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지나치려 했더니
뱃살처럼 대문 앞까지 비죽 삐져나온 방 한 귀퉁이
모란꽃 부부, 사이좋게 살고 있다
모란의 품속을 날아다니며
배가 고파 칭얼대는 어린 꿀벌과 나비들에게
제 몸을 태워 향긋한 밥을 지어 주고 있다
몸이 다 탈 때까지
목 부러진 굴뚝 위로
가득 피어오르는 모란꽃 향기, 향기를 따라
아침에 집을 나갔던 둥근 해가
제비와 함께 돌아오고 있다
그래, 그런 집들이 있었더랬지. 골목길을 따라 옹기종기 다정하게 처마를 나누고 있던 집들, 훈이네와 진석이네, 정순이네 그리고 또 고만고만한 누구네와 누구네. 초여름 이른 저녁이면 젊은 엄마들은 대문 앞마다 오종종 붙어 서서 구슬치기하던 어린 아들과 고무줄놀이하던 딸의 이름을 번갈아 부르곤 했지. 깨알같이 뛰어놀던 동무들은 모두 다 집으로 쏙쏙 돌아가고 혼자 남은 저녁 해만 시무룩하게 앉아 있다 길 아래 동네로 터벅터벅 내려가고. 그랬지. 그랬더랬지. 된장국은 보글보글 끓고 수란은 한없이 느리게 맺혀 가고 복실이와 누렁이는 마루 끝에 발을 얹곤 끙끙거리고. 그러다 문득 쪼르르 달려가면 거기엔 어김없이 젊은 아빠가 서 있고 젊은 아빠의 한 손엔 센베이 과자가 가득 든 누런 봉지가 들려 있고. 정말 그랬지. 그랬더랬지. 골목길 가득 그런 집들이 모란꽃처럼 환하게 한가득 피어 있었더랬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