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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다시보기]3-① 박정희, 의사당 돔 천장 지을때 석굴암 벤치마킹 지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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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시리즈 Story #3. 의사당 건립기

▲한눈에 보는 의사당 건립의 비밀

▲한눈에 보는 의사당 건립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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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김동선 기자, 김민영 기자, 김보경 기자, 주상돈 기자] 현재 국회의사당 건물이 들어앉은 곳에는 원래 나지막한 산이 있었다. 양이나 말을 치던 낮은 구릉이었다는 해발 32m의 양말산. 여의도 의사당은 이 산을 깎아 지하 2층, 지상 6층, 탑옥 2층 구조의 석조로 지어졌다. 건물을 떠받치고 있는 돌기둥의 높이가 32m이니 깎았던 언덕만큼 자리를 차지한 셈이다.
국회의사당은 1975년 준공 당시 국내 최대 건물이었으며 단일 의사당 건물로도 동양 최대 규모를 자랑했다. 준공과 함께 새 국회의사당은 건물 자체의 위용 때문에 관광객이 줄을 이었다. 준공 첫해 4개월간 1만5000명이 다녀갔고 이듬해에는 9만3300여명이, 1977년에는 그 수가 20만1000여명에 달했다. 지난해에는 55만명이 국회를 참관했다.

◆국회의사당 건물의 숨은 코드= 이 웅장한 건물을 떠받치는 화강암의 팔각 석주 24개는 24절기를 상징하는데 경회루 열주를 차용한 것이다. 마주 선 열주(列柱)는 여당과 야당을 형상화했다. 건물 가운데는 밑지름 64m의 돔 지붕이 덮고 있고 그 아래 내부에는 널따란 로텐더홀이 자리하고 있는데 이는 석굴암을 본뜬 것으로 박정희 전 대통령의 아이디어라는 게 건립 당시 선우종원 국회 사무총장의 설명이다. 원래 설계안에는 국회의사당 건물은 5층이었고 돔도 없었다고 한다. 건축계에선 돔이 올라간 것은 당시 국회의원들의 간섭 때문이라는 이야기가 유명하다.

원로 건축가 안영배씨의 구술집에 따르면 안영배·김중업·이광노 등 건축가의 안을 본 당시 국회의원들이 "의사당이라고 하면 미국이나 유럽처럼 돔이 있는 건물이어야지 왜 돔이 없느냐"는 불만을 토로했다고 한다. 이 구술집에는 이와 함께 박 전 대통령과 관련된 다른 증언도 있는데 최종 도면을 청와대에 올렸더니 '중앙청 건물이 5층인데 그보다는 높아야 하지 않느냐. 한 층 더 높여라'고 했다는 것이다. 이는 새 의사당에 대한 최고 통치자와 국회의원들의 관심을 방증하지만 결국 그들의 입김 때문에 원래의 설계안은 '짜깁기'되는 운명에 처한 것이다.
국회사무처의 설명에 의하면 봉긋하게 솟은 돔은 국민의 다양한 의견을 찬반토론을 거쳐 결론 낸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를 실천해야 할 의무가 바로 '국회의원'에게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국회는 의사당 건물에 도열해 있는 열주의 상징성에 더 수렴하고 있다. 국회의사당 열주는 서로 견제하는 여야를 상징한다.

◆의사당 건립 에피소드= 국회의사당 건립기를 취재하기 위해 선우종원 당시 사무총장(1918~2014)을 만나려던 취재진은 뜻밖의 비보를 접했다. 지난 3월8일 선우 전 총장이 별세한 것이다. 고인이 총재로 있던 무궁화사랑운동본부를 통해 인터뷰를 시도한 것인데 결국 무산되고 말았다. 고인은 노환으로 경기도 분당 자택에서 오랫동안 누워만 지냈고 기력이 없어 대화도 쉽지 않다고 했다.

그러나 국회의사당 건립의 핵심인물이었기에 만나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겠다 싶었지만 마지막 증언은 담을 수 없었다. 대신 고인의 저서 '나의 조국 대한민국(BGI·2010)'에 여의도에 국회의사당을 건립할 당시의 에피소드가 여럿 수록돼 있다.

7대 대통령선거가 끝나고 당시 중앙선거관리위원장이었던 선우 전 총장은 박 전 대통령과 독대했다. 이 자리에서 박 전 대통령은 "임기 중에 동양 최대의 국회의사당을 세워줬으면 한다"고 제안했다고 한다. 1966년 2월 6대 국회에 의사당 건립위원회가 구성됐다. 1967년 여의도로 부지가 확정되고 자문위원 구성 등의 절차를 거쳐 1969년 제헌절에 기공식이 거행됐다. 선우 전 총장은 '새 의사당 만큼은 국산 자재와 우리 기술만으로 짓자'고 결심했다고 한다. 또 건설을 맡은 현대건설과 대림산업의 책임자를 불러 '절대 하청을 주지 않는다'는 각서를 받기도 했다.

선우 전 총장은 국회의사당 건립에서 가장 기억나는 장면으로 둥근 철골조의 돔을 올리던 일을 꼽았다. 돔 자체의 무게가 1000t에 달하는데 이를 분산시키는 구조로 만든다 해도 그 무게를 지붕 위에 올리는 것 자체가 처음 있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구조학의 권위자인 김형걸 당시 인천대학장이 돔 철골조를 설계했는데 일본에 건너가 미쓰비시 중공업의 컴퓨터로 확증을 받아왔다. 그 철골조를 마당에 실물대로 만들어 놓은 뒤 다시 힘의 분산 등을 점검했다.

하루는 박 전 대통령이 현장에 들러 옆에서 수행하는데 갑자기 "야!" 하는 큰 소리가 났다. 멀리서 볼 때와는 달리 큰 규모에 놀라 박 전 대통령이 내지른 감탄사였다. 돔을 올리는 작업과 더불어 힘들었던 작업은 화강암을 깎아 붙이는 작업이었다고 하는데 이 작업에는 초기 150여명, 완공까지 2000여명의 석공이 동원됐다.

◆국회 해태상의 비밀= 국회의사당의 또 다른 상징물은 해태상이다. 의사당 정문에서 멀리 관악산을 노려보며 서 있는 해태상은 화재와 재앙을 막는 역할을 한다. 선우 전 총장의 회고록 '격량 80년'에 따르면, 이 해태상은 소설가인 월탄 박종화 선생(1901~1981)의 제의로 만들어졌다.

▲해태상(출처: 국회 사무처)

▲해태상(출처: 국회 사무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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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태상 건립 예산이 따로 없었던 선우 전 총장은 해태가 해태제과의 상징인 점을 감안해 당시 박병규 사장에게 도움을 청했고, 박 전 사장이 흔쾌히 협조하면서 제작됐다. 실제 제작은 서울대 미대에 재직하고 있던 이순석 교수가 맡았다. 국회 해태상은 경복궁의 해태상과는 다른 점이 있다. 암수 구분 없이 앉아 있는 광화문의 해태와는 달리 이곳의 해태는 암수 한 쌍이 네 발로 꼿꼿이 서 있다.

또 국회 해태상 기단 아래 포도주가 묻혀 있다는 이야기가 전설처럼 전해져 오는데 이는 사실이다. 1976년 발간된 '해태 30년사'에 이에 대한 기록이 상세히 남아 있다. 해태상을 설치할 즈음에 해태주조㈜의 생산제품인 노블와인 백포도주를 해태상 기단 아래에 36병씩 72병을 묻었다고 기록돼 있다. 기단 아래를 10m 정도 파고 그 안을 석회로 봉토한 후, 특제 항아리를 넣어 백포도주를 한 병 한 병씩 석회로 감싸 항아리에 넣고 봉했다고 한다. 이 백포도주는 국회의사당 건립 100주년이 되는 2075년 개봉된다. 먼 미래의 '빅 이벤트'를 준비한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출시 100년이 되는 포도주는 마실 수 있을까. 와인은 발효식품이기 때문에 장기간 잘못 보관하면 식초처럼 맛이 변한다. 최성순 와인21닷컴 대표는 "어둡고 진동이 없으며 습도 70~80%, 온도 15~16도를 꾸준히 유지한다면 100년을 넘겨도 와인 맛과 향을 그대로 즐길 수 있다"면서 "그러나 이 보관법을 따르지 않고 단순히 해태상 아래 묻어두기만 했다면 마시는 데 지장은 없어도 맛과 향이 밋밋해져 와인으로서의 매력은 떨어질 것"이라고 했다.


◆의사당 최초 설계案엔 돔이 없었다

현재 국회의사당의 모습은 최초 설계 당시와 크게 두 가지가 다르다. 당초 5층으로 설계된 의사당은 중앙청사보다 한 층 높은 6층으로 변경됐다. 또 1000t가량의 육중한 돔이 의사당 꼭대기에 얹어졌다. 정치권의 요구에 따라 설계가 변경된 것이다.

"국회의사당을 볼 때마다 '더 낮았으면 좋았을 텐데'라는 아쉬움이 든다. 당시 정치권의 입김이 설계자의 재량을 위축시켰다는 점이 참으로 괴로웠다."

서울 청담동의 도성건축사무소에서 만난 안영배 건축가(82)는 "더 낮았어야 하는데"라며 인터뷰 내내 여의도 국회의사당이 6층으로 높아진 것을 아쉬워했다. 국회의사당이 지금의 모습보다 낮았더라면 더 안정적인 모습이었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새 의사당 건립을 위해 국회사무처는 설계를 일반공모와 지명공모로 나눠 진행했다. 안 건축가는 일반공모를 통해 뽑혔다. 일반공모 건축가들은 당시 원로격으로 지명된 김정수·이광노·김중업 건축가와 공동설계팀으로 꾸려졌다.

안 건축가는 "어차피 일반공모를 통해 뽑힌 밑그림만으로 국회의사당을 설계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일단 공모를 통해 우수작을 낸 건축가를 선발해 지명설계자와 함께 공동설계팀을 꾸리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국회의사당 1차 기본 설계안.(출처: 안영배 건축가)

국회의사당 1차 기본 설계안.(출처: 안영배 건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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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설계팀을 꾸리는 과정도 녹록지 않았다. 대한건축사협회는 1968년 발행된 건축사(3권 8호)에 '의혹 짙은 국회의사당 신축설계'라는 제목의 글에서 '국회의사당 신축 계획 설계안 공모는 한마디로 말해 한심하다. 형식에도 못 미치는 일을 왜 하는가'라며 비판했다. 협회는 이듬해에도 '국회의사당 신축설계 용역계약 시정'을 건의했다. 의사당 설계 용역계약을 등록된 건축사가 아닌 대학교수 등과 체결한 것은 건축사법(제23조)을 위반한 것이기 때문에 건축사와 신축계약을 체결해야 한다는 것이 요지였다. 이 같은 논란에 당시 서울대에 재직 중이던 안 건축가는 서울대에 사표를 냈다.

4명으로 구성된 공동설계팀이 꾸려졌지만 이들의 설계안은 번번이 정치권의 반대에 부딪혔다. 당시 신문회관(현 프레스센터)에 설계도면을 전시했을 때였다. 공개된 의사당 설계도는 현재 국회의사당보다 좌우로 더 길고 낮은 모양이었다. 돔도 없었다. 이 도면을 본 국회의원들이 '왜 돔이 없느냐'며 한마디씩 했다. 앞서 국회의원 일부는 미국과 유럽 등의 의사당을 둘러보고 왔다. 의원들은 돔이 우뚝 솟은 미국의 의사당처럼 우리 의사당에도 돔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르네상스 건축에서 돔은 종교적 혹은 정치적 권력을 상징한다.

안 건축가는 "당시 의원들은 '상징적인 의미도 있고 권위도 있어 보인다'는 이유를 들어 돔을 지붕에 얹자고 했다"며 "하지만 이 양식은 20세기 초에나 통하는 옛날 양식이었다"고 말했다. 의원들의 주장을 무시할 수 없었던 공동설계팀은 일부러 보기 싫을 정도로 높고 큰 돔을 그려 보여줬다. 내심 '흉물 돔'으로 퇴짜 맞길 바랐던 것이다.

그런데 아뿔싸. 이를 본 의원들이 되레 흡족해하면서 허사가 됐다. 결국 설계팀은 돔을 최대한 납작하게 얹는 도면을 그렸다. 이번에는 청와대의 최종승인이 문제였다. 당시 청와대 브리핑에 공동설계자들은 참여하지 못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5층으로 설계된 의사당을 중앙청보다 1층 높여 6층으로 만들 것을 주문했다. 건축물의 총면적(용적률)은 늘릴 수 없는 탓에 의사당의 길이는 짧아졌다. 의사당이 높아지자 낮게 설계했던 돔이 밑에서 잘 안 보인다는 지적이 나왔다. '돔 아랫부분만 1층을 높여 돔도 높이고 6층을 만들자'는 논의도 있었지만 결국 총 6층 건물에 돔의 크기도 두 배가량 높이기로 했다.

안 건축가는 설계 변경 탓에 건축학적인 측면에서 국회의사당의 안정성이 훼손됐다고 봤다. 그는 "면적을 늘리지 않고 5층이 6층이 되니 결국 좁아지고 길어지면서 모양이 이상해졌다"며 "마음 같아선 지금이라도 양옆에 기둥을 하나씩 더 세웠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안 건축가는 낮은 건물을 지어 안정성과 함께 친밀함을 동시에 꾀하고 싶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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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선 기자 matthew@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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