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고, 개를 세 마리나 끌고 다니느라 고생이 많겠어. 큰 개 한 마리, 강아지 두 마리."
얼마 전 가족 나들이에 우연히 마주친 낯선 아주머니의 걸걸한 입담이 우리 식구의 발걸음을 멈춰세웠다. 오는 말이 있으니 가는 말도 있어야 하는 게 인지상정 아닌가. 게다가 중국 영화 속 무림의 고수 같은 풍모에 이미 압도당했으니 눈 인사라도 해야 할 판이었다. 아주머니의 오지랖에 그렇게 포박당한 채 나의 뇌(腦)는 암호 해석에 분주했다. 큰 개 한 마리? 강아지 두 마리? 아하, 큰 개는 나를, 강아지 두 마리는 두 아들 녀석을 칭하는구나, 남자 셋과 살아가는 아내의 처지를 같은 여자로서 격하게 공감(共感)하는구나, 싶은 것이었다. 그 바람에 저 아내의 신랑만 개가 되고 말았으니….
뇌과학자인 김대식 카이스트(KAIST) 교수는 이렇게 설명한다. "여성의 뇌는 기억을 좌우하는 해마와 공감을 만들어내는 거울 뉴런 영역이 활성화된다. 반면 남성의 뇌는 본인의 기억만을 기반으로 타인을 판단한다."
남자의 뇌가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말할 때 여자의 뇌는 '만약 내가 저 사람이라면'이라는 가상현실을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저 아주머니의 '개 발언'도 여성 특유의 공감 능력에서 비롯된 것이리라. 그렇더라도, 여성과 남성의 차이가 존재하더라도, 인간의 공감 능력은 불완전하다는 것이 김 교수의 결론이다.
그러나 뇌전문가의 지적처럼, 어느 날 문득 '공감의 결핍'에 속앓이를 하는 것이 또한 인간이다. 친구든, 동료든, 애인이든 갑작스런 결별을 통해 사실은 우리가 서로를 잘 몰랐구나 깨닫는다. 저 건배와 찬양이 허상이었구나 고개를 숙인다. '공감의 사각지대'에 씁쓸해지는 그런 날이 있는 것이다.
이정일 금융부장 jaylee@asiae.co.kr<후소(後笑)>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