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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핫피플]'敬'한 글자 가슴에 품은 퇴계선생…알수록 큰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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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김병일(70) 도산서원선비문화수련원 이사장

퇴계 가문과는 피 한방울 안 섞인 전직장관이 '퇴계전도사'된 까닭
기획예산처 장관·통계청장…30년간 예산통으로 근무하다 은퇴
"퇴계는 제자에게도 자신 낮춰 자발적으로 존경하게 만들어 리더들이 그의 정신 배웠다면 '땅콩리턴'같은 사건 없었을 것"

▲'퇴계전도사'로 활동하고 있는 김병일(70) 도산서원 선비문화수련원 이사장(제공=선비문화수련원)

▲'퇴계전도사'로 활동하고 있는 김병일(70) 도산서원 선비문화수련원 이사장(제공=선비문화수련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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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안동(경북)=유제훈 기자, 박준용 기자] '선비의 고장' 이라는 경상북도 안동시. 이곳에서도 굽이굽이 이어진 산길을 한참동안 달리다 보면 고즈넉한 산자락 아래 퇴계(退溪) 이황(1501~1570)이 살았다는 퇴계 종택이 나온다. 종택 뒤편으로는 21세기에 철 지난 유물처럼 보이는 '퇴계 정신'을 알리겠다는 사람들이 모인 '선비문화 수련원'이 자리잡고 있다.

입춘(立春)을 코앞에 둔 지난달 31일, 이곳에서 '퇴계 전도사'를 자임하며 왕성한 활동을 벌이고 있는 김병일(70) 도산서원 선비문화수련원 이사장을 만났다.
◆대표적 예산통…우연한 계기로 퇴계정신 전파 나서=김 이사장은 30여년 간 기획예산처 장ㆍ차관, 통계청장, 조달청장,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 위원 등을 지낸 대표적 예산통이다. 경제관료로 반 평생을 살아온 그가 '경제 멘토'가 되기보다 '퇴계 전도사'가 된 이유는 무엇일까.

"전문성을 살려 어려운 경제문제에 조언을 할 수도 있겠지만, 과연 후배들이 좋아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현역에서 물러난 지 10년이 넘다 보니 적절한 조언을 할 수 있을지 의문이기도 했죠. 대신 인생의 황혼기에서 우리 사회를 위해 할 수 있는 역할이 무엇일까 고민했습니다."

그러다 우연찮게 찾아온 퇴계와의 만남은 그의 삶을 크게 뒤흔들었다. 다리를 다쳐 쉴 때 타의에 의해 도산서원 선비문화수련원 이사장 직을 맡게 되면서 그는 퇴계의 행적(行跡)을 곱씹어보게 됐다.
"21세기에도 '퇴계처럼' 선비정신을 갖게 되면 우리 사회가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됐어요. 정신이 온전치 못한 아내가 두루마기를 빨간 천으로 기워도, 손자뻘인 후학 고봉(高峯) 기대승 선생이 논쟁을 걸어와도 퇴계선생은 한결같이 배려ㆍ존중의 모습을 보이셨습니다. 손자가 젖동냥을 위해 아이를 낳은 종(從)을 달라고 해도 '종의 아이가 죽을까 염려된다'며 오히려 손자를 타이르시기도 했습니다. 엄격한 신분사회였던 조선사회임을 감안하면 놀라운 일입니다. 오늘날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귀감이 되는 모습이죠."

◆"우리 사회 무너진 신뢰, 안타깝다…섬김의 리더십 필요"=지난해는 우리 사회의 갈등ㆍ불신이 최악으로 치닫던 해였다. 생명보다 '이윤'을 추구해 온 우리 사회의 단면을 보여 준 '세월호 참사', 갑을(甲乙) 관계의 전형인 '땅콩 회항' 사건, 권력 사유화의 끝을 보여준 '청와대 문건유출 사건'이 대표적 사례다.

김 이사장은 이같은 신뢰의 상실을 회복하기 위해선 무엇보다 퇴계의 삶을 살펴봐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세월호 참사가 야기한 갈등ㆍ불신은 남을 생각지 않고 이해관계에 따라 우선순위를 부여하는 우리의 태도 때문"이라며 "신분고하에 관계 없이 모든 이를 소중하고 어질게 대했던 퇴계선생의 인(仁)ㆍ의(義) 정신을 되새겨야 할 때"라고 말했다.

김 이사장은 우리 사회가 상호불신에서 벗어나기 위해선 교육에 가치를 둬야 한다고 본다. 다만 지금처럼 '지식을 주입하는' 교육은 아니다. 그는 "우리 교육은 지(智)ㆍ덕(德)ㆍ체(體)를 가르치치 않고 오로지 지(智)ㆍ지(智)ㆍ지(智)만 가르치는 꼴"이라면서 "지식만 가르치면 자기 몸값 올리는 공부만 하도록 하는 셈이다. 좋은 학교, 좋은 직장에 똑똑하다는 말 듣고…. 이렇게만 크면 일등 해야 한다는 가치관을 갖게 되지 않겠냐"고 쓴소리를 했다.

김 이사장의 눈에는 그저 "공부해라"고만 다그치는 부모들은 자식을 망치는 것이다. 이렇게 지식만 강조해서는 결국 자식은 물론 부모 자신에게 좋지 않은 결과로 돌아온다. 문제는 교육해야 할 사람이 그 사실을 너무 늦게 깨닫는다는 것이다.

"더불어 살아가는 교육을 안 시키면 자식에게 부모는 자기 몸값을 높이기 위해 도와주는 사람이 되고 말죠. 돈 대는 물주처럼요. 학원에 바래다 주려고 운전을 대신 해 주는 하인이라고 생각하겠죠. 지식을 공부해 몸값을 높이는 공부만 한 자녀는 부모가 값어치가 떨어지면 돌보지 않게 됩니다. 나중에 부모가 눈 침침해지면 운전이라도 대신 해 주겠어요?"

'지(智)' 교육에만 매몰되지 않고 '덕(德)'을 찾는 교육은 결국 어른들부터 바뀌어야 가능하다. 단, 말과 글이 아닌 실천으로 보여줘야 한다.

"지식교육은 주입식으로, 말과 글로 가능합니다. 하지만 덕을 일깨워주기 위해서는 아이들에게 지식을 주입하는 방식으로는 절대 안됩니다. 운전면허교육을 받을 때 신호체계를 배우지만 빨간불일 때 운행을 계속하는 것은 지식이 부족해서일까요? 아이들은 가슴으로 느껴질 때 실천합니다. 아이를 가르치려면 어른들도 실천으로 보여줘야 합니다. 텔레비전을 보지 말라고 해 놓고 몰래 보면 아이들이 나중에 모를까요? 아이를 가르치려면 자기 자신부터 참아야 합니다. 덕 교육은 이렇게 실천으로 해야 합니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에서 수신이바로 실천을 뜻합니다. 실천을 해야 가정교육을 할 수 있는 것이죠."

김 이사장은 그렇게 교육된 덕(德)은 리더십으로 발현된다고 본다. 덕(德) 리더십은 바로 '섬김'의 리더십이다. 김 이사장은 섬김의 리더십이 있어야 해묵은 사회 갈등을 해결할 수 있다고 말한다.

"박기후인(薄己厚人,남에게는 후하고 자신에게는 박하게 하는 선비정신)의 자세가 많은 사람에게 감동을 줍니다.자신에겐 엄격한 반면 남이 잘못하면 '그럴 수 있겠지'하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김 이사장은 "서양학자들의 한결같은 얘기는 리더와 팔로워, 부모와 제자 간의 관계에서 윗사람이 자기를 낮추고 아랫사람을 보듬는 것이 최고라고 나타났다는 것"이라면서 프란치스코 교황과 김수환 추기경이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고 존경받는 리더인 까닭도 여기에 있다고 말했다.

그는 '땅콩 회항'사건도 리더가 자신에게 너그럽고 남에게 박했던 데서 왔다고 지적한다. '섬김'의 리더십 부재가 만든 사건인 셈이다. 김 이사장은 "대한항공 직원들도 이 사건에서 자신들의 리더에 대해서 느꼈을 것"이라면서 "다수의 생각을 듣지 않고 소수의 리더의 생각으로만 이끌면 신뢰를 잃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 이사장은 퇴계 역시 아랫사람에게 '섬김'의 리더십을 실천한 인물이라고 강조했다.

"퇴계 선생은 그 당시 명성으로 보면 요샛말로 '갑 중의 갑'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분은 후배와 제자들에게 자기를 낮추고 숨겼어요. 일례로 도산서당에서 제자에게 글을 가르칠 때 항상 문 앞까지 가서 이들을 맞이하고 배웅했지요. 이런 퇴계선생의 행동이 '서번트 리더십'입니다. 이는 리더를 최고의 존경으로 이끕니다."

◆"금년 말 제2원사 완공 예정…내년엔 10만명에 선비정신 심어줄 것"='21세기형 선비정신'의 가치가 널리 알려지면서 도산서원 선비문화수련원의 수련인원은 급증하고 있다. 2001년 처음 개원했을 때 연간 200명에 지나지 않던 수련생은 지난해 5만5000여명으로 늘었고, 퇴계종택 뒤에 위치한 제1원사(院舍)에서 이를 수용하지 못하게 돼 뒷편에 제2원사를 짓고 있다.

김 이사장은 "현재 원사 규모의 1.5배가 넘는 제2원사가 금년 말에 완공되면 내년에는 10만명 수련을 목표로 하려고 한다"면서 "선비정신과 관련한 연구활동을 벌이고 있는 각 연구소ㆍ대학들과 MOU를 체결하고 '인문가치 포럼' 등을 준비하는 등 수련 프로그램ㆍ콘텐츠 확보에도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퇴계가 이승을 하직한 나이는 일흔. 김 이사장은 올해 일흔을 맞았다.  

"시간이 많이 흘렀지만, 옛 선현들과 우리가 가진 삶의 바탕은 동일합니다. 퇴계선생의 삶의 태도가 수 많은 사람들을 감동시켰듯, 이 시대를 사는 사람들이 퇴계같은 리더가 될 수 있게 하기 위해서 아직은 할 일이 너무도 많습니다."


안동(경북)=유제훈 기자 kalamal@asiae.co.kr
안동(경북)=박준용 기자 juneyong@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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