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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동여담]음서제, 봉건ㆍ근대의 시험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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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재 논설위원

이명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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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대학'의 기원을 유럽에서 찾는다고 한다면 잘 알려져 있듯 그 어원인 라틴어 'universitas'에는 대학의 본래 이념, '보편적인' 진리의 추구라는 뜻이 담겨 있다. 그러나 오랫동안 대학에서 보편적 진리를 탐색할 기회는 그리 '보편적'이지 않았다. 중세 대학은 고등교육기관으로서 일반의 삶과는 꽤나 거리가 있었다. 대학이 대중화된 것은 산업화 시기에 대학이 지식인력 배출구로서의 역할을 하면서부터다. 그리고 어느 나라보다 대학이 '보편적 교육기관'이 된 곳 중의 하나는 분명 한국일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이제 대학은 고등교육기관이라기보다는 보통사람 누구나 거치는 필수과정 정도로 바뀌었다. 고등학교 졸업생의 80% 이상이 대학에 진학하는 현실은 대학교육이 이제 국민교육화되고 있음을 말해준다. 대학이 학문적 진리 탐구의 장에서 실용적 지식을 습득하는 곳이 됐다는 비판도 제기되듯 보편적 진리를 잃은 대신에 '학업 기회의 보편성'은 얻은 셈이라고나 할까.
높은 대학진학률은 교육을 통한 사회적 지위 상승 열망이 그만큼 크다는 것을 보여주는 한 증표다. 그것은 또한 신분제가 철폐된 사회에선 능력에 의한 자수성가로써 자신의 사회적 지위를 높일 수 있다는 이념에 대한 믿음이 강고하다는 걸 드러내는 단면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특히 대학교육의 보편화에서 보이는 신분의 철폐, 그것은 어느 정도 진실일까. 분명 출생과 복장과 표식에 의한 신분의 구분은 사라졌다. '무엇이든' 할 기회는 '법적'으로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표식과 울타리들의 존재, 무언가를 '실질적으로' 할 수 있는 기회에서의 엄청난 격차는 신분제의 폐지가 진실이되 절반의 진실임을 말해준다. 신분제는 반은 사라졌고, 반은 유지돼 왔다고 해야 맞을 것이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대판 음서제' 논란은 그러므로 신분제의 부활이라기보다는 그 반반의 균형이 무너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미국 오바린 대학 총장을 지낸 로버트 풀러는 저서 '신분의 종말'에서 "인류는 여전히 신분주의 사회에 살고 있다"고 했지만 우리 사회는 지금 신분제가 '여전히'를 넘어 '더욱 더' 과거로 퇴행하고 있는 국면인 듯하다.
권력과 부를 신분으로 승계하려는 열망은 늘 있어 왔다. 사회의 역동성과 합리성은 그 욕심을 어떻게 제대로 제어하느냐는 역량에서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한국사회, 근대냐 봉건이냐, 그걸 묻는 또 하나의 시험이 펼쳐지고 있다.





이명재 논설위원 prome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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