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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명훈 칼럼] 그들은 왜 변하려 하지 않을까

최종수정 2016.08.18 13:13 기사입력 2016.08.18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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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명훈 주필

박명훈 주필

폭염이 막바지에 이르고 올림픽은 반환점을 돌았다. 무더위와 올림픽 열기가 절정으로 치닫던 지난 주, 절체절명의 위기상황에서 자신의 필살기를 버리는 결단으로 대역전극을 쓴 청년 검객이 있었다. 반면 세상이 바뀌고 국민이 고통을 호소해도 끄떡하지 않는 관료들의 모습도 볼 수 있었다.

# ‘날아올라 찌르기’는 그의 필살의 검법이다. 빠르게 전진해 온 몸을 던지며 찌르는 칼끝에 모든 검객이 풀잎처럼 쓰러졌다. 이제 최후의 한 판, 단 한 명이 남았다. 하지만 이번엔 다르다. 주특기가 통하지 않는다. 과거 그의 필살기에 두 번이나 무너졌었다. 절치부심 철저히 분석하고 대비한 것이 분명하다. 스코어는 10대 14. 한 점을 잃으면 끝이다.

"할 수 있다."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칼을 다시 잡고 주문을 외웠다. 전략을 바꾸자. 상대가 간파한 주특기를 버리자. 그는 먼저 나아가지 않았다. 날아오르지도 않았다. 그리고 기다렸다. 드디어 칼이 들어왔다. 막아서면서 전광석화처럼 찔렀다. 대역전의 드라마가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막고 찌르기'는 그의 특기가 아니다. 하지만 통하지 않는 주특기가 무슨 소용인가. 검객이 필살의 기술을 포기하고 검법을 바꾸는 것은 이번 승부에 생명을 건다는 뜻이리라. 상대의 왼 어깨를 찌르자 휘어진 칼이 반원을 그렸다. 그것으로 승부는 끝났다. 15대 14. 지난 10일 브라질 리우 카리오카 경기장에서 벌어진 47초의 기적 같은 역전극. 21세 펜서 박상영의 금메달 드라마다.

# 같은 날, 지구 반대편의 대한민국. 여야 정치권이 모처럼 입을 모아 가정용 전기요금 제도를 개편토록 정부를 압박하고 나섰다. 연일 숨 막히는 더위에도 '요금 폭탄'이 무서워 에어컨조차 제대로 돌리지 못한다는 국민들의 아우성에 반응한 것이다. 타깃은 요금차가 최고 11배에 이르는 주택용 전기요금 누진제.
하지만 전기료 조정 권한을 움켜 쥔 관료들은 꿈적하지 않았다. 빗발치는 여론에도 귀를 막았다. "누진제 완화는 없다." "협의한 바 없다." "하루 3~4시간 에어컨을 틀면 한 달에 9만~10만원의 요금만 내면 된다. 이 정도면 버틸만하다."

# 하루 뒤인 11일 낮 12시. 박근혜 대통령이 “누진제에 대한 좋은 방안을 발표할 수 있게 하겠다.”고 말했다. 그 날 저녁 산업통산자원부는 ‘폭염에 따른 주택용 누진제 요금 경감 방안’을 내놓았다. 전기요금 누진제 논란은 폭염이 기승을 부리기 시작한 7월 중순께 비롯됐다. 한 달 가까이 움직이지 않던 관료들이 대통령의 발언이 나온 지 6시간 만에 뚝딱 대책을 만들어 내놓은 것이다. 내용은 한시적인 미봉책에 그쳤다. 막상 논란의 핵심인 누진제 개편은 중장기 과제로 돌려 건들이지 않았다.

# 왜 관료들은 그토록 생각을 바꾸려 하지 않을까. 낡디낡은 제도에 집착할까. 세계에 없는 6단계 누진제의 칼자루를 놓지 않으려 할까. 일반 국민과는 다른 세상에 살고 있는 것일까. 변화를 보지 못하는가, 아니면 변화가 두려운 것인가.

불가사의 한 일이다. 지구가 뜨거워지고, 가구 형태가 크게 바뀌고, 소득 수준이 높아졌다. 국민 대다수가 고통을 호소한다. 그렇다면 40년 전 오일쇼크 시대의 유물인 누진제의 유효성을 짚어보고 합리적인 개선을 모색하는 것이 공직자의 당연한 자세가 아닌가.

21세 청년 검객이 필살기를 버리고 전략을 바꾸면서 최후의 승부수를 띄웠던 날, 수십 년 낡은 제도에 목매는 관료들의 행태를 목도한 것은 폭염보다 더 견디기 어려운 일이었다. 그러나 오랜 의문의 답을 찾은 망외의 소득도 있었다. “정권마다 그렇게 난리를 쳐도 규제 개혁이 안 되는 이유가 있었구나.”

박명훈 전 주필 pmhoon@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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