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 이제 대학은 고등교육기관이라기보다는 보통사람 누구나 거치는 필수과정 정도로 바뀌었다. 고등학교 졸업생의 80% 이상이 대학에 진학하는 현실은 대학교육이 이제 국민교육화되고 있음을 말해준다. 대학이 학문적 진리 탐구의 장에서 실용적 지식을 습득하는 곳이 됐다는 비판도 제기되듯 보편적 진리를 잃은 대신에 '학업 기회의 보편성'은 얻은 셈이라고나 할까.
그렇다면 특히 대학교육의 보편화에서 보이는 신분의 철폐, 그것은 어느 정도 진실일까. 분명 출생과 복장과 표식에 의한 신분의 구분은 사라졌다. '무엇이든' 할 기회는 '법적'으로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표식과 울타리들의 존재, 무언가를 '실질적으로' 할 수 있는 기회에서의 엄청난 격차는 신분제의 폐지가 진실이되 절반의 진실임을 말해준다. 신분제는 반은 사라졌고, 반은 유지돼 왔다고 해야 맞을 것이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대판 음서제' 논란은 그러므로 신분제의 부활이라기보다는 그 반반의 균형이 무너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미국 오바린 대학 총장을 지낸 로버트 풀러는 저서 '신분의 종말'에서 "인류는 여전히 신분주의 사회에 살고 있다"고 했지만 우리 사회는 지금 신분제가 '여전히'를 넘어 '더욱 더' 과거로 퇴행하고 있는 국면인 듯하다.
이명재 논설위원 prome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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