놀림을 당하리라는 사실을 잘 알면서도 허둥거리며 그건 태양 때문이었다고 재빠르게 말해 버렸다.' 그가 재판에서 말한 살인 동기다. 뫼르소에 따르면 태양이 살인을 교사한 셈이다. 어머니의 장례를 치른 다음날 여자친구와 해수욕을 하고 코미디 영화를 보며, 며칠 지나 우연히 살인을 한다. 부조리한 세상과 허망함, 무관심 같은, 목적 없는 실존의 혼돈이 파국과 이어지는 매개체가 태양이다.

태양이 삶의 근원 에너지라는 점에서 아이러니하다. 없으면 살 수 없지만, 너무 강해도 재앙이다. 태양과 지구의 절묘한 거리라는 운명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인간은 없다. 폭염이 모든 것을 휘감아버리는 날들의 연속이다. 태양이 직접적인 살인을 저지른다. 전국적으로 1000명 가까운 온열 질환자가 발생했고 이 중 10명 넘게 목숨을 잃었다고 한다.
폭염만큼이나 숨막히는 뉴스까지 더해진다. '계엄'이라는 단어가 주는 치명적인 압박감은 상당하다. 계엄은 '군홧발'을, 대참사를, 민주주의의 조종(弔鐘)을 떠올리게 한다. 야당 의원들을 잡아들여 국회를 무력화시키고, 각 언론사들을 통제한다는 계획. 먼 과거가 아닌 몇 해 전 만들어졌던 계획.

촛불의 대지 아래로 콜타르처럼 눅진한 망령이 꿈틀대고 있었던 셈이다. 어쩌면 촛불이 태양만큼이나 크고 뜨겁게 타올라서 정신줄을 놔 버린 이들의 모의였을까. 인간을 배제하고, 국가가 아닌 정권의 안위만을 부여잡았던 것 아닐까. 한편으론 대통령제 국가에서 선거의 결과가 얼마나 역사의 퇴행을 불러올 수 있는 지도 절감하게 한다. 복고(復古)의 씨앗은 생각보다 깊은 지층에 박혀 있다. 도리 없겠다. 최대한 뽑아내는 수밖에.

부조리한 세상에서 뫼르소가 마지막 순간에 두려워한 것은 외로움이었다. '모든 것이 완성되기 위해서, 그리고 내가 외롭지 않다는 것을 느끼기 위해서, 내가 바라는 마지막 소원은 내가 사형을 당하는 날, 보다 많은 구경꾼들이 나를 증오의 함성으로 맞아주었으면 하는 것 뿐이다.' 역사적 더위처럼 두려운 것도 외로움이다. 구원을 찾기는 쉽지 않다. 인간의 소외를 낳는 정치적 부조리라도 좀 다스려지길 바란다. 유난히 숨막히는 여름이다.




박철응 기자 her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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