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경우=제11회 한겨레문학상 수상 작가인 조영아의 두 번째 소설집. 조영아는 강원도 정선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자랐다. 서울여대 국문과를 졸업했다. 2005년 〈매일신문〉 신춘문예에 단편 〈마네킹 24호〉로 등단했고, 2006년 《여우야 여우야 뭐 하니》로 제11회 한겨레문학상을 수상했다. 조영아는 《그녀의 경우》에 죽음을 테마로 한 소설 일곱 편을 담았다. 그가 보여주는 죽음의 이야기들은 우리에게 기시감을 느끼게 한다. 그 이유는 소설의 모티프로 쓰인 여러 사건을 우리가 텔레비전이나 매체를 통해서 목격했고, 살면서 곁에서 혹은 멀리서 지켜봐왔기 때문이다. 〈그녀의 경우〉에는 부실공사로 붕괴되어 500여 명이 사망한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가, 〈궁극의 리스트〉에는 엄마와 두 딸이 생활고로 고생하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송파 세 모녀 자살 사건’이, 〈겨울을 지키는 왕〉에는 혼자 사는 장애인이 겨울에 집 수도관이 터져서 얼어 죽어야만 했던 ‘근육무력증 장애인 동사 사건’이, 〈북쪽 방의 침묵〉에는 승객 300여 명이 구조를 기다리며 죽어간 ‘4ㆍ16 세월호 참사’가, 〈만년필〉에는 화재에 대한 부실한 대응으로 200여 명이 죽은 ‘대구 지하철 화재 참사’가, 〈사라진 혀〉에는 고공 굴뚝 농성의 모습이, 〈폭설〉에는 ‘돌고래의 자살’이란 사회적 이슈가 잠복했다. “단순히 희생자 수로 집계되는 죽음 앞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고작 글을 쓰는 것뿐이었다.”는 ‘작가의 말’이 상투적이면서도 가슴 깊은 곳을 아프게 만드는 이유다. (조영아 지음/한겨레출판사/1만2000원)
◆걸어도 걸어도=가족 간의 결코 쉽지 않은 소통과 그럼에도 포기되지 않는 연결에의 욕구를, “걸어도 걸어도" 끝나지 않는 여정이자 좀처럼 완료되지 않는 현재 진행형의 탐구로 그려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동명의 영화(2008)로 아르헨티나 마르델플라타 영화제 최고 작품상(2008), 일본 블루리본 감독상(2008), 아시안필름어워드 최우수 감독상(2009)을 수상했다. 이 작품은 15년 전 세상을 떠난 장남의 기일을 맞아 온 가족이 모인 하루를 담아낸 이야기다. 이 자리는 가장 커다란 공백으로 오히려 매년 가족의 회합을 가능하게 하는 장남의 존재감과 이제는 은퇴한 아버지의 실속 없는 위엄, 엄연한 독자(獨子)인 차남의 철부지 근성이 한데 모인 그야말로 역설의 현장이다. 다만 이토록 지독하고 “소름이 돋"는 서로이지만, 늘 그렇듯 전할 이야기가 떠오르면 “꼭 한발 늦는” 아스라한 동경과 영원한 그리움의 상대가 가족임을, 작품은 나직하게 들려준다. 이 중편소설은 대학 시절 문학을 전공한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작가 자신의 자화상을 입힌 결과물이니만큼 소설 낱장의 장면 장면이 손에 잡힐 듯 생기 있게 전해지지만, 독자의 고유한 호흡에 따라 쉬었다 재개할 수 있는 자유로운 독서의 묘미가 더해져 영화와는 색다른 감동을 준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지음/박명진 옮김/민음사/9800원)
◆태풍이 지나가고=지금은 폐지돼 버린 시마오 도시오 상(작중에 언급되는 가상의 문학상)을 수상한 소설가 시노다 료타는 15년째 글을 못 쓰고 있다. 새로운 작품을 쓴답시고 제대로 된 직장은커녕 무슨 일이든 진득하게 처리해 내지 못하는 료타는, 현재 소설에 쓸 소재를 조사한다는 구실로 수상한 사람들의 미심쩍은 의뢰만 도맡아 처리하는 탐정 사무소에서 근무하고 있다. 그러던 중 출판사로부터 만화의 원작을 써 보라는 제안을 받지만 ‘순수 문학가로서의 알량한 자존심’ 때문에 끝내 거절하고 만다. 여러모로 절박한 상황인데도 도박과 경마에 빠져 사는 그는 홀어머니 도시코와 맞벌이 주부인 누나 지나쓰에게 손을 벌리기 일쑤다. 그런 료타에게도 사랑하는 상대가 있었으니, 바로 이혼한 아내 교코다. 하지만 전처 교코는 한 달에 한 번, 외동아들 신고를 만나게 해 주고 양육비를 받는 일 외에는 료타와 조금도 엮이고 싶지 않다. 비록 결혼 생활을 파탄 낸 료타이지만, 심지어 양육비조차 허튼 데에 탕진해 버리고 제때 마련하지 못해 쩔쩔매는 그이지만, 교코와 신고를 위한 일이라면 무엇이든 하고자 한다. 큰 태풍이 일본에 상륙하던 어느 날, 료타는 한 달마다 만나 오던 아들 신고와 하루를 보낸다. 결국 궂은 날씨 탓에 도시코의 임대 아파트에 모이게 된 료타와 교코 그리고 신고. 교코는 자신과 새로운 연인의 뒷조사나 하고 다니며 여전히 한심하게 사는 료타를 냉담하게 대하고, 그런 어색한 분위기 속에서 밤이 깊어 간다. 걱정 속에 잠을 이루지 못하던 료타는, 불쑥 잠에서 깬 신고와 함께 놀이터로 향하고, 그곳의 문어 모양 미끄럼틀 아래에서 태풍의 비명을 들으며 쌀 과자를 나눠 먹는다. 여기에 교코까지 가세해 오래도록 장래와 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던 료타는 불현듯이 상념에 잠기고, 세 사람은 날이 갠 다음 날 임대 아파트 단지를 나선다. 영화로도 나왔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사노 아키라 지음/박명진 옮김/민음사/9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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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뜯으면 21억에도 팔린다…향수 부르는 장난감·... 마스크영역<ⓒ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