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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다시보기]17-① 질문, 거짓말, 그리고 파일…진실은 혀 뒤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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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시리즈 Story #17. 세월호 국조에서 본, 피말리는 사실규명 게임 현장

세월호 침몰사고 국정조사 특별위원회의에서 의원들이 질의를 하고 있다.

세월호 침몰사고 국정조사 특별위원회의에서 의원들이 질의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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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김동선 기자, 주상돈 기자, 김민영 기자, 김보경 기자] "10시1분에 현장에 도착한 해군 링스헬기에 구조장비 없었죠?" 세월호 침몰사고 국정조사 특별위원회의 첫 기관보고가 열린 지난달 30일 오전. 야당 간사인 김현미 의원은 작정한 듯 해군의 부실한 초동 대응을 강하게 질타했다. 여당 간사 조원진 의원의 질의에 이어 마이크를 잡은 김 의원은 김관진 당시 국방부장관(현 국가안보실장)에게 "'국방부 장관의 말을 두 줄로 요약하면 '군이 가진 모든 장비와 인력을 다 동원해서 적극 지원했다'와 '(그런데) 최선을 다하지 못했다'는 두 마디인 것 같은데 이 둘은 모순된다"며 "어느 것이 맞는가"라며 따지기 시작했다. 김 전 장관이 "최선을 다했지만 초동 단계에 현장에 있지 않았다"고 답하자 김 의원은 공세의 강도를 높였다. 이번에는 "해군 3함대의 링스헬기가 현장에 도착한 것은 10시1분으로 배가 전복되기 30분 전인데 도착해서 뭐 했느냐"고 물었다. "이미 해경 헬기가 그 자리에서 구조 작업 중이었기 때문에 외각에서 임무 대기를 했다"는 답을 듣고는 준비한 일격을 날린다.

"10시12분에 해경이 링스에게 호이스트(구조장비) 장착 여부를 물어본다. 이에 링스가 호이스트는 없고 튜브 2개와 구명의 5개를 가지고 왔다고 했다. 이거 가지고 왜 왔나. 350명이란 사람들이 배에 있다는 것을 알고 갔고 해상에서 사고가 났는데 가장 가까운 비행기가 출동하면서 구명장비를 안 가지고 갔다? 이게 장관이 말한 '군이 모든 전력과 인력을 다 보내 적극 지원'한 증거인가."
결국 김 전 장관은 "1차 투입한 링스헬기의 해난 구조요원들은 경장비로 간 것이 사실"이라며 구조장비를 갖추지 않은 채 출동한 것을 시인했다. 김 의원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이번엔 링스헬기 탑승 인원을 문제 삼았다. 김 전 장관은 1차에 14명, 2차에 9명이 링스헬기를 타고 현장에 투입됐다고 말했다. 하지만 김 의원은 1차 출동 때 조작사 1명과 정비사 2명 등 총 3명만 태운 채 현장에 도착했다고 지적했다. 이번에도 김 전 장관은 말 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해군이 구조장비도 구조인력도 없이 현장에 출동한 것을 인정한 셈이다.

◆심리戰=김 의원의 이 같은 문제 제기는 지난달 초부터 실시한 네 차례의 현장조사와 해군을 포함한 각 기관을 대상으로 제출받은 자료가 동력이 됐다. 이를 근거로 현장조사를 통해 해양경찰이 이용한 전용부두와 해군 목포 3함대 사령부 사이의 거리가 1㎞ 남짓인데 해군과 해경이 서로 협조하지 않아 해경 구조대가 결국 세월호 침몰 후 현장에 도착했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었다. 또 국방부로부터 제출받은 '해군 헬기와 해경 비행기의 교신 내역'을 토대로 해군의 링스헬기가 구조장비 없이 출동했다는 것을 밝혀냈다.

이처럼 국정조사에서 현장조사와 자료제출 요구는 사건의 진실을 파헤치는 밑자료가 된다. 자료를 요청하고 받아내는 작업이 기본인 만큼 국조에 참여하는 위원들이 대상 기관에 요구하는 자료의 양도 상당하다. 또 다른 특위 위원인 김현 의원실에 따르면 지난 5월29일 세월호 국조특위 실시계획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이후부터 6월15일까지 새정치민주연합 국정조사 특위 위원 8명이 요구한 자료는 총 1341건이다. 위원장을 포함한 위원이 총 18명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전체 위원의 자료 요청 건수는 2000건을 훌쩍 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자료는 국회 의정자료 전자유통시스템을 이용해 개별적으로 요청하거나 특위 차원에서 취합해 한 번에 요구하기도 한다. 자료를 요청하고 나면 해당 기관에서 문의를 하기도 하고 제출된 자료에 대해 다시 확인하는 작업이 반복된다. 이 때문에 의원실의 보좌진들은 하루 종일 전화를 손에서 떼지 못한다. 김현미 의원실의 김준호 비서관은 기관보고를 앞두고는 화장실 가는 시간과 밥을 먹는 중에도 전화를 손에서 놓지 못했다고 한다. 김 비서관은 "자료를 보다가 궁금한 것이 있으면 전화해서 물어보고 그러다가 또 요구할 자료가 생기면 또 전화해서 요구하고 우리가 요구한 자료에 대해 애매한 것을 또 전화해서 물어오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자료戰=민감한 자료를 요청한 경우에는 시간이 지나도 감감 무소식인 때가 많다. 이때는 자주 전화해서 독촉하는 방법 밖에 별 도리가 없다. 마음은 급한데 자료 제출을 차일피일 미루거나, 해당 부서가 아니라며 발뺌하는 경우에는 고성도 오간다. 지난 2월 카드 사태 국조를 준비 중이던 김영주 의원실의 조태상 보좌관은 NH농협카드와 통화를 하면서 격앙된 목소리로 "아니 계속 여기에 전화하라고 하고 여기는 또 저기로 하라고 하고 진짜 이러실 겁니까"라고 묻고서 바로 농협 본사 쪽에 전화를 걸어 "국조에 협조할 생각이 있는 겁니까. 직원 교육 똑바로 하시든가 아니면 직접 자료를 주시든가 하세요"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하지만 윽박을 질러도, 어르고 달래도 통하지 않을 때 최후의 수단은 발품을 파는 것이다. 카드 사태의 국조 준비를 위해 지난 2월 일요일에 출근한 유일호 의원실의 한 비서관은 요청한 자료가 오지 않자 답답한 마음에 결국 금융감독원을 항의 방문을 하기도 했다.

전화기를 붙잡고 자료 요청과 문의를 반복하다 보면 일과 시간은 순식간에 지나간다. 국조를 준비하는 보좌진들은 '공식적인 업무시간이 끝나는 이때부터가 진짜 시작'이라고 입을 모았다. 이때가 차분히 자료를 검토하고 이를 통해 문제점을 발견하는 시간인 셈이다. 조원진 의원실의 임지홍 보좌관은 "전체적인 내용을 파악하고 나면 문제점을 뽑고 이 문제점에 대한 사실관계 확인을 위해 자료를 요구하고, 자료가 오면 또 검토하는 과정의 반복"이라며 "문제점을 발견하면 규정과 관리 감독 주체, 의문점들을 확인한다"고 말했다. 기관보고가 시작되면 국조 위원들과 보좌진들은 더욱 바빠진다. 국방부와 안전행정부, 전라남도, 진도군 등의 기관보고가 진행된 이날 국조는 오전 10시에 시작해 자정을 넘겨 끝이 났다. 조사 '중지'와 '계속'을 반복하며 총 531분 동안 회의가 진행됐다. 회의가 끝나면 쉴 틈 없이 다시 다음 기관보고의 준비가 이어졌다.

◆黨利戰=기관보고 둘째 날인 지난 1일 여야는 해운 관련 업무에 대한 해양수산부 등 정부기관의 관리 부실과 사고 직후 드러난 초동대처 미흡에 대해 이구동성으로 질타했다. 하지만 한목소리는 오래가지 못했다. 이날 오전 최민희 의원이 이번 국조는 진상 규명을 위한 차원으로 하는 것이니 향후 대책은 문서로 대체하자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이러면서 최 의원이 "새누리당 의원님들께도 말씀드리는데요. 야당 의원이 문제 제기했다고 무조건 반대하지 마시고요. 사실이 맞는 내용은 받아들여 주시기 바랍니다. 네? 지금 제가 말하고 있잖아요"라고 말하자 여당 의원 쪽에서 "말 같은 말을 해야지" "뭘 그리 잘났다고 그렇게 말을 해"라는 비아냥이 터져 나왔다. 결국 이를 지켜보고 있던 유가족이 "싸우지 맙시다. 유가족들 와 있어요"라고 소리를 치는 상황이 만들어졌다. 급기야 2일에는 세월호 침몰 사고 당시 청와대와 해경이 주고 받은 교신 녹취록을 김광진 의원이 왜곡했다는 여당의 반발로 회의가 5시간여 파행되기도 했다.

'제각각의 목소리'는 국조 곳곳에서 이미 감지됐다. 지난달 27일 처리하기로 했던 세월호 참사 국조 계획서는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의 증인 채택 문제로 충돌했다. 결국 조사대상 기관에 '청와대 비서실'을 명시하는 대신 '기관보고는 각 기관의 장(長)이 보고한다'고 명시해 김 실장의 이름을 적시하지 않기로 하고서야 이틀 뒤 밤에 열린 본회의에서 계획서가 통과됐다.

지난달 25일에는 여야 의원들이 각각 인천항과 목포 등에서 따로 현장조사에 나섰다. 이 탓에 '따로 국조'라는 비아냥도 들어야 했다. 앞서 지난달 17일 열린 2차 특위 회의에서 "당리당략이 아닌 여야가 한마음이 돼서 특위가 원만하게 이뤄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여야가 뜻을 모아서 함께 잘 해나가길 기대한다" 등의 여야 의원들의 발언이 무색해졌다.

◆19대 국회서 국조 네번 열렸지만…

'국회는 국정을 감사하거나 특정한 국정사안에 대해 조사할 수 있으며, 이에 필요한 서류의 제출 또는 증인의 출석과 증언이나 의견의 진술을 요구할 수 있다.' 국정감사ㆍ조사 제도는 헌법 제61조 1항에 따라 보장된 국회가 가진 가장 강력하고 직접적인 국정 견제 수단이다. 국정조사는 국회 전반에 대해 정기적으로 들여다보는 국정감사와 달리 국회의원의 4분의 1 이상의 요구가 있을 때 시행된다. 일반적으로 정부의 정책에 대한 조사보다는 국가기관의 비리ㆍ의혹 사건 등이 발생했을 때 열린다.
세월호 침몰사고 국정조사 특별위원회의.

세월호 침몰사고 국정조사 특별위원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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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세월호 침몰사고의 진상 규명을 위한 국정조사특별위원회'도 마찬가지다. 속절 없이 현재까지 293명이 희생된 이 사건의 철저한 진상조사와 책임 소재 규명을 통해 제도적 개선책을 마련하고자 국조를 실시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국회는 지난 5월29일 본회의에 국정조사계획서를 상정해 같은 날 의결을 거쳤다. 오는 8월30일까지 90일간의 세월호 국조특위가 시작된 것이다. 우선 6월2일부터 11일까지 10일간 동안 예비조사 형태의 사전조사를 실시했다. 국조특위 위원들은 인천과 진도, 목포 등을 방문해 세월호가 출항한 인천항 연안여객터미널, 세월호와 크기ㆍ구조가 비슷해 쌍둥이 배로 불리는 오하마나호, 목포 해경, 진도 등의 현장을 찾았다. 이후 특위는 안전행정부와 국방부 등을 시작으로 지난달 30일부터 오는 11일까지 기관보고를 청취한 뒤 닷새간의 청문회를 진행한다. 이 모든 일정을 마치면 특위는 국정조사와 마찬가지로 결과보고서를 작성해 국회의장에게 제출해야 한다. 정부는 이를 토대로 시정 및 처리결과 등을 담은 사후 처리 보고서를 제출하고 국회는 본회의에서 이를 채택한다.

국정조사 관련 절차가 일률적으로 규정된 13대 국회 이후 19대 국회 현재까지 총 23건의 국조가 실시됐다. 하지만 국조의 결과보고서가 본회의에서 채택된 경우는 단 9건에 그쳤다.

지난 18대 국회에서 미국산 소고기, 쌀 직불금, 저축은행 비리 등에 관해 3차례의 국조가 진행됐지만 저축은행 비리 관련 국조만 결과 보고서가 채택됐다. 19대 국회에서는 카드 사태와 공공의료 정상화, 국정원 댓글, 민간인 사찰 등 4건의 국조가 열렸지만 이 중 공공의료 정상화 관련 결과 보고서 단 1건만 채택됐다. 국조 무용론이 끊이지 않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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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선 기자 matthew@asiae.co.kr
주상돈 기자 don@asiae.co.kr
김민영 기자 argus@asiae.co.kr
김보경 기자 bkly477@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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