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통령의 히로시마 방문은 '역사적인'이란 수식어가 붙을 만큼 예삿일이 아니다. 굳이 따지자면 일본은 미국을 상대로 태평양전쟁을 일으킨 전범국이다. 미국은 피해자인 동시에 일본으로부터 아시아를 해방시킨 전승국이었다.
그래서 지난 71년 동안 미국 정부와 대통령들은 애써 히로시마를 외면했다. 자칫 발을 잘못 들이면 미국은 대량살상 무기로 양민을 학살한 가해자가 될 수 있고, 엄청난 미군의 희생 속에 치른 태평양 전쟁의 정당성마저 흔들릴 수 있어서다.
백악관도 이를 고려했다. 오바마 대통령이 히로시마에서 사과를 하지는 않는다고 분명히 선을 그었다. 하지만 히로시마에서는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다.
아베 정부는 치밀하게 오바마의 히로시마 방문을 위해 공을 들였다. 지난해 아베 총리는 7박8일간 방미를 통해 초석을 다졌다. 일본은 당시 경제는 물론 안보분야에서도 미국의 핵심 동맹국이란 지위를 인정받았다. 미국을 위협하기 시작한 중국 견제에 급급했던 오바마 정부의 가려운 곳을 정확하게 긁어주며 받아낸 선물이다. 일본 정부는 한 발 더 나아가 '대등한 동맹의 확고한 정표'로서 오바마의 히로시마 방문을 간곡히 요청했었다.
걸림돌도 있었다. 미국내 여론도 충분히 조성되지 못한데다가 한국과 일본의 '역사전쟁'이 큰 장벽이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로 아시아의 두 우방이 날을 세우고 있는 상황에서 미국 대통령의 히로시마 방문은 엄청난 외교적 파장을 야기할 것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지난 해 말 한일 정부간 위안부 합의로 이런 고민이 해결됐다. 위안부 합의가 오바마가 히로시마로 가는 길도 열어 준 셈이다. 정작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도, 한국인들도 위안부 합의 이후 변화를 느끼지 못한 상황인데 일본에만 면죄부를 쥐어준 셈이다. 뒷맛이 영 개운치가 않은 이유다.
'히로시마의 아픔'을 내세워 과거의 침략 역사는 지우고 국제 무대의 리더로 화려하게 등장하는 데만 혈안이 된 일본 우익의 접근방식에 동북아의 미래까지 우려스럽다.
뉴욕=김근철 특파원 kckim100@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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