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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다시보기]7-① 의원님 손·발·머리 때로는 샌드백까지 돼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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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시리즈 Story#7. 금배지 보좌관


[국회 다시보기]7-① 의원님 손·발·머리 때로는 샌드백까지 돼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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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설문안부터 대정부질의書·정책 자료집
숙취 이틑날엔 해장 대책까지…
밥보다 욕 더 많이 먹는 '눈치 100단' 인생

[아시아경제 김동선 기자, 김민영 기자, 김보경 기자, 주상돈 기자] 국회의원 보좌진이 처음 등장한 것은 딱 60년 전인 제3대 국회 때다. 고(故) 김철 의원(1945~2011)이 1954년 대한민국 첫 보좌관을 임명한 것으로 국회인사시스템에 남아 있다. 당시만 해도 보좌진 정원은 의원당 1명이었다. 이랬던 것이 국회의 규모와 기능이 커지면서 보좌직원 숫자도 늘어났다.

◆의원당 7명의 보좌관…직급별로 업무 부담=제4대 국회까지 보좌직원 정원은 의원당 1인이었으나 지속적으로 증가해 2012년 5월부터 7명 체제가 됐다. 4급 보좌관 2명, 5급 비서관 2명, 6·7·9급 비서가 각 1명씩이다. 의원실에 따라 인턴을 2명까지 채용하기도 하는데 보통 의원을 포함해 7~9명이 한 팀을 이룬다. 의원을 수행하는 의전부터 민원 처리, 지역구 관리, 입법 보좌까지 이들이 하는 일은 모두 '모시는' 국회의원 1인에 집중된다.
이들 보좌진의 역할은 직급마다 다르다. 4급 보좌관은 대개 정책과 정무로 나뉘지만 의원실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을 뿐 선 가르듯 명확하게 한쪽 업무만 하는 경우는 드물다. 4급 보좌관이 선거에 투입될 경우 5급 비서관이 정책 업무를 담당하기도 한다. 6·7·9급 비서관은 대개 전화연락에서부터 일정관리, 문서작성, 차량운행 및 의원 수행 등을 분담한다.

작문 능력은 직급을 불문하고 중요하다. 축사, 행사장 스피치 자료, 보도자료, 상임위 질의서, 대정부 질의서, 정책자료집 발간 등 글쓰기 관련 업무가 많기 때문이다. A의원실의 경우 수석 보좌관이 특히 글쓰기 능력을 중시하는 분위기다. 이 때문에 신입을 뽑을 때 별도로 글쓰기 시험을 진행한다. A의원실에 근무하는 한 비서관은 현재 야간 대학에서 글쓰기 관련 교양수업을 듣고 있다. 작문 능력이 보좌진의 중요한 자질로 꼽히면서 신춘문예에 등단한 보좌관을 채용한 의원실도 있다. 최근 인턴 채용 공고를 낸 다른 B의원실은 자격요건으로 '첫째도 문장력, 둘째도 문장력, 셋째도 문장력'이라고 내걸었다.

◆전체 1965명 중 남성이 여성보다 3배 많아=국회사무처에 등록된 보좌진의 수는 거의 매일 바뀐다. 실제 3월 말 국회사무처에 등록된 보좌진 수는 2065명이었으나 4월 말 2060명이 됐다가 지방선거를 거치면서 이달 초엔 1980명 수준으로 80명이 확 줄었다. 국회사무처 인사과 직원은 "매일 임명되고 해임되는 사람이 한두 명이라도 꼭 생기기 때문에 보좌진 등록 숫자는 수시로 바뀐다"고 말했다.
이달 17일 재확인한 보좌진은 1965명. 이 중 남성 보좌진 숫자가 1451명, 여성 보좌진 숫자가 514명으로 남성이 여성보다 3배가량 많다. 국회 내 여성의원의 비율이 높아짐에 따라 여성 보좌진의 숫자도 덩달아 늘어나고 있는 추세라고 하지만 남초현상은 여전하다. 흥미로운 점은 남성 보좌진은 직급이 올라갈수록 그 수가 늘지만 여성의 경우 반대의 경향을 보인다는 점이다. 실제 남성 보좌진은 4급 521명, 5급 463명, 6급 222명, 7급 174명, 9급 71명 등 급수가 높을수록 많다. 반대로 여성은 4급 39명, 5급 96명, 6급 59명, 7급 111명, 9급 209명의 분포를 보인다.(표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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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대해 14년차 여성 보좌관은 "여성 의원들도 권한을 많이 위임하는 수석 보좌관 자리에 남성을 앉히는 경우가 많다"며 "이는 여성 의원 본인이 남성 의원보다 정무능력이 떨어진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일종의 대체심리가 작용한 것"이라고 말했다.

또 전체 보좌진에서 4~5급이 절반을 넘어서는 것으로 나타났는데 이는 의원들이 정무·정책 업무에 잔뼈 굵은 보좌진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특히 국회 생활이 처음인 초선의원일수록 이런 경향이 강하다.

국가의 녹을 받는 별정직 국가 공무원인 보좌직원의 임면권은 전적으로 해당 국회의원에게 있다. 그러나 국회의원과 생명을 같이 하니 정년 보장이란 게 있을 리 없다. 국회의원과 보좌진의 관계는 대체로 갑과 을이다. 상명하복의 수직적 상하관계인 것이다. 임면권을 국회의원이 쥐고 있기 때문에 보좌진은 의원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C의원실에 근무하는 10년차 보좌관은 "회기 중엔 웬만해선 공석이 생기지 않기 때문에 소위 말해 X같아도 참는다"고 토로했다. 경력 15년이 넘는 보좌관은 더 납작 엎드린다. 근무 연한 20년을 채우면 '공무원 연금'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수석보좌관 자리는 좀처럼 자리가 나지 않는 탓에 자리 유지에 더 급급하다. 8년차 한 보좌관은 "15년차를 넘긴 보좌관을 자르는 의원은 인간적으로 좀 너무하다는 생각이 든다"며 "이렇게 잘린 보좌관 중에는 7급으로 급수를 낮추고 방을 옮기는 사람도 있다"고 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의원을 향한 보좌진의 서비스(?)도 지극정성이다. 인턴으로 들어와 비서관 자리까지 오른 10년차 보좌관은 모시는 의원이 전날 과음하면 아침에 해장용 국물을 보온병에 담아온다. 본인은 숙취 해소 음료 한 병으로 쓰린 속을 달래면서도 어머니표 '해장국'을 준비한 것이다. "약주 많이 하신다고 어머니께서 걱정하신다. 의원님 해장하시라고 준비했다"는 멘트도 잊지 않는다. 보온병을 받아든 의원은 '뭐하러 이렇게 하느냐'고 손사래를 치지만 싫지 않은 눈치라고.

◆업무 강도 높지만 석박사·해외파 등 일하고 싶다는 사람 몰려=보좌진의 근무강도는 높기로 소문이 자자하다. 공식적인 출퇴근 시간은 오전 9시, 오후 6시로 여타 공무원과 같지만 실제 근무시간은 의원실에 따라 제각각이다. 특히 국감이나 선거철이면 몇 주 혹은 몇 달씩 집에 못 들어가는 것이 예사다. 지역구가 제주도인 의원을 모셨던 한 보좌관은 선거운동을 하느라 3개월 동안 집에 못 가는 바람에 부인이 택배로 옷을 부쳐줬단다. 당 사무처에서 근무하다가 19대 때 재선의원과 일하고 있는 한 비서관은 "낙선했다가 재선한 의원이기 때문에 실적을 내야 한다는 압박이 있어서인지 업무량이 상상을 초월한다"며 "밤 10시 전에 퇴근해본 적이 거의 없는 것 같다"고 토로했다.

그렇다면 보좌진이 받는 연봉은 얼마나 될까. 국회사무처가 밝힌 국회의원실 소속 공무원 보수지급 현황(2014년)에 따르면 세전 기준으로 4급(21호봉) 6988만원, 5급(24호봉) 6068만원, 6급(11호봉) 4217만원, 7급(9호봉) 3647만원, 9급(7호봉) 2815만원 등이다. 연 지급액에는 본봉과 명절휴가비 등 상여금이 포함돼있다. 국회사무처에 따르면 우리나라 보좌직원의 보수 규모는 5개 선진국 하원과 비교할 때 미국 다음으로 높은 수준이다. 다만 영국 등 의원내각제 국가는 대통령제 국가와는 차이가 있다는 것이 사무처의 설명이다.

만만찮은 업무량, 의원과의 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 등 속사정을 알면서도 보좌진의 채용경쟁률은 점점 높아지고 있다. 지난 3월 공개채용을 진행한 여당 중진 의원실에는 비서관 한 명을 뽑는 데 200여명이 넘는 지원자가 몰리기도 했다. 지원자 스펙도 화려하다. 석·박사 출신, 해외 유명대 졸업생, 변호사·회계사 자격증을 갖춘 지원자도 있었다. 이처럼 경쟁이 워낙 치열하다 보니 특이한 이력을 내세우는 지원자도 많다는데 J의원실에 근무했던 한 보좌관은 이력서에 '택시기사 운전면허증'을 써넣어 채용됐다고 한다.

혹자는 보좌진을 단순히 국회의원의 '그림자' 또는 '가방모찌(가방을 메고 따라 다니며 시중 드는 사람)'로 낮춰 부른다. 하지만 오히려 국회의원보다 수명이 긴 보좌진도 있고 정책·정무 감각을 키운 뒤 국회의원이 된 경우도 있다. 1998년부터 보좌진 생활을 시작한 한 보좌관은 "보좌관은 사색대리인이다. 내가 만약 국회의원이라면 어떻게 생각할까를 염두에 두고 모든 것을 구상한다"며 "국회의원이 하는 일의 대부분을 함께 경험하기 때문에 정계에 진출해도 쉽게 적응한다"고 말했다.

◆어느 의원 보좌관의 20년 '섬김 인생'
국회 밥 20년만에 시의원 도전 쓴잔

'국회 밥'을 먹은 지 20년을 꽉 채운 A씨. 1993년 대학을 졸업하고 이듬해부터 국회의원 보좌관 일을 시작했다는 그는 국회 입성 초기에 '내가 모시는 의원의 말이 곧 법'이라는 말을 실감했다고 했다. 당시 스물 여덟이었던 A씨는 부모님과 친분이 있는 H의원이 "내일부터 여기 나와서 근무하라"는 말 한마디에 보좌관이 됐다.

게다가 H의원은 A씨에게 처음부터 6급 비서관 자리를 내줬다고 한다. 9급에서 6급 비서관으로 올라가는 데 보통 10년이 걸린다고 알고 있던 A씨는 퍼뜩 불안감이 엄습해 "6급은 저한테 과분한 것 같으니 9급부터 주시면 차근차근 배워 올라가겠습니다"라고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가 되레 불호령을 들어야 했단다. "내가 6급이라면 6급이야." 그때 국회의원과 보좌관의 관계를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고 한다.

세월이 흘러 베테랑이 된 A씨는 잔뼈가 굵었다. 2008년 초선인 K의원을 보좌할 때는 A부터 Z까지 의정활동의 모든 것을 세심하게 챙겨야 했다는데. 하루는 국회 본회의 긴급 현안질의에서 모 의원이 A씨가 보좌하던 K의원의 부친을 언급하며 폭력의 상징으로 비유했다고. K의원은 언짢았지만 대응방법을 잘 몰랐는데 이때 A씨가 나섰단다. 신상발언을 급히 작성해 K의원에게 부리나케 뛰어가 '신상발언을 하라'고 조언했다. 다음 날 언론은 일제히 'K의원 뿔났다' 등 신상발언을 대서특필했다고. K의원은 "베테랑 보좌관을 뽑았더니 척척 해결해준다"며 보좌관을 추켜세웠다. A씨에겐 어깨가 으쓱하던 순간이었다.

A씨가 20년 동안 보좌한 의원은 총 6명. 신한국당, 한나라당, 친박연대, 새누리당 등 대부분 보수 진영이긴 하지만 소속도 성향도 가지각색이었다. 모시는 의원의 정치생명에 따라 하루아침에 실업자 신세가 되기도 했다. 2005년 보좌하던 P의원은 선거법 위반 혐의로 의원직을 잃었다. 2008년 3선의 L의원은 18대 총선에서 낙천했다. 선거에 나갈 수 없게 됐으니 A씨도 할 일이 없었다. P의원의 낙선으로 3개월 동안 백수생활을 했다. '이참에 재충전의 시간을 갖자' 싶었다는 A씨. 국회에 발을 들인 지 11년 만에 처음으로 길게 누리는 휴식이었다. 아무 말 없던 아내가 두 달이 지나자 슬슬 잔소리를 하기 시작했다. "한 달 생활비가 최소 300만원은 드는데 두 달 넘게 돈 구경을 못했으니 아내도 불안했나봐요."

A씨는 보좌관 생활을 오래 하면서 남은 것은 사람이라고 꼽는다. A씨는 이사할 때마다 방 한 켠에 쌓아둔 라면박스 19개부터 챙긴다고 한다. 이 라면박스 들어 있는 것은 다른 게 아니라 그동안 받았던 명함이라고. 한 박스당 1만5000여개의 명함이 들어간다고 치면 20년 동안 30만명가량의 사람을 만난 셈이다. 의원일정 등을 메모해 둔 수첩도 100여개나 된다.

쉰 살이 다 돼가는 A씨는 아직 전세를 살고 있다. "돈을 못 모았어요." 목소리가 작아진다. 사정 모르는 사람은 '4급 공무원이면 연봉도 두둑하고 공무원연금도 받지 않느냐'며 부러워한단다. 외벌이라 세금 떼고 나면 빠듯하다는 A씨. 아내와 올해 고3인 딸, 그렇게 조촐한 식구여서 그나마 교육비·생활비 부담이 적은 게 다행이라면 다행이라고. 대신 사람들 만나는 데 쓰는 술·밥·커피값 지출이 만만찮다고 한다.

A씨는 지난 6ㆍ4 지방선거 광역의회의원에 출마했다. 오랜 보좌관 생활로 잔뼈가 굵은 그가 시의원으로 직접 정치 일선에 첫발을 뗀 것이다. 그러나 46%의 득표율로도 2위에 그쳐 고배를 마셔야 했다. 20년 경력의 보좌관 '짬밥'도 정치 입문은 쉽지 않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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