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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지금 버핏인가]1. 위기와 불확실의 시대, '버핏 원칙'을 음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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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빅시리즈 #1. 투자자 버핏, 인간 버핏

80조원 세계 2위 부자
1株에 2억4000만원 기업 CEO의 공유가치 경영
그는 왜 적대적 M&A를 안하나
그는 왜 재산 99%를 기부했나

워런 버핏. 캐리커쳐=이영우 기자 20wo@

워런 버핏. 캐리커쳐=이영우 기자 20w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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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임철영 기자, 주상돈 기자, 김민영 기자, 김보경 기자] 2015년 을미년 새해. 아시아경제가 '워런 버핏'이라는 이름을 꺼낸다. 버핏은 주식투자를 해본 사람이라면 꼭 한 번쯤은 들어봤을 '살아있는 전설'이다. 그의 이름에는 수많은 수식어가 붙는다. 오마하의 현인, 20세기 최고의 매니저, 가치투자 전도사, 기부왕 등.
버핏을 꺼낸 목적은 '돈 잘 버는 법'을 소개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다른 사람보다 많이 그리고 빠르게 부를 축적해온 과정을 소개하기 위한 것은 더욱 아니다. 버핏은 745억달러(약 80조원)에 달하는 개인자산을 보유한 인물이지만 그 이면을 타고 흐르는 실패, 역경, 좌절, 결핍 등 삶의 난관을 대하는 태도는 그의 부가 우연의 산물이 아님을 보여준다. 물론 그는 전지전능한 신이 아니다. 실패에서 깨달은 원칙을 지켜온 베테랑 투자가이지만 일상생활에서 버핏은 검소와 절약이 몸에 밴 평범한 노인이기도 하다. 전 재산의 99%를 기부하겠다고 한 그는 세상에서 가장 돈을 잘 벌고, 가장 돈을 잘 쓰는 인물 중 하나다. 그의 투자원칙과 삶은 동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분명 메시지를 던진다.

한국 자본시장엔 존경할 만한 멘토가 있을까. 자신의 일을 누구보다 사랑하면서 자신이 속한 공동체에 대한 고민을 거듭하고, 원칙과 철학을 기초로 올바른 사회시스템을 만들어 보고자 노력하는 존재. 천문학적인 부를 소유하고 있지만, 효율적으로 사회에 환원하는 방법을 학습하고 무엇보다 '기회의 평등'을 둘도 없는 가치로 생각하는 존재 말이다. 2015년 한국 자본시장에, 그리고 그 너머 한국 사회 전반에 버핏은 여전히 유효하다.

위기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말한다. 특히 정치 지도자들과 기업가들, 그리고 다양한 투자자들은 비장하고 심각한 얼굴로 불황에 갇힌 경제와 불확실성을 드리운 미래에 관해 말한다. 글로벌 경제 대부분이 만성적 저성장에 시달리고 있고 국내 상황도 녹록지 않다. 한국 유가증권시장의 시가총액은 1조2000억달러(약 1300조원)로 세계 11위에 이르지만 덩치에 비해 펀더멘털이 갖춰져 있지 않은 약골인 점이 자주 지적돼 왔다.

국내 주식시장은 해외증시에 대한 동조화 현상이 심해 간밤에 들어온 외신에 춤추며 출렁이기 일쑤다. 거기다가 경제 전반의 '돈맥경화'가 오랫동안 진행돼 한국 증시는 지리멸렬을 면치 못하는 박스권 장세 속에 갇혀 있는 상황이다. 증권사의 구조조정과 투자자의 아우성은 이제 뉴스도 되지 않을 만큼 다반사가 됐다. 자본시장의 꽃은 이제 자본시장의 덫이 돼가는 인상이다. 기업들은 투자를 망설인다.
정부가 그토록 독려해도 유보금은 갈수록 쌓인다. 돈이 안 도니 서민의 살림살이는 팍팍해지고 소비도 죽어간다. 돈을 벌기도 쉽지 않고 돈을 쓰기도 쉽지 않고, 돈을 예측하기도 쉽지 않고 돈에 관한 가치관과 철학을 지니기도 어려운 시대가 됐다. 위기는 당면한 현상과 상황과 경제생태계 전체에 있다고도 할 수 있지만 그 위기에 대처하고 극복해나가는 인간의 신념과 역량과 철학의 부재에 기인한 것일 수도 있다. 위기에 선 인간은 위험한 기로에 서 있기도 하고 위대한 기회에 서 있기도 하다. 우리가 워런 버핏을 주목하는 까닭은 여기에 있다.

버핏이 우리가 당면한 경제문제들을 헤쳐 나가는 유일한 정답이라고 주장하려는 것은 아니다. 어떤 투자자나 리더도 만능의 절대반지를 가지고 있을 리는 없다. 다만 이 시점에서 우리 시대 경제의 빅 리더라 할 수 있는 버핏의 관(觀)을 이해하고 그 삶과 '경제행위'에 대한 유의미한 해석을 이끌어내는 것은 중요한 착안점을 줄 수 있다고 본다. 그는 책 속에 들어간 사람이 아니라 여전히 살아있는 경제인이며 움직이는 투자자이기에 우리와 동시대를 함께 호흡하고 있다. 그도 역시 글로벌 위기를 바라보고 있는 사람이며, 미래에 대해 모색하고 고민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그의 선택과 행동의 기저(基底)엔 21세기의 '긴박하게 숨 쉬는 경제학'이 숨어있다. 이 시리즈를 시작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올해는 마침 버핏이 버크셔 해서웨이를 인수한 지 50년이 된 해이기도 하다.

누구나 버핏을 알고 있지만 아무도 제대로 버핏을 모른다. 아는 버핏은 뉴스의 수면에 떠오른 버핏이며, 모르는 버핏은 그 뉴스의 수면까지 움직여온 그의 내재율(內在律)일 것이다.

◆오마하의 현인(賢人)= 버핏은 '오라클 오브 오마하(Oracle of Omaha)'란 별칭으로 불린다. 오마하는 미국 네브래스카주 동부에 있는 인구 43만명의 작은 도시다. 버핏이 나고 자란 이곳은 한 해 500억달러의 투자자산이 집행되는, 그의 기업 버크셔 해서웨이의 본산이기도 하다. 오라클(Oracle)은 현인(賢人)으로 대개 번역하지만 '인간의 질문에 대한 신의 응답'을 의미하는 신탁(神託)을 가리킨다. 그냥 현명한 사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신과 같은 지혜를 지녔다는 절대적인 신뢰와 찬사를 그 말 속에 담고 있다.

개인자산 745억달러(약 80조원)의 세계 2위 부자. 1주에 22만달러(약 2억4000만원)에 달하는 기업의 최고경영자. 이 버크셔 해서웨이의 시가총액은 3600억달러(약 390조원)로 우리나라의 올해 살림 규모(376조원)보다 더 많은 액수다. 손을 댄 주식은 주가가 천정부지로 치솟고 눈길만 줘도 주가가 들썩인다는 그다. 이런 일을 해내는 그의 지혜는 대체 어디에서 나오는 것이며, 주식투자로 큰 돈을 번 억만장자에게 많은 사람들이 이토록 아낌없는 존경을 보내는 까닭은 뭘까. 혹자는 그를 롤모델로 삼아 그의 투자 경로를 좇기도 하고 방식을 흉내내기도 하며, 그 결과로 이뤄진 숫자들에 대해서 경탄하는 것으로 그를 알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의 진가는 투자에 대한 철학과 이를 뒷받침하는 실천, 고민, 역경을 통해 더욱 빛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큰 성공을 거둔 투자자에 대한 경탄, 그 이상이 버핏에게 있다는 점은 우리의 관성적인 경제 개념과 경제 철학을 돌아보게 만든다.

그는 왜 오라클인가. 지난해 5월 버크셔 해서웨이 주주총회장에는 역대 최대인 4만명의 인파가 몰렸다. 매년 5월마다 벌어지는 열광의 현장이다. 그들은 무엇을 보기 위해 그곳으로 달려왔을까. 버핏을 통해 그들이 읽어가는 것은 투자 기법이나 투자 대상에 대한 통찰만이 아니라 자본시장을 읽는 큰 그림과 자본주의의 본령(本領)을 읽고 간다. 이 점이 버핏을 남다르게 하는 점이다.

버핏은 주식시장에 돈을 베팅해 더 큰 돈을 벌어들이는 '갬블러'와는 거리가 멀다. 현재의 그는 주식투자자라기보다는 경영자에 가깝다. 버크셔 해서웨이의 자회사와 손자회사는 97개에 달한다. 이들 회사들 중 버핏이 직접 경영에 개입하는 경우는 단 한 곳도 없다. 이따금 워싱턴포스트, 코카콜라 등에 이사로 이름을 올렸지만 이마저도 기존 경영진이 버핏의 명성에 기대어 회사의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 요청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버핏의 원칙= 버핏은 특정회사의 재무제표를 암기하고 다니면서 투자 여부를 판단하는 깐깐한 인물로 알려져 있지만 투자자와 기업가에 관한 원칙에 있어서는 철저하다. 그는 지분을 보유한 회사의 최고경영자(CEO)가 비도덕적인 행위를 하거나 불법을 자행하지 않는 한 결코 간섭을 하지 않는다. 그는 이에 관해 '투자와 투기'의 차이로 설명한다. 투자는 기업이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투자자는 기존 경영진을 믿고 돈을 빌려주는 존재이다. 경영진은 투자자보다 해당기업과 업계에 대한 이해도가 높기 때문이다. 기업은 주주들의 자본을 이용해 기업가치를 키우고 주주들은 빌려준 돈에 대한 차익을 거두는, 어찌 보면 원론적인 일련의 과정이 버핏식 투자인 것이다. 버핏은 "투자는 결과물이 있는 것이지만 투기는 결과물이 없다"고 단언한다.

버핏은 또한 '진 러미(gin rummy)' 방식의 매매는 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진 러미는 성장 가능성이 낮은 사업을 매번 버리는 일을 의미한다. 그는 "진 러미식 경영은 우리의 투자 행태가 아니다"면서 "현금이 발생하고 좋은 노사관계가 유지된다면 평균 이하의 기업도 팔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버핏은 이러한 원칙을 지키기 위해 적대적 인수합병에는 나서지 않는다. 또 상대 회사가 주식매입을 원치 않을 경우 단 한 주의 주식도 매수하지 않았다.

◆난소(卵巢) 로또, 그리고 기빙 플레지= 버핏은 자신을 '난소로또'에 당첨된 사람이라고 말해왔다. 그가 말하는 난소로또는 요즘 말로 하자면 '모태(母胎)로또'라고 할 수 있다. 미국에서 백인 남성으로 태어난 것은 엄청난 행운이 겹친 로또와도 같다는 얘기다. 1930년생인 버핏은 바로 직전 해에 시작된 미국 대공황을 몸으로 겪으며 자랐다. 대공황은 그가 목격한 자본주의의 첫 모습이었다. 그러나 주식중개인이자 정치인인 아버지로부터 부족함 없는 지원을 받았다.

어린시절부터 돈 버는 데 관심이 많았고 특히 부친의 영향으로 주식시장에 일찍 눈을 떴다. 당시까지만 해도 인종과 흑백 차별이 심했던 시기였는데 가장 앞선 자본주의 시스템을 갖추고 금융ㆍ주주 자본주의의 허브로 떠오르고 있었던 미국에서 부유하게 태어나 돈을 벌 수 있는 환경을 만난 것은 그에게 난소로또였다는 것이다. 이런 생각은 버핏을 바꾼다.

"부모를 잘 만나 세상에 나왔다고 해서 평생 식량배급표를 공급받는 것은 공정함에 대한 내 신념과 충돌한다." 부의 상속과 공정성에 대한 그의 생각은 이 한마디로 요약된다. 버핏은 생각에만 머물지 않고 실천에 나선다. 2006년 버핏은 빌앤드멀린다 게이츠 재단에 개인재산의 85%를 기부하겠다고 발표했다. 이후 버핏은 이 기부 비율을 자산의 99%까지 확대했다. 전 세계 언론이 버핏의 기부에 주목했고 특히 게이츠 재단에 기부한 배경에 호기심을 가졌다. 이에 대해 버핏은 "사람들이 나에게 돈을 맡기는 이유는 내가 돈을 버는 데 전문가이기 때문"이라며 "마찬가지로 게이츠 재단에 기부한 이유는 그들이 나보다 기부한 돈을 더 잘 활용할 것이라 판단해서다"고 설명했다. 기부 역시 '자본의 효율적 배분'이라는 투자 철학이 반영된 셈이다.

버핏의 제안으로 2010년 약 40명이 참여해 출범한 억만장자들의 공개 기부 서약 캠페인인 '기빙 플레지(The Giving Pledge)'에는 현재 128명이 이름을 올려놓고 있다. 이들은 모두 자신의 재산 중 50% 이상을 기부하겠다고 약속했다. 그의 기부 철학이 전 세계 부자들에게 확산된 것이다. 버핏의 전기 '스노볼'을 출간한 앨리스 슈뢰더는 "버핏이 가장 이상적으로 생각한 사회는 승자가 승리를 얻으려고 자유롭게 겨루면서도 패자에게 도움을 줌으로써 승자와 패자 사이의 격차가 줄어드는 사회였다"고 언급했다.

◆버핏세와 사회시스템의 신념= 그는 또한 사회가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구성원 모두가 재능과 능력에 따라 적재적소에 배치돼야 한다고 생각했다. 전제는 사회 구성원이 재능과 능력을 온전히 발휘할 기회를 보장하는 것. 이를 올바른 자본주의의 모습, 지속 가능한 사회시스템이라고 생각했다. 버핏은 이렇게 말했다. "올림픽 출전 선수를 선별하면서 20년 전 우승팀의 후손을 뽑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말할 사람이 있을까. 부모가 뭔가 성취를 했다는 이유만으로 그 자식에게 유리한 지위를 주는 것은 사회의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어리석은 방식이다."

그는 금융ㆍ세제 정책의 비효율성에 대해 적극적으로 비판하기도 했다. 가장 많이 알려진 사례는 조지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의 부자감세안에 반대한 것. 그는 국민복지 향상을 위한 증세에는 찬성했지만 저소득층을 비롯해 서민들에 대한 감세를 주장하면서 부자들에 대한 세율은 늘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가 주장한 부자증세안은 현재 여러 나라에서 '버핏세'로 통한다.



임철영 기자 cylim@asiae.co.kr
주상돈 기자 don@asiae.co.kr
김민영 기자 argus@asiae.co.kr
김보경 기자 bkly477@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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