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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살배기 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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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섬의 '시샘'

[아시아경제 이상국 기자]


독일 프랑크푸르트 마인 강변의 한 벽에 지난해 터키 해변에서 익사체로 발견된 난민 소년 아일란 쿠르디의 모습을 담은 벽화가 그려져 있다.

독일 프랑크푸르트 마인 강변의 한 벽에 지난해 터키 해변에서 익사체로 발견된 난민 소년 아일란 쿠르디의 모습을 담은 벽화가 그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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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7년 봄
심야
용당포가 삼켰던 한 영아는
65년이나 지나서
돌연 터키 도드람 해안에 포말처럼 떠밀려 올라왔다.
2015년 9월2일 새벽6시
모래사장에 반쯤 차디찬 얼굴을 파묻고
가보려던 뱃길을 목에 헐겁게 감은 채였다
세기가 바뀌어도
인간은 언제나 죽고 죽이는 전쟁과 살육에 골몰한다고
인간은 본래가 그렇다고
되레 안 그랬느냐는 듯 그만하면 알겠다는 듯
구명 조끼 아닌 청바지에 붉은 티셔츠 차림으로
세계 앞에 고꾸라지듯 한번 엎어져선 일어설 줄 모른다.
헌 빨래뭉치만한 구름이 이따금 인근을 얼쩡거릴 뿐
세 살배기 그를
누구도 붙잡아 일으켜줄 줄 모른다

----- 홍신선의 'Please, Non Die'


주검으로 발견된 시리아 난민 아기 '아일란 쿠르디'.

주검으로 발견된 시리아 난민 아기 '아일란 쿠르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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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한 편을, 봉독하며 울컥,한다. 저 사진을 블러(blur) 처리 없이 두 차례나 편집한 뒤 편집국에서 혼쭐이 났던 나의 풍경이 별 뜻도 없이 겹친다. 십자가에 못박혀 죽은 사람을 감정이입 없이 바라볼 수 있는 심장이라면, 도드람 파도 위에 순교한 저 붉은 티셔츠 세 살배기 예수상을 왜 똑바로 바라보지 못하는가. 세 살 배기의 멎은 인생 안에, 인류의 전생애가 다 들어가고도 남는다. 제발 죽지 말고, 살아서 가야할 곳과, 어처구니 없이 죽어서야 갈 곳. 그 사이를 배회하는 푸른 슬픔의 정체.


빨간 셔츠,
진청색 반바지.
물거품 치는 모래바닥 얼굴 묻고 누운 세 살배기.

시리아 북부 코바니 마을
골목 귀퉁이에 주저앉아
돌멩이로 구슬치던
아일란 쿠르디.

총소리 들리는 밤
덜깬 잠 비비며
아빠 손 잡고
보따리 든 다섯 살 형 갈립
바지 엉덩이 붙잡고

시리아에서 터키로
터키에서 그리스로
거기 가면 맘 놓고 살 수 있다는
그리스 코스섬으로

코스섬에 가면 흰 갈매기랑
하루 종일 놀 수 있다고
엄마는 말했지
코스섬에 가면
파도소리 귀에 걸고
잠들 수도 있다고
엄마는 말했지 보트를 타기만 하면
우린 천국으로 갈 수 있다고

그날밤 별도 없던 그 캄캄한 밤
보트가 뒤집히고 하늘이 뒤집히고
아빠도 뒤집히고 형도 뒤집혀
엄마 엄마
소리쳐도 엄만 안보였지

널빤지 하나 붙든
형의 바지 붙들고
두리번거리며 아빠를 찾았지
큰 파도가 넘어와 우릴 밀었지
그통에 그만 형을 놔버렸고
어딘지 모를 곳으로
나는 헤엄쳐 갔지

여기가 코스섬인가
모래 베고 나는 엎드렸네
파도소리 귀에 걸고
갈매기 소리 이불처럼 덮네

천국은 아프지도 않고
무섭지도 않네
엄마가 그랬는데요?
나는 난민 아니예요
코바니의 세 살 귀염둥이
아일란 쿠르디.

----- 이빈섬의 '아일란 쿠르디'

* 2015년 9월 쿠르디는 터키에서 소형보트에 몸을 싣고 그리스 코스섬을 향해 떠났다가 보드룸 해변 인근 아크야라 지역에서 배가 뒤집혀 변을 당했다. 그의 형(5) 갈립도 목숨을 잃었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쿠르디 일행을 태운 소형보트 2대는 23명을 태웠는데, 양쪽 다 전복돼 어린이 5명과 여성 1명 등 모두 12명이 숨졌다.








이상국 기자 isomi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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