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꺼번에 만나게 해주는 마누라가 고맙다고 웃었던 사람,
그의 지갑 속에 든 스물 몇 아내의 사진을 보았다.
지나간 시간과 사랑에 빠지기 시작한 사람이었다.
상처할 때야 상처를 사랑하게 된다. 사랑은 치유이지만
때론 잊어가는 것,
사랑은, 바로 그 사랑의 무덤이기도 하다.
남자의 지갑은 묘비이다.
그 밖으로 여자가 따라오지 못한 시간이 있고
상처는 상처보다 빨리 아물고
상처가 갈짓자로 긁는 상처를 따라
귀가하는 늙은 어깨에 싸구려 紅燈이 잠깐 비치다 마는 걸
나는 본 적이 있다.
의미심장하다. 그래서 상처를 하다라는 말은 낯설면서도
마음에 깊이 와닿는다. 상처는 상처이기 때문에
살짝 닿기만 해도 아프고 오랫 동안 아프고 가렵고 그렇다.
관련된 무엇이 있기만 해도 욱씬거리는 게 상처이다.
상처를 한 사람을 보았다.
식당에서 만난 낯선 사람이었는데
계란요리를 하는 법에 대해 주인에게 묻고 있었다.
이제 혼자 살아가야 하니까,
뭔가 한 가지는 할 줄 알아야 하는데, 하면서
그는 쓸쓸히 웃었다. 수작이라도 붙이는 듯,
소주를 기울이며,
어제 상처를 했어요, 라고
묻지도 않았는데 무심히 대답했다.
▶'낱말의 습격' 처음부터 다시보기
이상국 편집에디터, 스토리연구소장 isomis@asiae.co.kr