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Dim영역

[박명훈 칼럼] 그들은 왜 변하려 하지 않을까

스크랩 글자크기

글자크기 설정

닫기
인쇄 RSS
폭염이 막바지에 이르고 올림픽은 반환점을 돌았다. 무더위와 올림픽 열기가 절정으로 치닫던 지난 주, 절체절명의 위기상황에서 자신의 필살기를 버리는 결단으로 대역전극을 쓴 청년 검객이 있었다. 반면 세상이 바뀌고 국민이 고통을 호소해도 끄떡하지 않는 관료들의 모습도 볼 수 있었다.

# ‘날아올라 찌르기’는 그의 필살의 검법이다. 빠르게 전진해 온 몸을 던지며 찌르는 칼끝에 모든 검객이 풀잎처럼 쓰러졌다. 이제 최후의 한 판, 단 한 명이 남았다. 하지만 이번엔 다르다. 주특기가 통하지 않는다. 과거 그의 필살기에 두 번이나 무너졌었다. 절치부심 철저히 분석하고 대비한 것이 분명하다. 스코어는 10대 14. 한 점을 잃으면 끝이다.
"할 수 있다."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칼을 다시 잡고 주문을 외웠다. 전략을 바꾸자. 상대가 간파한 주특기를 버리자. 그는 먼저 나아가지 않았다. 날아오르지도 않았다. 그리고 기다렸다. 드디어 칼이 들어왔다. 막아서면서 전광석화처럼 찔렀다. 대역전의 드라마가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막고 찌르기'는 그의 특기가 아니다. 하지만 통하지 않는 주특기가 무슨 소용인가. 검객이 필살의 기술을 포기하고 검법을 바꾸는 것은 이번 승부에 생명을 건다는 뜻이리라. 상대의 왼 어깨를 찌르자 휘어진 칼이 반원을 그렸다. 그것으로 승부는 끝났다. 15대 14. 지난 10일 브라질 리우 카리오카 경기장에서 벌어진 47초의 기적 같은 역전극. 21세 펜서 박상영의 금메달 드라마다.

# 같은 날, 지구 반대편의 대한민국. 여야 정치권이 모처럼 입을 모아 가정용 전기요금 제도를 개편토록 정부를 압박하고 나섰다. 연일 숨 막히는 더위에도 '요금 폭탄'이 무서워 에어컨조차 제대로 돌리지 못한다는 국민들의 아우성에 반응한 것이다. 타깃은 요금차가 최고 11배에 이르는 주택용 전기요금 누진제.
하지만 전기료 조정 권한을 움켜 쥔 관료들은 꿈적하지 않았다. 빗발치는 여론에도 귀를 막았다. "누진제 완화는 없다." "협의한 바 없다." "하루 3~4시간 에어컨을 틀면 한 달에 9만~10만원의 요금만 내면 된다. 이 정도면 버틸만하다."

# 하루 뒤인 11일 낮 12시. 박근혜 대통령이 “누진제에 대한 좋은 방안을 발표할 수 있게 하겠다.”고 말했다. 그 날 저녁 산업통산자원부는 ‘폭염에 따른 주택용 누진제 요금 경감 방안’을 내놓았다. 전기요금 누진제 논란은 폭염이 기승을 부리기 시작한 7월 중순께 비롯됐다. 한 달 가까이 움직이지 않던 관료들이 대통령의 발언이 나온 지 6시간 만에 뚝딱 대책을 만들어 내놓은 것이다. 내용은 한시적인 미봉책에 그쳤다. 막상 논란의 핵심인 누진제 개편은 중장기 과제로 돌려 건들이지 않았다.

# 왜 관료들은 그토록 생각을 바꾸려 하지 않을까. 낡디낡은 제도에 집착할까. 세계에 없는 6단계 누진제의 칼자루를 놓지 않으려 할까. 일반 국민과는 다른 세상에 살고 있는 것일까. 변화를 보지 못하는가, 아니면 변화가 두려운 것인가.

불가사의 한 일이다. 지구가 뜨거워지고, 가구 형태가 크게 바뀌고, 소득 수준이 높아졌다. 국민 대다수가 고통을 호소한다. 그렇다면 40년 전 오일쇼크 시대의 유물인 누진제의 유효성을 짚어보고 합리적인 개선을 모색하는 것이 공직자의 당연한 자세가 아닌가.

21세 청년 검객이 필살기를 버리고 전략을 바꾸면서 최후의 승부수를 띄웠던 날, 수십 년 낡은 제도에 목매는 관료들의 행태를 목도한 것은 폭염보다 더 견디기 어려운 일이었다. 그러나 오랜 의문의 답을 찾은 망외의 소득도 있었다. “정권마다 그렇게 난리를 쳐도 규제 개혁이 안 되는 이유가 있었구나.”






박명훈 전 주필 pmhoon@nate.com
AD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함께 본 뉴스

새로보기

이슈 PICK

  • [포토] 출근하는 추경호 신임 원내대표 곡성세계장미축제, 17일 ‘개막’ 세상에서 가장 향기로운 휴식...경춘선 공릉숲길 커피축제

    #국내이슈

  • '머스크 표' 뇌칩 이식환자 문제 발생…"해결 완료"vs"한계" 마라도나 '신의손'이 만든 월드컵 트로피 경매에 나와…수십억에 팔릴 듯 100m트랙이 런웨이도 아닌데…화장·옷 때문에 난리난 중국 국대女

    #해외이슈

  • [포토] '봄의 향연' [포토] 꽃처럼 찬란한 어르신 '감사해孝' 1000개 메시지 모아…뉴욕 맨해튼에 거대 한글벽 세운다

    #포토PICK

  • 3년만에 새단장…GV70 부분변경 출시 캐딜락 첫 전기차 '리릭' 23일 사전 계약 개시 기아 소형 전기차 EV3, 티저 이미지 공개

    #CAR라이프

  • 앞 유리에 '찰싹' 강제 제거 불가능한 불법주차 단속장치 도입될까 [뉴스속 용어] 국내 첫 임신 동성부부, 딸 출산 "사랑하면 가족…혈연은 중요치 않아" [뉴스속 용어]'네오탐'이 장 건강 해친다?

    #뉴스속OO

간격처리를 위한 class

많이 본 뉴스 !가장 많이 읽힌 뉴스를 제공합니다. 집계 기준에 따라 최대 3일 전 기사까지 제공될 수 있습니다.

top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