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한詩] 모란의 집 / 함명춘

 폐가인 줄 알고
 그냥 지나치려 했더니
 뱃살처럼 대문 앞까지 비죽 삐져나온 방 한 귀퉁이
 모란꽃 부부, 사이좋게 살고 있다
 모란의 품속을 날아다니며
 배가 고파 칭얼대는 어린 꿀벌과 나비들에게
 제 몸을 태워 향긋한 밥을 지어 주고 있다
 몸이 다 탈 때까지
 목 부러진 굴뚝 위로
 가득 피어오르는 모란꽃 향기, 향기를 따라
 아침에 집을 나갔던 둥근 해가
 제비와 함께 돌아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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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 그런 집들이 있었더랬지. 골목길을 따라 옹기종기 다정하게 처마를 나누고 있던 집들, 훈이네와 진석이네, 정순이네 그리고 또 고만고만한 누구네와 누구네. 초여름 이른 저녁이면 젊은 엄마들은 대문 앞마다 오종종 붙어 서서 구슬치기하던 어린 아들과 고무줄놀이하던 딸의 이름을 번갈아 부르곤 했지. 깨알같이 뛰어놀던 동무들은 모두 다 집으로 쏙쏙 돌아가고 혼자 남은 저녁 해만 시무룩하게 앉아 있다 길 아래 동네로 터벅터벅 내려가고. 그랬지. 그랬더랬지. 된장국은 보글보글 끓고 수란은 한없이 느리게 맺혀 가고 복실이와 누렁이는 마루 끝에 발을 얹곤 끙끙거리고. 그러다 문득 쪼르르 달려가면 거기엔 어김없이 젊은 아빠가 서 있고 젊은 아빠의 한 손엔 센베이 과자가 가득 든 누런 봉지가 들려 있고. 정말 그랬지. 그랬더랬지. 골목길 가득 그런 집들이 모란꽃처럼 환하게 한가득 피어 있었더랬지. 채상우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