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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투의 재발견]女배우 향한 시샘이 샴푸 브랜드 '대박'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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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투가 시장을 키운다
소비자 이해 없는 질투마케팅은 오히려 '쪽박'

[질투의 재발견]女배우 향한 시샘이 샴푸 브랜드 '대박'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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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김현정 기자] # 장면 하나. 친구들과 함께 오페라 공연을 보러 온 여성이 주머니속 티켓을 꺼낸다. 티켓과 함께 빼꼼히 반짝이는 브랜드 아파트 로고의 키홀더. 순간 그녀의 주변 친구들은 한결같이 '부럽다'는 표정을 지어보인다. 장면 둘. 배우 전지현이 윤기나는 머릿결을 손등으로 튕긴다. 누군가 "짧은 머리 어때" 라고 물으며 그녀의 머리카락을 움켜쥐지만, 도도한 표정으로 받아치는 주인공. "왜, 욕심나니."

'질투'는 단언컨대 자본주의가 가장 사랑하는 감정이다. 소비의 뿌리이자 사치의 원료다. 몇장의 사진, 잠깐의 동영상, 또는 찰나의 마주침으로도 쉽게 소환할 수 있으며, 시기만 잘 맞아떨어지면 '매출급증'의 공을 세운다. 부족해서 못먹고, 없어서 못입는 시대가 끝나면서 대부분의 소비재는 질투라는 감정에 기대 성장해 온 게 사실이다.

앞서 예로 언급한 한 브랜드 아파트와 샴푸 광고는 소비자들이 쉽게 기억해낼 수 있는 '질투 소환' 광고다. 짧은 상황을 통해 "당신도 남들이 부러워 하는 가치를 가지라"는 강렬한 메세지를 남긴다. 결과적으로 두 브랜드는 아파트, 샴푸 시장을 대표하는 브랜드로 각인됐다. 실제로 전지현이 광고한 LG생활건강의 '엘라스틴' 샴푸는 출시 첫 해인 2001년 연매출 120억원을 찍고 도브, 팬틴 등 경쟁 브랜드를 단숨에 꺽으며 3년만에 샴푸시장 1위 브랜드가 됐다.
이밖에 현대카드의 블랙, 퍼플, 레드 등 프리미엄 카드 시리즈나 가격을 인상할 수록 수요가 강해지는 럭셔리 브랜드 샤넬의 핸드백, 억대를 호가하는 초호화 특급호텔 결혼식 등 과시적 소비시장이 불황을 모르는 것도 맥락을 같이한다.

그러나 무턱대고 지르는 "이것봐, 부럽지" 식 도발은 역효과를 내기도 한다. 시장에서 쉽게 인정되지 않을만한 내용으로 부러워 하기를 강요하거나, 사회적 통념이 허락하지 않는 범위에서 마케팅을 시도한다면 결과는 '참패'다.

대표적인 예가 최근 디젤게이트 논란으로 창립이래 최대 위기를 겪고있는 폭스바겐의 광고다. 폭스바겐은 최근 '남들에겐 질투, 당신에겐 기회'를 슬로건으로 브랜드 가치를 '고급 차종'으로 끌어올리려다가 실패했다. 소비를 신분과시용으로 선택하라는 노골적이고 수준낮은 광고라는 비난과 더불어 '질투할만한 차가 아니다'라는 조롱까지 들어야 했다. 2009년 현대자동차 역시 "요즘 어떻게 지내냐는 친구의 물음에 그랜저로 답했습니다"라는 광고 카피로 비슷한 비웃음을 샀다.
아모레퍼시픽의 뷰티브랜드 마몽드의 '토탈솔루션' 온라인 광고물은 도를 넘어선 비약으로 화를 자초했다. 2012년 소녀시대 멤버 유리를 모델로 한 이 영상은 모두가 부러워 할만한 명품백을 획득하는 방법을 알려준다는 콘셉트였다. '친구 끊고, 투잡 뛰고, 돈 모으고, 통장보며 돈을 모으는' 힘든 방법 대신 '남자친구 사귄다'를 방법을 택하면 된다는 내용이다. 비슷한 의미에서 피부 고민도 한 가지 제품으로 해결하라는 취지였다. '좋은 피부', '명품백'이라는 질투 유발 요소를 한 데 모았음에도 불구하고 이 광고는 많은 남성들의 비난에 시달렸고, 끝내 회사는 공개사과까지 해야했다.

1991년판 브로크하우스는 질투심을 '타인이 잘되는 모습을 보면서 느끼게 되는 불쾌감에서 증오에까지 이르는 마음'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독일어로 질투(Neid)는 'nid', 즉 노력, 원한, 적대적 감정을 뜻하는 단어에서 비롯됐다. 이 원초적 감정은 강렬하게 소비자를 도발하는 힘을 가졌지만, 결코 들키고 싶지는 않은 감정이다. 나에 대한 질투는 반갑지만, 남을 질투하는 자신이 드러나는 것은 혐오하는 소비자들의 이중적 태도를 이해한 마케팅만이 성공할 수 있다.

'질투의 민낯(2015)'의 작가 지그리트 엥겔브레히트는 저서를 통해 이렇게 말했다. "소비중심, 경쟁 위주의 사회에서는 경제성장을 유지하기 위해 소비자의 질투심을 의도적으로 부추기고 자극한다. 경제가 원활하게 돌아가도록 하는 데 있어서 질투심은 필수적인 역할을 한다. 그러나 타인의 질투가 사회적 인정이라고 여기는 것은 착각이다."



김현정 기자 alphag@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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